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가 호스피스를 꺼린 까닭
[서리풀연구통] 의료 이용 결정에 영향 미치는 복잡한 요인들
김정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환자가 회복을 위한 치료를 그만두고 병고를 덜어주는 케어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회복이 불가능하고 사망에 임박한 환자들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어려움을 돕는 등 삶의 질을 높여준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이용한 사별 가족들의 만족도(93%)가 일반 암 치료기관을 이용한 경우(58%)보다 훨씬 높다는 점은 그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관련 기사 : 호스피스에 대한 만족도 93%…암치료기관 이용보다 2배 가까이 높아).
그러나 아직까지 이용률은 미미하다. 점점 보편화되고는 있다지만, 2016년 암 사망자 중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한 이들은 17.5%에 불과하다. 미국 52.0%, 영국 46.6%, 캐나다 40.8%는 물론, 가까운 대만의 39.0%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관련 기사 : 호스피스 이용 늘지만… 완화의료 비율 세계 33위). 아마도 죽음을 인정하기 어려운 환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치료하려는 의사들, 충분하게 갖춰지지 못한 제도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짐작이 크게 틀리지는 않겠지만, 오늘 소개할 연구는 상황의 복잡함을 잘 보여준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연구팀은 미국에서 말기 암 환자들이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말기 환자들과 돌봄 제공자들, 그리고 이들을 진료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했다(☞논문 바로 가기 : 생의료화의 문화적 측면으로서 희망의 정치경제).
의사들은 언제 치료를 멈추고 호스피스로 넘어가야 할 지 시기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했다. 살아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치료를 중단하면 어쩌나 우려하는 것이다. 의사들의 감정도 그 시기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6개월, 1년, 18개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의사들도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에서 호스피스 단계로 넘어가야할 시점이 의사들의 망설임으로 늦춰지기도 하는 것이다.
제도적 요인도 호스피스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노인건강보장제도인 ‘메디케어’는 적극적 치료와 호스피스 케어를 동시에 보장하지 않는다. 한 번 호스피스를 선택하면 다시는 적극적 치료로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치료를 계속 받을 것인지 호스피스 케어를 받을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의사들의 망설임에 일조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사회문화적인 이상과 가치도 호스피스 이용 결정에 제약을 가한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암과의 ‘전쟁’이라는 은유를 사용해 왔다. 암 환자 개개인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해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 싸움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무기가 바로 ‘희망’이다. 이 희망이 환자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암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게 한다. 역설적으로, 희망과 낙관이라는 가치가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계속 암과 싸워나가는 환자들에게는 시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상당히 많이 준비되어 있고, 지금도 임상실험을 통해 새로운 치료법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생의학은 기업화, 상품화되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에 상당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개입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요소들이 희망 담론을 강화시킨다. 위험하지만 새로운 치료법에 희망을 걸고 임상실험에 참여할 환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희망이 때로는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프로세스와 연결되는 셈이다.
이러한 연구가 보여준 호스피스 이용의 걸림돌들이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치료법을 택할지에 대한 결정이 단순히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료실 너머 수많은 이해관계와 사회문화적 구조들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료비 중에 건강보험이 급여하지 않는 서비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 불필요한 처방과 처치가 많은 것 등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정치경제 또한 생각해볼만 하다. 신약에 대한, 최첨단 의료기술에 대한 환자들과 시민들의 희망이 어떻게 기업화되고 상품화되는지, 그 희망을 이용하고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건강이 아니라 그보다 협소한 보건의료만 놓고 보아도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보건의료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다. 건강에 대해 아무리 범위를 좁혀 생각하려 해도 보건의료 그 이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