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의료기기와 복제약 규제완화가 의료 영리화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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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의료 영리화는 우리 모두가 안다. 역사가 오래 되었고 말도 익숙하다. 다름 아닌, 공론조사를 진행 중인 제주도 사례다(기사 바로가기).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인 루디(녹지)그룹이 전액 투자한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보건복지부 승인 이후 2016년 4월부터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의 터에 778억원(운영비 110억 포함)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연면적 1만8223㎡) 규모에 47개 병상의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조성했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4개 과목으로 의사 9명과 간호사 28명 등 모두 134명을 채용했다. 제주도지사의 허가만 내려지면 당장이라도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여당은 야당 시절부터 영리 병원을 반대한다고 공언했고, 지금 정부도 진작부터 의료의 공공성 훼손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지금 제주에는 책임 회피의 정치가 작동하는 중이다, 중앙 정부는 도 정부에, 도는 결정을 피하다가 급기야 공론 조사로 책임을 떠넘겼다. 지방 분권과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제주도의 결정에 무관하게 영리 병원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의료 영리화를 좋지 않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터, 돈벌이만 신경 쓰는 의료에는 반감이 강하니 여론은 늘 나쁠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여당도 그동안 내세운 반대 의견을 쉽게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적어도 이번 정부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에, 정작 지금부터가 포인트다. 제주도 식의 영리 병원만 의료 영리화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좁다. 영리화란 말만 쓰지 않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영역에서 의료 영리화의 압력이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의료 영리화가 진행 중이다. 괜한 짐작이 아니다. 먼저, 문화정치적 차원. 최근 정부가 부채질하는 혁신 성장과 규제 개혁론은 사람을 빼고 ‘기기’와 ‘약품’을 강조한다. 의사와 환자, 치료와 돌봄은 슬그머니 뒤로 숨고 눈에 보이는 물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이미 안전성이 증명된 체외 진단기”와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환자, 의사, 간호사 등은 어디로 가고, (안전한) 기계만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여기서 의료 영리화와 경제로서의 혁신 성장론을 분리하려는 의도를 읽는다. 이미 의료 영리화는 반대한다 했으니, 기기와 장비, 약품과 기술 등을 건강과 보건에서 떼려는 시도다. 한 마디로 말해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산업 또는 경제라는 논점으로 옮기는 것. 결과적으로 이건 의료 영리화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성장과 산업 진흥이라 명명하려 한다.

 

“현 정부는 영리 병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는 의도가 뻔히 읽히지만,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우리는 의료기기와 약품의 영리화가 곧 의료 영리화라 해석한다. 영리화한 기기와 약품, 기술은 영리화한 병원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첫째, 의료기기와 약품은 의료 서비스 없이는 무용지물이니, 이는 의료 영리화를 구성하는 한 요소이자 고리다. 휴대전화 기계와 이동통신 서비스의 관계와 비슷하다. 스마트폰을 많이 팔기 위해서는 새로운 서비스를 쓰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장에서 상품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의료기기와 복제약이 보건의료 ‘시장’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면 누군가 그 기기와 약품을 사고 쓴다. 규제를 개혁한다는(주로는 없앤다는) 뜻은 결국 판매와 사용을 촉진하자는 것이 아닌가?

기기와 약품, 기술이 ‘물화’하는 과정은 의료를 통해, 그리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은 환자와 소비자가 부담한다. 보험료든 세금이든 또는 직접 지불이든, 다른 누가 그 값을 치르겠는가? 기기와 약을 환자와 연결하는 가치 사슬의 중심은 의료와 의료 서비스다.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기기와 약품이 의료 영리화와 분리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영리 의료란 유난히 이익에 민감한 개인이 많은 것이 아니다. 또한, 영리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만 영리 의료라 말할 수 없다. 더 비싼 기기와 약품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시스템, 돈을 더 벌어야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체제를 말한다.

“개발이력이 짧고 연구결과가 부족하여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하던 혁신·첨단 의료기술을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연구결과 축적이 어려운 혁신·첨단 의료기술은 문헌 근거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허용한다? 이런 기기와 약이 살아남고 성장하는 시스템은 보건의료 전체가 더 좋은 돈벌이 대상이 되어야 유지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의료 영리화가 관철되는 것은 더 비싼 기기와 약품을 많이 쓰는 차원을 넘어 본래보다 더 비싸게 사서 쓰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시스템(기사 바로가기)

“간담회에서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바이오 관련 규제 완화를 주문하며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등 복제약 회사들에 오리지널약과 경쟁할 기회를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복제약 가격 결정 체계를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지금처럼 정부가 일률적으로 약가를 책정하는 구조에서는 바이오시밀러 강점인 저가 경쟁력을 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의료기기와 약품, 그리고 이른바 신기술이 보건의료의 상품화를 촉진한다. 어떤 영역에서든 상품화와 시장, 영리화, 자본화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보건과 의료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총리는 규제개혁의 최우선 순위가 개인정보와 원격의료라 단언했다(기사 바로가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바이오 기술 따위를 말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왜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것이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때때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 말 많은 원격의료가 성장 동력이 되려면 의미 있는 수익 모델이 필요하다. 원격의료에 필요한 장비나 물품, 정보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팔리거나, 새로운 직종이 생기고 인력 시장이 조성되어야 한다. 보건의료에서는 새로운 서비스로 분류되어(즉 새로운 상품이 되어) 누군가가 누군가로부터 비용(흔히 진료비)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주로 이런 수익의 원천이 된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도 다를 바 없다. 기기와 장비, 약품, 기술이 발전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왓슨’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진단이 새로운 상품이 되게 압력을 가한다(이미 건강보험 진료비를 요구하는 단계다). 로봇 수술은 단지 사람을 대신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로봇의 역할을 새로 상품으로 만들어 별도 보상을 요구한다. 거의 모든 것의 상품화와 영리화라 할 만하다.

지금까지 두 가지 측면만 살펴봤지만, 의료 영리화는 병원과 의료 서비스는 물론이고 기기와 장비, 약품, 인력, 심지어는 문화와 행동에 걸친 종합적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기기와 약품, 기술 등의 상품화가 그 한 가운데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료기기와 약품, 빅데이터와 4차 산업혁명을 단지 경제발전과 혁신성장 프로젝트로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지금 진행되는 의료기기와 약품, 바이오 기술, 보건의료 분야 정보통신 기술의 규제 철폐와 신자유주의적 산업화가 의료 영리화를 촉진하고 강화하며 완성하는 주된 동력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다시 말하지만, 의료 영리화는 영리 병원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것에 넘쳐 결국 한 ‘체제’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리 추구가 어때서? 우리 사회가 단 한 발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있는 곳이라면, 지금 이 논의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의료 영리화가 왜 역사적 퇴보인지, 보통 사람들을 삶을 어떻게 재앙으로 몰고 갈지, 판단 기준은 지금까지 축적해 온 교훈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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