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여자보다 일찍 죽을까?
[서리풀연구통] 유해한 남성성의 건강 비용
김 새 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남자들은 별로 잘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이고 죽으라면서 그들을 전쟁터에 보냅니다. 그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면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고속도로 한가운데 누워 있습니다. 그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고 얼마 안 있어 심장 마비로 죽고, 남자답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간과 폐의 질병으로 죽고, 대략 여성들보다 네 배 많은 비율로 자살을 하고, 대개 여성들보다 세 배 많은 비율로 살인의 희생자가 되며(주로 다른 남자들의 손에), 그 결과 여성들보다 약 8년 덜 삽니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벨 훅스 지음, 이순영 옮김, 책담 펴냄) 205~206쪽)
미국의 유명한 페미니스트 저자 벨 훅스는 가족관계치료사인 올가 실버스타인의 책을 인용해 해로운 가부장적 남성성과 그 결과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다.
이런 양상은 한국에서도 비슷하다. 다만 한국에서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2.4배이고 살인 가해자의 84%가 남성인 것은 유사하지만 살인 희생자는 여성이 51%로 조금 더 많다(☞참고 자료 : 여자가 더 위험해, 안 위험해? 진짜 통계는 이렇다). 그런데도 2014년 기준 한국 여성의 기대여명은 85.5세인 반면 남성은 78.9세로 6.6년을 덜 산다.
건강 영역에서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건강행태가 불량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빈번하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며, 몸이 아픈 경우에도 관련해서 사회적 지지를 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보건소의 건강증진프로그램이나 건강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은 대부분 여성이며, 지역사회에서 가족과 이웃들의 돌봄을 위해 나서는(또는 동원되는) 이들 역시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이런 결과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건강과 돌봄, 질병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 경험, 대응 방식은 젠더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젠더 간에 이런 차이는 왜 나타나는 걸까?
가부장적 남성성은 위와 같은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건강 영역에서 고민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관련해서 2016년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남성 노인들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연구가 노화연구지(Journal of Aging Research)에 실렸다(☞관련 자료 : 근거기반건강증진프로그램에 남성노인참여). 연구진은 플로리다의 건강한 노년을 위한 지역 협의회(Healthy Aging Regional Collaborative)에서 운영한 여러 가지 건강증진프로그램의 강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제시했다.
강사들이 꼽은 남성 노인들의 비참여의 이유는 다양했다. 남성 노인들은 에어로빅 등 기존의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여성들을 위한 것으로 여겼으며, 건강증진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성 노인들이 건강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드러내놓고 떠들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강사들은 남성 노인들이 여성 노인들에 비해 노화 과정 중에 발생하는 변화를 통제하지 못하고, 건강증진교육에 참여하거나 건강과 관련된 조언을 듣는 것이 창피하거나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했다. 남성 노인들은 또 기존의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여성 위주로 짜여져 있고, 이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을 더 나이 들어 보이거나, 우스워보이게 할 것을 염려했다. 건강증진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들의 남성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남성들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남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남성의 취향과 선호를 고려한 건강증진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홍보할 것을 권유할 것을 전략으로 내놓았다. 또 지역사회의 남성 리더가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있도록 하고, 남성 프로그램에 남성 강사를 고용할 것을 권유했다. 이들의 관점은 젠더에 따라 서로 다른 필요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젠더감수성 있는 접근이다. 그러나 여전히 왜 남성들이 건강증진을 민망해하는지,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남자답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실린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성성이 건강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지적한다. 고전적 성차별적 가부장제에서 남자 아이들은 자신의 취약함,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며, 친밀함에 대한 욕구를 감추도록 사회화된다. 이렇게 자라 성인이 된 남성들은 몸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며, 질병과 고통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다(☞관련 자료 : 남성성의 형성과 공중보건개입의 의도하지 않은 영향).
기존의 연구들은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진짜 남자’의 속성들, 즉 공격적이고, 감정적이지 않고, 통제하고, 모험적이며, 지배하며, 여러 명의 성적 파트너를 거느리는 속성이 부정적인 정신적·신체적 건강 결과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지배하는 남성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건강 영향은 당사자에서 멈추지 않는다. 남성성의 규범을 획득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특성은 폭력과 위험한 성적 행동, 가정 폭력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이런 남성의 가족인 여성과 아동에게도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공중보건과 건강정책에 기존의 고정된 남성성 규범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젠더변혁적(gender-transformative)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강 정책은 젠더 평등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젠더 관계의 권력을 면밀히 고려하고, 불평등하고 건강에 해로운 젠더 규범과 고정관념을 변화시킴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
보건소의 건강증진프로그램 계획에서부터 치매국가책임제의 지역공동체 돌봄체계 구축, 보장성강화정책에 이르기까지 젠더는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결정적인 차원이다. 돌봄과 건강 필요는 명백히 젠더화되어 나타난다. 건강, 보건, 의료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그렇게 태어났기에 당연한 성차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여성으로, 남성으로 길러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자원, 인식이 모두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점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어떤 남성성에 대해 되돌아보고, 모두에게 보다 건강한 남성성을 고민해야 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