서리풀 논평

제약 산업, 새로운 ‘정산(政産) 복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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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말이 만들어진 곳, 미국에서 ‘군산(軍産) 복합체’만큼 유명한 유사어가 있으니 바로 ‘의산(醫産) 복합체’다. 1980년대 이후 이 말은 미국 의료의 특성과 구조를 압축해서 나타내는 유명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 말을 유행시킨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던 아놀드 렐만이라는 의사다(<미국의 전 국민 의료 보장을 위한 계획>(조홍준 옮김, 아르케 펴냄)의 저자,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오랜 기간 유명한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의 편집장을 지냈고, 1980년 바로 이 학술지에 ‘새로운 의산 복합체’라는 글을 발표했다. (☞관련 자료 : The New Medical-Industrial Complex)

이제 거의 ‘정설’이 된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의료는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이 되었고 그 원천이 의산 복합체 구조다.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진단은 딱 맞아 떨어진다. 의료는 병원, 요양원, 임상 검사 시설, 가정 의료, 응급실, 투석 등을 통해 큰 이윤을 창출하는 거대 산업이 되었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의산 복합체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대목이 더 중요하다. 그는 의료가 파편화되고 남용되는 것, 지나치게 기술 의존적인 것, 그리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환자만 환영하는 것(이른바 ‘단물 빨기’)을 경계한다. 그중에서도 더 중요한 경고(‘예언’일지도 모른다). 의산 복합체는 국가 정책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며칠 전, 한국에서도 절로 의산 복합체(그리고 군산 복합체까지)를 떠올리는 일이 벌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발견’되었다. 한미약품이 맺었던 대규모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되고 주식 시장이 요동쳤다는 바로 그 사건을 해석하는 틀이다. 본래 잠복해 있었고 준비된 사태라면, 발생이 아니라 숨어있던 것을 발견했다는 편이 옳다.

주식 시장이 어쩌고 공시와 공매도가 어떻다는 소리가 신문 사회면과 경제면을 점령한 것이 벌써 며칠인가.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 회사와 경제적 이해관계로 연결된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제약은 산업이지만 또한 생명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제약 기업의 경제 성과는 (원치 않아도) 자주 생명과 안전을 반영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경과를 정리하면 이렇다. 한미약품이 개발해서 베링거인겔하임에 수출한 ‘올리타정'(성분명 올무티닙)이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고, 그 결과 임상 시험이 중단되고 수출 계약도 해지되었다. 실무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 만큼, 진공 상태에서는 단순한 일이다.

현실은 훨씬 복잡한 것은 지금 한국에서는 신약이 정치경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경제. 2016년 4월 첫 번째 부작용이 보고되고 나서, 반년이 지나 신약은 경제 사건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박’ 신약이 주가 급락의 원흉으로 바뀌었으니, 그 반응도 주식 시장을 감독하는 정부 당국이 제일 빠르다. 공시 과정에 기업의 잘못이 있는지 찾겠다는 당국의 서슬이 시퍼렇다. 앞으로도 주식 투자자와 경제 신문이 가장 적극적일 터.

내용으로 보면,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제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이다. 주식 시장에 대한 충격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일부의 경제적 이해관계일 뿐 ‘공공’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수출 대박, 기술 입국, 신약 대국의 좌절 이전에 생명을 위협하는 역사적 스캔들이다. 그런데도 경제와 주식 시장만 야단법석이라니.

이렇게 된 연유를 찾자면 다시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우선, 한미약품이 해 온 일이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임상 시험 결과나 계약 취소를 미리 알고도 발표를 늦게 했다는 것도 그렇지만(☞관련 기사 : 한미약품, 한 달 전 임상 중단 왜?…계약 해지 알고 있었나), 부작용 보고를 일부러 늦추었다는 혐의에는 기가 막힐 정도다. (☞관련 기사 : 손문기 식약처장 “한미약품 올리타정 부작용 늑장 보고 조사할 것”)

우리는 이를 기업의 단순한 실수나 실무 오류로 보지 않는다. 이윤을 키울 수 있다면 기업과 자본이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징표다. 공정한 시장은 어디에도 없는, 그야말로 백일몽일 뿐이다! 주식 시장이라는 상징과도 같은 자본주의의 장(場)에서, 탐욕은 날 것 그대로 드러났다. 익숙한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

정부(‘국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중립이고 공정한 감독 역할을 자처하겠지만, 그도 전혀 아니다.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 모든 과정에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의 행동도 석연치 않다. 국정 감사에서 정춘숙, 천정배 의원이 밝힌 문제는 아마도 일부일 것이다. (☞관련 기사 : “한미약품-베링거인겔하임, 8월 올리타정 임상 중단 결정”, 식약처, 한미약품과 공모 의혹 “진상 규명해야”)

“한미약품이 4월 11일 임상을 진행한 연구자 모두에게 ‘독성표피괴사용해(TEN)’가 발생했다며 인과성을 인정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 또 7월 13일에는 올리타정을 처방하는 의사에게 중증 이상 반응 발생을 알리는 문서를 보내 부작용과 약의 연관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 그런데도 식약처가 보도 자료에서 한미약품이 부작용에 대해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것.”

“한미약품은 폐암신약 ‘올리타정’ 임상 시험 2단계에서 사망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이를 누락해 ‘3상 조건부 허가’ 신청을 했고 식약처로부터 지난 5월13일 승인을 받았다. 그 후 지난달 1일 이를 올리타정 약물 이상 반응으로 후속 보고했다. (…) 천 의원은 “식약처는 한미약품의 사후 보고 후에도 인과 관계 확인을 이유로 시간을 끌며 곧바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아 환자 안전을 위협했다”며 “올리타정 부작용의 경우 대부분 투약 초기에 나타나기 때문에 기존 환자가 아닌 신규 환자에게 더욱 신속하게 알려야 할 정보였다”고 설명했다.”

현상으로는 기업과 정부를 가릴 것 없이 곳곳에 문제가 있고 잘못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마땅히 밝혀져야 할 일이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하고 당연히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심층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약을 둘러싸고 ‘정산 복합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고, 국가 정책과 정부의 행동이 그 틀에 갇힌 상태라고 해석한다. 구조 자체에서 연유하는 필연적인 귀결이 있으니, 해체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또 ‘발견’될 것이다. 장담한다.

‘복합체’라는 간단한 그러나 직접 증거. “보건복지부 신약 연구개발(R&D) 지원으로, 한미약품 국내 최대 규모 기술 이전 등 글로벌 진출!” 보건복지부가 자기 덕분에 성공했다고 자랑한 것이 작년 11월이다. (☞관련 자료 : 보건복지부 신약 연구개발(R&D) 지원으로, 한미약품 국내 최대 규모 기술 이전 등 글로벌 진출!) 이번 사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익숙한 경로대로, ‘바이오헬스 산업 규제 합리화’가 뒤따랐고(☞관련 자료 : 바이오헬스 산업 규제 합리화로 새로운 시장 열린다), 의약품의 허가 조건이 완화되었다(☞관련 기사 : 의약품 조건부 허가 확대에 바이오업계 ‘기대 만발’) 중간에 식약처장과 제약업계 경영자가 만나 토론회나 간담회를 하는 것은 한국형 ‘의례’라고나 할까. (☞관련 기사 : 제약사 “식약처 의약품 심사 자료 너무 많다”)

길게 쓸 여유는 없지만, 직간접으로 돈을 대는 것도 중요한 정부 역할이다.

복합체 정도가 되려면, 식약처와 보건복지부에 그칠 수 없다. 정부 차원에서 이미 몇 차례나 발표한 ‘투자 활성화 대책’의 중심에 의료와 신약이 있고 그 핵심 주문(呪文)이 모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더 나가면, 정산 복합체는 이미 본질 목표를 잃고 소외된 경제성장, 이윤 창출, 그리고 그것의 새로운 동력을 찾는 일로 통일된다.

생활세계로 돌아오면, 그 사이 과학은 과학대로, 보건은 보건대로, 멍들고 왜곡되는 것이 안타깝다. 그냥 좀 부진하거나 늦어지는 것이면 그래도 괜찮다. 아예 대놓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면, 그것은 윤리도 정의도 아니다. 그런 정산 복합체라면, 마땅히 해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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