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정신건강복지법을 ‘공공보건의료’ 강화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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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정신보건법’을 대신한 ‘정신건강복지법’이 일 년의 준비를 거쳐 5월 30일부터 시행된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처음 만들어졌으니, 20여 년 만에 법이 바뀌는 셈이다. 새로운 이름 그대로,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의 복지가 증진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제목에서, 또는 이 정도에서 이 <논평> 읽기를 멈추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어서, 왠지 무겁고 답답한 주제여서, 전문가나 관심을 가질 일이어서 등, 여러 이유로 정신질환은 ‘배제’되어 왔다. 지금 그 생각을 잠시 멈추고, 약간의 시간을 내주기 부탁한다.

어떤 질병이나 사회문제인들 그렇지 않으랴. 관심과 논의가 환자와 보호자, 전문가, 공무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마땅히 사회적, 공적 과제가 되어야 하는 많은 것들이 개인과 시장에 맡겨진다. 어떤 건강문제 또는 사회문제와 비교해도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는 숨어들고 또 숨겨지기 쉽다.

 

이제라도 더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정신장애는 생각보다 많고 중요하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정신장애의 평생유병률은 14.4%(니코틴, 알코올 사용장애 제외)에 이르고, 추정 환자 수는 368만 명을 넘는다 (바로가기).

입원 중인 환자 수와 진료비도 엄청나다. (건강보험이 아닌) ‘의료급여’ 대상자에 한정해도 2016년 한 해 약 3만 8천 명이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성 장애’로 입원했고 진료비는 4천억 원을 넘었다. 조현병 진료에 쓰는 건강보험 진료비만 한 해 3천억 원에 가깝지만, 그나마 환자 수(50만 명)의 20% 정도만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정신질환의 특성상 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중요한 질병 ‘부담’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렇다.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한 걸음 나아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자세한 내용을 다 적을 수 없지만, 강제입원 절차를 더 어렵게 만들어서 환자의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을 줄인 것이 핵심이다. 개요를 한 신문의 기사로 대신한다 (바로가기).

 

새로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은 인권 보호를 위해 강제입원 절차를 대폭 손질했다. ‘억울한 강제입원’이 상당수 줄어들 전망이다. 그동안은 보호자와 해당 병원 정신과 전문의 1인의 동의만 있으면 자·타해 위험이 없어도 강제입원이 가능했다.

 

앞으로는 국공립을 포함한 다른 정신의료기관의 전문의 1인이 추가돼 일치된 진단을 받아야 2주 이상 입원할 수 있다. 모든 강제입원은 1개월 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심사를 받고 자·타해 위험이 확인돼야 한다. 강제입원 시 6개월에 한 번 이뤄지던 입원기간 연장 심사를 초기에는 3개월로 단축했다.

 

찬반은 필연적이다. 정신과 의사들과 병원은 새로운 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많은 환자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걱정한다 (바로가기).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지고 입원을 지속하는 것도 어려우면 환자들은 지역사회에서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편견과 턱없이 부족한 지역사회 인프라(입원 치료를 대신할 치료와 재활, 복귀시설과 서비스)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걱정이라 할 수 없다.

 

 

정신장애인 단체들과 전문가의 입장은 다른 측면에서 엇갈린다. 개정된 법도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에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바로가기), 부족하지만 현실적으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다 (바로가기). 여전히 강제입원을 둘러싼 인권이 초점이다. 정신복지 전문가인 이용표 교수는 강제입원 절차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가기).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국가와 비교한다면 강제입원 절차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강제입원은 법원의 판결에 의하거나 행정부의 행정심판을 통하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정법조차도 해당 병원의 전문의 1인과 공공기관의 전문의 1인에게 강제입원 판단을 맡기는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의사 개인에게 지나친 권력을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사법심사제를 도입하여 강제입원 절차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환자와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장기입원을 줄이고 지역사회와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 품위 있는 사회경제 생활을 회복하는 것이 공통된 지향이다.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강조점과 우선순위가 다르다(정부의 준비나 법률상 미비 사항을 제외한다면). 겉으로 보기에 한쪽은 치료받을 기회를 앞세우고, 다른 쪽은 강제입원의 인권 침해를 강조한다. 이해관계가 아니라, ‘당장’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번 주 법이 시행되면 시작부터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부에서 예상하는 대로 환자가 지역사회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예상 시나리오가 논의된 만큼 정부와 의료계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끝이 아닌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조용하다고 해서, 법의 취지대로 강제입원이 확 줄고 환자 인권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고 낙관할 수 없다는 것. 정책과 입법은 단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목표한 결과를 성취해야 의의가 있다.

 

‘인프라’가 거의 바뀌지 않은 것이 결과를 비관하는 근거다. 새 법을 시행하면서 정부는 강제입원을 판단하는 정신과 전문의를 확보하는 데에 대부분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신건강증진센터 및 사회복귀시설 확충, 정신장애인 토탈케어 서비스 전국 확대,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중간집 확충 등 지역사회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으로는, (현금이 아니라) ‘수표’나 ‘어음’과 비슷하다. 목표에 이르더라도 먼 훗날일 가능성이 크다.

 

처음이 아니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될 때도 법의 지향과 원리는 ‘탈원화’ ‘탈시설’ ‘지역사회 복귀’였으나,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정신병원과 요양원은 더 늘어났고 입원과 수용 모델은 흔들리지 않는다. 정책의 지향과 원리를 정책 수단과 집행이 뒷받침하지 않은(못한) 결과, 시장만 홀로 커져 이해관계는 더 촘촘해지고 ‘개혁’은 더 어려워졌다.

 

이제 다시, 인프라 없이 강제입원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다른 편법과 왜곡을 부를 뿐이다. 그 어떤 새로운 절차도 현실 앞에 무력해질 수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특히 환자 가족과 지역사회의 준비,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제도, 정책, 문화 환경이 갖추어져야 정책이 작동할 것이다.

인프라의 핵심에는 ‘공공’이 있다. 단언하지만, 인권과 지역사회의 두 가지 키워드는 현재의 ‘시장적’ 의료와는 조화될 수 없다. 정신장애인의 재활과 사회복귀, 복지는 경제성, 효율성, 생산성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에 기초해야 한다. 여기에 민간과 시장은 무력하다.

 

더 구체적으로는 국가와 공공부문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신건강센터와 재활, 사회복귀를 어떤 민간이 책임질 수 있을까. 만성 정신장애인을 위한 주거시설은 누가 운영할 수 있는가, 그 가족은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 답은 명확하다.

 

민간은 파트너 역할 이상을 하기 어렵다. 그나마 경제적 인센티브가 명확하고 자체 경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윤이 있어야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윤리나 책임의식과는 무관한, 시장 참여자의 ‘합리적’ 행동이다. 정신장애는 다른 보건의료 서비스와 비교해도 공공의 역할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인프라가 갖춰질 때까지 과거 그대로 가자는 뜻은 아니다. 당장 정부와 공공의 응급 역할이 중요하다. 강제입원 절차를 지키기 위해서 재정과 인력을 더 확보해야 한다(쥐어짜거나 겁을 주는 방식이 아닌!). 지역사회로 나오는 퇴원환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재활을 촉진하는 데에도 복지 인프라를 활용하는 등 ‘특별’ 대책을 마련하라.

 

이어서 중장기 계획과 실행. 단기와 중장기를 구분할 것 없이 보건복지부 한 부처로는 턱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산, 지자체, 행정과 법률, 사법, 인권, 민간, 지역사회까지 생각하면 정부 전체, 그리고 국가적 아젠다다.

 

이렇게 갈 수만 있다면, 정신건강복지법은 위험이자 기회다. 한국판 ‘바실리아법’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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