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국정감사를 감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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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간은 국정감사 철이다. 2, 3일 지났을 뿐인데, 벌써 개회조차 못했느니 증인이 출석하지 않았느니 말이 많다. 남은 기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한편 낯설고 한편 익숙한 풍경이다.

그 익숙함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매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니 어지간히 눈에 익었다. 첫째, 국회의원이 관심을 두는 것은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는 일이라 모두가 눈에 띄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것이 지상 목표니 이해할 만하다.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만한 이벤트. 과거에는 종이로 차트를 만드는 정도였으나, 요즘은 슬라이드나 동영상을 비추는 것도 평범하다. 물건을 꺼내 직접 보여주거나 작동하는 단계를 지나 실험까지 등장한다. 바야흐로 ‘공연형’ 국정감사가 유행이라 할 것이다.

둘째, 일방통행과 동문서답의 질문과 응답. 참석한 모든 국회의원이 정해진 시간 안에 말로 존재감을 과시하려면 답은 들을 겨를이 없다. 앞사람과 겹쳐도 상관없고 이미 답을 얻은 질문도 그대로 반복한다. 답하는 쪽도 거기에 맞추어 정확성이나 내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셋째, ‘한탕주의’ 질문도 많다. 짧은 시간 안에 존재를 드러내고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되려면 눈에 확 띄어야 한다. 이상한 통계, 예외적 사례, 처음 드러나는 것 같은 비밀과 음모일수록 유리하면, 선정성을 피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조연’도 등장한다. 며칠 전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는 단지 에이즈 환자를 많이 봤다는 이유로 한 의사가 참고인으로 나왔다. 의사에 에이즈면 다들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참고인은 홀로 부정확한 통계, 잘 밝혀지지 않은 이유와 경로, 근거 없는 대책을 주장했고, 국회 바깥의 많은 전문가는 동의하지 않았다. 참고인 본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데 힘을 보탰고, 국정감사 역시 일종의 선동에 활용되었다.

 

이쯤 되면 근본 질문이 절로 나온다. 국정감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난맥상과 효과에 대한 비판은 국정감사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니, 어떻게 고치자는 의견도 한둘이 아니다.

어떻게 바꿀까를 말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것이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에 국정감사를 대신할 대안을 찾기 어렵다. 정책과 행정의 전문성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때문에 행정 권력이 입법 권력보다 점점 더 강해지는 형편에, 국정감사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한 가지 핵심 수단이다.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대의 민주주의를 전제하면,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정감사의 주체는 주권자(국민)이고 국회의원은 권력을 위임받는 ‘대리인’이다. 국회의원을 ‘개인화’하여 국정감사의 질과 가치, 한계를 말하는 것은 과녁이 틀렸다. 아무리 못나고 무능력한 국회의원도 주권자를 ‘대표’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대표와 대표성은 한계이면서 동시에 가능성을 내포한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말에 따르면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보다 못한 차선책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다(논문 바로가기).

“대표(representation)가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인민 내지 시민들의 정치적 역량을 약화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근거를 두면 대표는 그냥 주권자를 대리하는 자가 아니라 주권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좋은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자이다. 국정감사에서 대표는 대중이 갖는 에이즈에 대한 흔한 오해를 바로잡는 자이고, 즉자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에 숙의를 유도하는 자이다.

 

국정감사가 더 좋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근본부터 바꾸어야 하면, 즉 대의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주권자의 역량이 성장해야 가능한 것이면, 국정감사가 좋아지는 것은 한참 기다려야 한다. 비관적으로 보면, 사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전망하기도 어렵다.

비관을 넘어 단기 전망과 해야 할 일은 또 다른 차원이니, 국정감사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이라도 더 나아져야 한다. 현실에 엄존하는 고통과 고통의 당사자들 때문이다. 행정부에 맡겨 놓은 ‘문재인케어’나 ‘치매 국가책임제’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어떻게 체크할 것인가? 남북문제와 사드 배치, 핵발전소는 정부가 하는 일을 가만히 두고 봐도 괜찮을까?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국정감사는, 나아가 입법부는 시민의 안녕과 복리에 지금 직접 기여할 수 있다.

그런 범위와 수준이라면 이미 여러 번 논의한 경험이 있다. 충분히 정치화, 사회화되지 않은 것이 한계지만, 현실과 대안의 지식은 모자라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국정감사를 특정한 시기에 한정하지 말고 상시로 하자는 주장에 동의한다.

국정감사에서 답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우거나 눈에 띄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이유 한 가지는 묻고 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시간을 늘려 충분히 묻고 따질 기회를 줘야 한다. 언제 할 것인가, 얼마나 자주 할 것인가, 시기와 빈도도 문제다. 이를 포함해 어떤 ‘상시국정감사’인지는 여러 의견과 논의가 있으므로 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행정과 관리를 개선하자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한 가지 의견은 다음과 같다(보고서 바로가기). 이 또한 그 방향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친다.

“국정감사 후 사후조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시정요구 유형 및 제재조치를 구체화하고, 국정감사 결과에 대한 행정부의 관리와 보고를 의무화하며, 입법지원조직에서 국정감사 이행상황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점검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 역시 필요하다.”

우리는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내부 프로세스 개선을 넘어 국정감사에 대한 시민참여를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시민참여 없이는 앞에서 보인 대안들도 제도화 가능성이나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감사에 시민이 참여하는 경험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아서, 중앙과 지방 정부 감사에 이미 ‘시민참여감사’ 개념이 도입, 확산되고 있다(기사 바로가기). 행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여러 비정부기구가 국정감사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것도 시민참여의 하나로 포함해야 한다.

시민참여감사가 해결해야 할 이슈는 많고 다양하지만, 기술보다는 ‘정치’가 어렵고 중요하다(논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 누가, 왜,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누가 반대하고 누가 옹호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우리가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현재 행정부에 집중된 참여를 입법부까지 확대하면서 시민이 참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이즈의 현황과 대책을 논의하는 국정감사 자리에 시민으로서의 에이즈 환자가 주도한 참여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주권자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할 내부자이자 또 하나의 당사자가 시민참여를 주도하는 것이면,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은 ‘동원된 참여’이다. 흉내만 내는 ‘유사 참여’로는 대의 민주주의의 본질, 즉 주권을 대표에게 위임한 인민 또는 시민이 대리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

시민참여형 국정감사는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시민이 만들고 요구하며 어떤 때는 싸워야 느리게라도 가까워질 것이다. 어떤 시민이 어떻게? 어떤 정치도 그런 것처럼 권력과 과정, 주체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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