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선거 기대감과 피로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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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대한 기대감과 피로감의 차이

 

김창보 연구실장

 

 

 

서울시장 선거가 끝났다. 기존 정당의 후보가 아닌 시민사회운동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여당의 후보를 7%의 압도적 차이를 드러내며 승리하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가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대한 피로감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투표결과에 대한 감상과 향후 영향을 분석하는데 모든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에 덮혀진 문제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번 선거는 유독 길게 느껴졌다. 길게 보면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면서부터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짧게 보더라도 8월 24일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에 대한 홍보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치자면 두달 가까이 진행된 선거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이런 기간이 길었다고 해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소모적이었고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피로감이 훨씬 크다.

사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진원지는 ‘무상급식’이었다. 이것은 단지 ‘초등학생 급식’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관심, 복지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구체적 진전을 만들고자 하는 숙고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선거’라는 과정은 이런 계기를 왜곡하고 말초적 가십거리들로 가려져 버렸다.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지한 고민과 결정이라는 과정은 실종되어버렸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선거의 구태를 벗지 못하는 선거공학적 전략과 이를 맞장구치는 언론에게 있다. 특히 언론은 이번 선거의 의미를 차분히 짚어주면서 사회적으로 고민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선거의 방향과 지지도를 몰아가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문제를 드러냈다. 이렇게 가다가는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언론의 행태를 감시하기 위한 시민운동의 필요성까지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의 피로감은 문제의식과 선거과정이 괴리된데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정치공학적 접근이 내용적 기대를 왜곡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여기에는 모든 정치인들과 언론이 공범이니 이를 서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선거가 내년 1년을 뒤덮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전망을 놓고 사회양극화,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현상을 해석하고 ‘복지사회’를 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낼 정치세력의 형성은 가능할까? 과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이런 선거를 계속 치루면 민주주의는 발전하는가? 절차적 민주주의만 채워지면 되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조차 ‘투표하자’는 커다란 목소리와 구호 속에 가려져 있다. 물론, 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것에 조금의 이견도 달고 싶지 않지만, 정책이 실종되고 진지한 논의란 기대할 수 없는, 정치공학과 네거티브에만 의존하는 선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렇듯 ‘꼼수’가 판치는 선거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가져온다. 벌써부터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자칫 이런 피로감은 내년 대선 이후 다시 급격한 투표율 하락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때의 피로감은 매우 강한 ‘정치불신’과 결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것이 ‘정치’이어서는 안된다. 공학적 판단으로 만들어진 선거판에 ‘투표하자’는 바람만 거세게 몰아쳐서 가는 정치는 안된다. 구체적이고 선명한 정책적 구호와 공약으로 돌파하기 위한 가능성을 정치는 보여주어야 한다.

 

흔히 여론을 움직이려면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하라고 한다. 그만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선명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민하라는 뜻인줄 안다. 그러나 마치 ‘어려운 내용은 포기하라’, ‘어려울 것 같으면 설명하지 말라’는 식으로 그 말이 사용되는 것 같다. 정책과 공약, 우리 사회의 전망은 어렵고 재미가 없어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이해를 못할 것 같으니 포기하라는 강요로 이해되는 것 같다.

 

서울시민 노릇하기 참 힘들다. 올 여름부터 벌써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루었다. 서울시 최초로 주민투표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가져야 했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도 했다. 그런데 6개월 뒤에는 총선이 있고, 또 다시 반년이 지나면 대선이 있다.

이런 모든 일정이 끝나려면 앞으로 400일이나 지나야 한다. 그동안 이 땅의 선거기술자와 선거공학자들, 그리고 언론에 의해 모든 판단이 좌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선거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벌써 피로감이 몰려온다.

 

나는 선거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치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며 우리 사회를 복지사회로, 건강사회로 이끌고 갈 건강레짐과 건강의 정치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런 기대감이 클수록 좌절감과 피로감이 커질 것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을 갖고 있는데, 깊어가는 가을, 이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야 하는게 내 앞에 놓여진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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