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경제위기는 약자의 건강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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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심상찮다고 한다. 그냥 엄살로 받아들이기엔 위기의 징조가 많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다시 내릴 정도니 그냥 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위기인지 또 대책은 무엇인지 늘 의심스럽다. 공연한 피해의식이라기보다는 위기를 핑계로 없는 사람이 더 많은 희생을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위기는 다른 무엇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악영향을 받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실업과 소득하락, 부채 증가와 서민들의 구매력 감소 같은 것 말이다.   
 
위기라고 하지만, 정부 대책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대책은 사람이 빠진 ‘물화(物化)’의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암호와 같은 숫자만 난무하고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경제위기가 불러 오는(또는 불러 올) 고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빠져 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식비와 교육비까지 줄이고, 병원마저 함부로 갈 수 없다는데, 어떤 대책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니 그 속에서 건강대책을 찾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구하기나 마찬가지다. 경제위기에 건강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대책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연구된 것에 따르면, 경기 변동이나 경제위기는 모든 건강문제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몇몇 문제에 집중된다. 자살, 살인, 전염병 같은 것이 그렇다.   
 
예를 들어, 2001년 발표된 송영종의 논문은 IMF 경제위기 직후 자살률이 위기 발생 3개월 후부터 6개월 후까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경제위기를 전후해 식중독 환자가 두세 배 늘었다는 신문기사도 보인다. 
 
좋은(?) 소식도 있다. 그 중 한 가지. 보통 교통사고 때문에 생기는 손상이나 사망은 줄어든다. 1998년 경제위기 때도 실제 그랬다. 차를 덜 운행하고 그만큼 사고도 덜 일어난 결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떤 병이 더 생기고 건강이 얼마나 나빠지는가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 경제위기의 건강효과가 사람을 차별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이, 노인, 이미 질병을 가진 사람, 실직자 등 이른바 ‘취약’집단이 주로 피해를 입는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는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경제위기의 두드러진 효과다. 세계적으로는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의 경제위기가 유명하고, 한국에서도 1998년 경제위기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자세한 통계는 조금 복잡해서 인용하지 않는다).    
 
불평등한 건강 악화와 함께 의료이용의 불평등도 커진다. ‘IMF 시대엔 값싼 보건소, 약국 이용도 줄인다.’ 1998년 6월 22일 연합뉴스가 전한 기사 첫머리다. 서민의 값싼 의료이용조차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의료보장, 건강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도 경제가 나빠지면 의료이용에 곤란을 겪는다. 2008년 이후 경제위기를 맞은 일부 유럽 국가들(그리스, 스페인, 에스토니아, 체코, 아일랜드 등)처럼 보장 수준이 후퇴하면 위험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필요할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냥 불편과 고통을 참는다는 차원을 넘는다. 초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생사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경제위기는 다양한 건강과 의료문제를 불러온다. 따라서 이미 닥친 경제위기 중에, 또는 앞으로 닥칠 위기를 대비해서 마련하는 대책에는 당연히 건강대책도 들어가야 맞다.
 
우선,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보호망을 튼튼하게 정비하는 것이 급하다. 취약이라는 말이 뜻하는 대로, 이들에게는 작은 환경변화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의, 식, 주는 물론이고, 생활환경과 의료이용도 마찬가지이다. 
 
실직과 같은 급격한 경제적, 사회적 변화도 취약성의 원인이 된다. 쌍룡차 사건에서 보듯, 대책은 경제적 보호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심리적 지원도 꼭 필요하다.  
 
다음으로, 경제상황이나 빈곤에 민감한 영역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보건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전염병 발생을 막고 유행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상황에 따라서도 그렇지만, 대응을 위한 정책에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의료이용이다. 필요한 의료이용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정책 대응의 현실적 목표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의료급여는 가장 유용한 정책수단이자 보호장치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료급여를 대하는 정부의 시각에는 비판할 점이 많다. 경제위기에 제 구실을 하려면 의료급여의 원리와 정책목표 자체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사실, 이런 하나하나의 정책적 대응이 가능한가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기조이다. 위기대책은 흔히 ‘국가적’이라는 명분과 중립이라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이익과 희생의 불평등을 숨긴다. 
 
지난 2008년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일부 개인과 집단은 큰 이익을 본 덕분에 빈부 격차는 계속 확대되었다. 통계청이 올 3월에 발표한 지니계수는 2006년에 0.330이었으나 2008년 0.344, 2009년 0.345로 악화되었다. 성장을 명분으로 한 감세 혜택도 몇몇 대기업과 아주 적은 수의 부자들에게 돌아갔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건강피해 역시 한계 계층에 집중된다. 대책마저 이들의 불공평한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흔하다. 긴축 예산을 편성한다는 이유로 가혹할 정도로 의료급여의 지출을 통제하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새롭게 더욱 강한 어조로 경제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위기 그 자체보다 어떻게 위기에 대응하는가 하는 정책의 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조는 바뀌어야 하고, 대신 ‘불평등에 민감’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새로운 틀을 짜야 할 때이다.  
 
이런 시각에 기초한 새로운 틀이라면, 위기 대책에 건강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도 두루뭉수리가 아니라 건강피해가 집중되는 이들을 위한 ‘편파적’ 대책이라야 맞다.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고통 전가 정책이 부자 천국 서민 지옥을 낳고 있다.
(출처: 레프트21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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