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시민의 힘으로 ‘개혁’ 청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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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하고 열흘 남짓 지났다. 몇 가지 상징적 ‘개혁’을 발표했고, 우호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대통령의 새로운 스타일과 새로 임명한 사람들의 면면이 오래 묵은 답답함을 겨눴기 때문일 것이다. 환영하며, 새로운 변화와 개혁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기 바란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 자신과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시작한 ‘검찰 개혁’은 누가 어느 자리에 가는가 또는 무슨 수사를 다시 하는가를 떠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언뜻 보기에 ‘개인기’에 의존하는 개혁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개혁도 큰 의미가 있다. 제대로 추진하면 많은 사람이 겪는 고통을 덜고, 다음 단계 더 크고 완고한 ‘구조’를 바꾸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 근본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이분법으로 볼 필요가 없다.

우리는 현상인가 또는 구조인가하는 이분법보다는 무엇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나, 누가 어떤 힘을 가졌는가, 또는 그런 힘을 어떻게 찾고 키울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 개혁과 변화를 둘러싼 정치적 기반이나 ‘권력관계’라 해도 좋다.

누구나 아는 대로, 새 정부가 가진 정치적 토대는 튼튼하지 못하다. 가시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약한 고리’는 의회 권력이다. 다른 당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법 하나를 바꾸지 못하고 추경예산 편성도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찬성 여론이 60%를 넘는 정책부터 추진하겠다는 것은 고육지책이다.

불리한 의회 권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여러 정당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은 당연지사, 이해관계의 방향이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이 정부가 ‘실패’해야 정치적 기회가 온다면 정당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뻔하지 않는가.

다른 권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 경제, 관료는 숨죽인 채 관망하고 있지만, 기존의 이해관계를 흔들면 언제라도 반(反)-개혁으로 돌아설 것이다.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모든 정부의 정책과 조치를 두고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정권이 아니라 개혁의 권력관계!

이에 비해 변화와 개혁을 옹호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흩어져 있다. 대통령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과제, 비정규 노동 개혁만 해도 그렇다. 정치권과 경제계, 학자, 노동조합, 언론, 그 모든 분야의 지형은 한쪽으로 치우쳤다. 드러내 말하지 않지만, 압도적 다수가 비정규 노동이 확대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어떤 이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 토대를 넘어 역사, 문화, 윤리에 이르면 더욱 비관적이다. 내면화한 가치가 새로운 사회적 권력 관계를 만들 정도면(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참고할 것), 비정규 노동을 둘러싼 권력 관계는 좀처럼 변화를 허락하지 않을, 완고한 것이다.

아동수당, 기초연금이나 장기요양 확대도 비슷하다. 비정규 노동보다야 낫겠지만, 이 정도 복지를 추진할 권력도 토대가 튼튼하다 할 수 없다. 누가 얼마나 돈을 더 낼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라면, 이는 추가 재정 부담을 둘러싼 권력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보수 성향의 야당, 경제관료, 전경련과 경총, 보수 언론, 유명한 학자(특히 경제학 배경의), 여러 이름의 단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 상황을 외면하지 말아야” “실용적으로” 등의 주문이란, 완곡하지만 저항하는 권력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개혁적 복지 정책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권력도 허약하다. 목소리는 약할 뿐 아니라 흩어져 있다. 힘이 약하고 그나마 동요한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재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데, 증세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면? 걱정하고 주저하며, 결국 후퇴하거나 침묵할 수도 있다.

결국, 권력 관계로만 보면 개혁이나 개혁적 정책이 성공하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경제와 돈이 걸린, 사회경제적 개혁이 특히 더 그렇다. 시간이 가면서 정치적 ‘자산’이 줄어들면(기억, 여론, 지지 등), 사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정부나 정권의 성공과 실패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삶이 나아지고 사회(정치 공동체)가 진보할 수 있는가? 이 정권과 정부가 그 길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어떤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런 맥락에서 정권과 정부를 이해하고 판단한다.

국가-경제-시민의 삼분법으로 권력 관계를 이해하면, 지금 개혁을 둘러싼 권력 지형에 ‘시민 권력’이 할 일은 분명해진다. 국가권력과 경제 권력에 영향을 미치고 압력을 가하며 ‘통제’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국가권력과 경제 권력이 시민의 힘을 의식하고 함부로 하지 못하게, 또는 시민과 사회 권력에 올라타게, 더 적극적으로는 시민의 의지와 뜻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흔히 말하듯, 국가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가-경제-사회 권력이 분립하여 상호작용하는 결과가 한 ‘국민국가’의 권력 구조라면, 사회 권력은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내야 하며 국가 또는 경제와 긴장하고 겨루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터. 오늘 우리는 한 가지 시민 행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러 정부 부처와 위원회의 계획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언론의 특집 기사에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무슨 기업 연구소의 리포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시민사회 또는 사회 권력,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이 개혁 로드맵을 만들고 전략을 짜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과 보건의료 같으면, 우선 시민사회(여러 개인, 단체, 조직, 연대 등)가 협력하여 개혁 과제를 고르고 갖가지 전략을 모색하는 데서 출발한다. 잘 되면 “건강권과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본 건강체제 개혁방안”과 같은 결과물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와 경제권력에 요구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실천하고 강화해 나갈 것인가도 포함한다.

이 과정과 결과물은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협력으로 이어지며,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과정’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런 구조와 과정(실천), 결과물이 모두 새로운 권력의 요소이며 또한 권력의 토대다.

이렇게 만들어진 권력은 국가권력 또는 경제 권력을 어떤 면에서는 강화, 지원하고, 또 다른 면에서는 반대, 저항, 통제한다. 협력과 연대, 경쟁, 반대와 저항. 상호관계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지금 새 정부(국가권력)가 제안하거나 제안하고자 하는 개혁적 정책이 성공하는 데에도 시민이, 그리고 시민이 만들어 나갈 사회 권력이 중요하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 크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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