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연구通] 개인 책임만 강조하는 접근은 위험
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요즘같이 폭염이 계속되면 언론에서는 ‘설사병’을 우려하는 기사가 빠지지 않는다. 겨울철이면 독감 기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 기사는 공통적으로 ‘손 씻기’를 강조한다. 2015년 메르스가 크게 유행했을 때에도 언론에서는 손 씻기를 강조했다(☞관련 기사: 메르스 첫 완치, 메르스 예방수칙 방법은? “철저히 손씻기”). 이 밖에 수족구병, 폐렴, 결핵, 유행성 눈병 등 온갖 감염병뿐 아니라 심지어 환경 호르몬 피해를 줄이는 데에도 손을 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관련 기사: 집안 환경 호르몬 ‘득실’… 손 자주 씻어야)
손 씻기는 공중보건과 위생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비판적 공중보건(Critical Public Health)>에는 조금 다른 관점의 논문이 실렸다(☞논문 바로 가기: 거품 일으키기: 캐나다 신문에서 손 위생의 부흥(과 몰락?), 1986-2015). 손 씻기만 강조하는 뉴스들이 개인 위생을 감염 예방의 가장 중요한 대책으로 여기게 만들고, 구조적 측면은 간과한 채 개인의 행동과 교육만 강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캐나다 신문들에서 제목과 도입 문단에 ‘손 씻기’와 ‘손 위생’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총 518개의 기사들을 가려냈다. 그리고는 이들 기사에서 손 위생이 중심 내용인지, 손 씻기/위생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긍정적, 부정적, 둘 다, 혹은 입장이 없는), 어떤 종류의 기사인지(뉴스 리포트, 편지, 칼럼, 사설) 등을 분석했다.
손 씻기 기사는 2003년 사스(SARS)와 2009년 인플루엔자(H1N1)가 유행할 때 가장 많았고 2009년 이후에는 크게 줄어들었다. 특이한 현상은 사스와 인플루엔자 유행 사이에 또다시 손 위생 관련 기사가 급증한 것이었다. 당시에 의료 관련 감염이 이슈가 되면서, 보건의료인들의 손 위생에 대한 기사가 많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2006년 캐나다 연방정부가 손 위생을 중점으로 하는 WHO의 의료관련감염 감소 전략 캠페인 “깨끗한 돌봄이 안전한 돌봄(Clean Care is Safer Care)”에 참여한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년 동안 손 위생을 권고하는 대상도 바뀌었다. 초기에는 일반 대중들에게 개인의 책임과 훌륭한 시민성을 강조하며 손 씻기를 권고했다면, 2007년부터는 보건의료인의 손 위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2008년 즈음부터는 환자들을 캠페인에 끌어들였는데, 의료인들에게 손 씻기를 촉구하라는 내용이었다. 연구팀은 의료인들의 책임을 강조했던 것이 효과가 시원치 않자 환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손을 씻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위생 문제까지 해결하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손 씻기 혹은 손 씻기 캠페인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면, 부정적 평가를 하는 기사가 5%,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다룬 기사가 11% 정도였으며, 대다수는 종종 강력한 도덕적 메시지와 함께 손 위생을 강조했다. 일부 기사는 의료관련감염을 다루면서 병원이 너무 붐비는 문제, 부적절한 장갑 사용, 지저분하고 낙후한 시설 등은 뒤로 한 채 손 씻기만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렇게 손 위생만을 강조하는 보도 행태는 공중보건에서 책임의 개인화 추세를 반영한다. 감염병을 확산시키는 원인은 불결한 손뿐 아니라 공중보건 예산, 붐비는 병원, 부족한 의료인력, 낙후된 시설 등 다양하다. 그런데도 개인행동만을 강조하는 것은 복잡한 공중보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행동에 제약을 가하고 영향을 미치는 더 큰 맥락에 대해서는 간과하도록 만든다.
이는 감염병과 손 씻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최근 정부에서 종합대책까지 발표한 비만 문제 역시 개인의 행위와 책임만 강조한다면 더 큰 사회적, 물리적 환경에 대한 개입을 놓치게 될 것이다(☞관련 기사: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 확정…고도비만 수술에 건강보험 적용). 물론 개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실천은 매우 중요하다. 손 씻기 그 자체는 개인 차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위생대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곤란하다. 시민들이 혹은 보건의료인들이 충분히 손 위생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지, 개인들이 아무리 손을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위험은 무엇인지, 왜 발생하는지 구조적 진단과 대응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