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지역보건: 시대착오 혹은 새로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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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과 의료에서 ‘지역’은 철지난 유행어처럼 보인다. 아직 ‘지역보건법’이 있고, 대학에서는 여전히 지역사회보건, 지역사회간호, 지역사회의학을 가르친다. 그러나 좀처럼 활기와 역동성을 느끼기 어렵다. “아직도!”라거나 “때가 어느 땐데”라고 혀를 찬다면, 그 사람에게 지역은 필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과거일 테니 더 이상 강조하는 것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완고함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아예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보건에서 지역이 위축(혹은 소멸)된 것은 적어도 두세 가지 경로를 거친 결과라고 해야 한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것이 한 가지 원인이고, 지역이 지역주민의 주체화 없이 “국가제도화”된 것이 또 다른 원인이다. 여기에다, 한국의 건강레짐이 병원과 치료 중심으로 편성되면서 보건과 의료에서 지역이라는 토대가 해체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도시화가 지역을 약화시켰다는 것은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지역을 농어촌과 전통적 공동체로 한정한다면, 지역 변화의 핵심요인이 도시화라고 해도 보탤 말이 없다. 그러나 “지역=농어촌”이라는 등식은 이론과 실제에서 모두 잘못된 것이다. 도시“지역”이라는 말 자체가 이론적으로 전혀 오류가 아니며, 실제로 도시에서도 지역 공동체가 존재하고 새로 만들어지며 살아 움직인다(예를 들어 서울의 성미산마을). 지역의 의미가 농어촌으로 좁아진 것은 지역보건이 지고 가야 할, 그러나 극복되어야 할 역사적 유산이다. 
 
거기다가 지역보건이라는 말에 붙은 지역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대체로, 지역은 기능적 연계를 전제로 하면서 “지리적으로 연속된 공간”을 뜻한다. region (혹은 zone이나  area)이라는 영어단어가 이에 해당한다. 지역계획이나 지역개발이라는 말에서 지역이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나 지역보건이나 지역사회의학, 지역사회간호라고 할 때 지역은 region이 아니다. 모두 ‘community’라는 말을 옮긴 것으로, 지역보다는 공동체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 따라서 지역보건의 지역은 좁게 해석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다양한 공동체(직장, 학교, 종교모임, 사회단체..)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런 점에서 지역보건은 두 가지 오해를 모두 안고 있다. 하나는 농어촌, 벽오지에 해당한다는 것, 또 다른 오해는 지리적, 공간적 의미로만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누가 지역보건 일을 한다고 하면(지역사회의학이나 지역사회간호도 비슷하다), 흔히 전문 의료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농어촌에서 교육이나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이런 오해의 결과이리라. 
 
한국의 지역보건은 “국가제도화”라는 또 다른 역사적 유산과 싸우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보건의료 인력과 시설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보건은 보건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었다. 지역사회 자원의 동원, 주민들의 참여와 주도적 역할, 치료뿐 아니라 위생환경과 행태 등을 포함한 통합적 접근… 부분적으로는 지금도 가치 있는 전략들이 지역보건의 틀을 통해 시험되고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들은 지역보건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지역에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 제도 속으로 흡수된다. 지역에 기반을 둔 문제해결 방법, 주민의 민주적 참여와 역량 강화(empowerment), 여러 부문의 통합적 접근과 같은 지역보건의 지향과 전략은 많은 사람들이 지역보건을 옹호하고 지지하게 만들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무의촌을 해소하고 급증하는 의료수요를 해결한다는 것이 국가적 목표가 되면서, 지역보건은 보건소 – 보건지소(공중보건의) – 보건진료소(보건진료원)의 공적인(국가의) 영역으로 축소되었다. 그 결과 지역보건의 지향과 전략 대부분은 최소한의 형식만 남거나 그마저도 사라졌다. 
 
<솔 알린스키, 1960년대 말, 시카고>
 
이중, 삼중의 이유로 쇠퇴와 위축의 길을 걸어 온 지역보건이 이제 와서 다시 어떤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답할 만한 경험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지금과는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랐던 1960, 70년대에 지역보건에서 희망을 발견하려 했던 사람들이 솔 알린스키(Saul D. Alinsky)와 파울로 프레이리(Puolo Freirie)를 읽고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되새길 만하다. 알린스키는 일상생활에서 출발한 풀뿌리 조직과 주민의 주도권, 주민 내부의 지도력 개발, 민주적 참여의 촉진 등을 핵심으로 하는 주민조직론으로 유명하다(사실 한국에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젊은 시절 시카고에서 주민 조직가로 일하면서 알린스키로부터 -간접적이지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 사실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또, 프레이리는 이른바 ‘의식화’ 개념과 민중교육론으로 한국의 사회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아마도 1970-80년대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이론가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들은 현실 정치와 정책, 제도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압력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과 근거를 제시했다. 알린스키와 프레이리는 보건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지역보건 역시 보통 사람들의 생활과 삶, 지역에서 변화의 동력을 발견하려 했던 이들로부터 교훈을 얻었던 것이 틀림없다.    
 
제도 내외에서 모두 지역보건의 상황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배울 것이 있다 하더라도, 알린스키와 프레이리 역시 맥락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역사의 발전과 진보는 (유일한 동력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삶에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린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크게 의존한다. 이 점에서 알린스키의 문제의식과 지향은 위로부터의 변화(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지향)와는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보완적이다. 좀 더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서 지역보건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도 그에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 참고
– 사울 D. 알린스키 지음.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아르케, 2008.   
–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페다고지. 그린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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