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근본 원인’의 시대, 미봉책으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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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세먼지 문제. 서울이 ‘세계 주요 도시 중 3대 오염 도시’라니 기가 막힌다(기사 바로가기).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마스크를 한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도 마땅치 않다.

미세먼지는 보는 것, 냄새, 숨 쉬는 것, 불편과 기분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건강과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니 큰일이다. 며칠 전 알게 된, ‘기타 동아시아 국가’에서만 한 해에 3만여 명이 죽는다는 연구결과는 섬뜩하다(기사 바로가기).

정상 국가라면 이런 문제를 그냥 놔두겠는가. 한국 정부도 원인을 찾고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도 미세먼지 대책을 말해야 할 형편이니, 미세먼지는 이제 정치다.

문제는 ‘화끈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오염이 심한 날 소화전을 끌어다 물청소라도 하겠다니, 안 할 수도 없지만 미봉책 수준을 넘기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방 효과를 볼 대책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기사 바로가기). 주요 원인이라는 중국의 공장, 화력발전,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것을 하루아침에 무슨 수로 바꾸겠는가. 이런 ‘근본 원인’은 당사자가 많고 복잡하며, 해결하는 데 오래 걸린다.

 

다음은 저 유명한 저출산. 2016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는 40만 6,300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2017년 1월 출생아 수는 3만 5,100명으로 작년 1월 대비 11.1% 줄었다. 월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1월 기준으로 가장 적다(기사 바로가기).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80조 원이 넘는 국가 재정을 쏟아부은 결과가 이렇다. 효과를 볼만한 일이 있다고 믿는지,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의 4대 키워드에도 저출산이 들어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저출산 이야기를 빼놓지 않으니, 이 또한 정치 아젠다다.

여기서도 문제는 재정과 정책이 ‘괄목할’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난임시술 지원이야 그 개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행복이자 복지지만, 무슨 대책이라고 하기는 낯 뜨겁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인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보육과 육아, 일-가정 양립, 일자리도 말하지만, 출산 기피가 어디 한두 가지 이유 때문이겠는가.

애를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 지금보다 낫지만, 또 나아져야 하지만, 이 정도로는 반드시 또 실패한다. ‘근본 원인’은 많고 넓으며 깊으니, 같이 바뀌고 좋아지지 않는 한 비관적이다. 출산과 육아가 본래 삶의 의미와 가치로 되돌아오는 때가 되어야, 사람이 살만한 사회, 새로운 삶을 초대할 만한 그런 ‘경쟁력’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비로소 애 낳을 생각이 들지 않을까?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으로는 역부족이다.

 

 

내친김에 한 가지 더, 불평등 문제를 말한다.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지, 이미 3월 20일 <서리풀 논평>에서 자세하게 다루었다(프레시안 바로가기,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강조하느라 같은 내용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불평등 문제도 미세먼지나 저출산 문제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한두 가지 대책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 소득 불평등만 해도 그렇다. 별생각 없이 꼽아도 일자리와 임금, 사교육, 의료비, 조세, 주거 등 수많은 문제와 물고 물린다.

교육 불평등은 또 어떤가. 다시 소득에 연결되고, 교육 정책 전반은 물론 지역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건강 불평등은 아예 모든 다른 불평등과 근본이 겹친다. 소득, 노동, 교육, 지역, 젠더, 주거,… 뭔가 공통의 뿌리가 있다.

 

대표 격으로 미세먼지, 저출산, 불평등을 호명했지만, ‘근본 원인’을 봐야 하는 문제는 이것 말고도 많다. 잘 안 풀리는 고질적 문제, 한두 가지 정책으로는 별 효과가 없는 것, 예나 지금이나 늘 반복되는 과제들, 그래서 대통령 선거의 공약으로 늘 등장하는 약속은 모두 해당한다고 해도 좋다.

 

여러 근본 원인을 관통하는 특성, 공통점을 몇 가지만 따져보자.

첫째, ‘구조’이거나 구조에 연결되어 있다. 일자리와 임금은 노동 시장이라는 구조의 구성 요소, 투입, 산출로, 다른 요소들과 따로 떨어져 움직이거나 변화할 수 없다. 이 구조는 평면적, 병렬적일 때도 있지만, 상위와 하위, 표층과 심층의 위계를 가진 것이기도 하다(예를 들어, 임금 구조 ↔ 노동시장 구조 ↔ 한국경제의 구조 ↔ 세계경제의 구조).

둘째,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노동자의 소득은 노동시장에서 결정되고, 이는 다시 경제와 산업, 교육, 복지에 긴밀하다.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한두 개의 화살표로 표시하기도 어렵다. 여러 층의 구조가 만났다 헤어지면 더 복잡하다. 인과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

셋째, 쉽게 빨리 바뀌지 않는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구조에 대한 것이고 복잡하고 다면적이면, 어지간한 힘이 아니면 크게 바꾸기 어렵다. 보수와 관성이 지배하기에 십상이다. 한두 가지 개입으로는 큰 변화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큰 문제 상당수가 근본 원인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드느라 저출산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단지 보육이 힘든 개인과 가정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에서 경제, 노동, 가족, 젠더 등이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얽혀있다.

 

준비하지 못하고 태세를 갖추지 못한 것이 진정한 문제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난무하는 약속들이다. 대부분 공약은 현상에 대한 것, 이익과 욕망에 대한 것, 그리고 손에 잡히는 효과를 겨냥한다. 독립적인 것을 넘어 단절적이며, 단기성을 넘어 즉시성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예를 들어 언제까지 기초연금 얼마 인상 같은 것.

정당과 후보만 탓할 수 없다. 공약은 후보자들의 것이지만, 동시에 유권자의 것이기도 하다.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에겐,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부응하려는 것이 첫째다. 유권자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한, 그곳에 구조와 근본 원인은 발붙일 곳이 없다.

구조와 근본에 대한 공약을 내놓으란 소리는 차마 못 하겠다. 내용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표를 모으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이 바쁜 때에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이 뻔하다.

 

현실이 엄중해도 아예 포기할 수는 없다. 공약의 내용 안에, 토대에, 근본 원인에 대한 생각이 녹아 있기를(또는 앞으로 그러기를) 기대한다. 저출산 대책용으로 국공립 보육시설과 아동수당을 약속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이를 경제, 노동, 가족, 젠더의 구조와 어떻게 ‘정렬’하고 ‘조화’할지 고민해야 한다. 수도 없는 산만한 약속들은 근본 원인과 함께 ‘구조 조정’에 봉사할 것.

선거 후, 국정 운영을 할 때도 근본 원인에 (고려를 넘어) 도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자리, 저출산, 노인빈곤, 의료비 부담, 그 어느 것도 미봉 이상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장담한다. 사회부총리를 새로 만든들, 지금의 저출산 대책으로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한국 사회의 상황이, 사회의 단계가, 문제의 정도가, 이렇게 되었다. 근본 원인과 대면하고 직접 상대해야 작은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을 지경으로 바뀌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정치와 정부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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