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위험의 외주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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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연구通] 노동자가 죽어야만 제도가 바뀌는 세상, 대체 언제까지?

 

이주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12월 22일 토요일,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를 기리는 범국민촛불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에 참여한 3천여 명의 시민들은 유족과 함께 ‘위험의 외주화’를 규탄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하청노동자들의 반복되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2년이 넘도록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관련 기사 : ‘김용균 참사’에도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 표류하는 이유).

‘위험의 외주화’란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원청 기업이 상시 필요하지만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을 떼어내서 하도급 형태로 다수의 하청 기업들에게 떠넘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원청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제 전략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윤에는 안전과 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희생이 포함되어 있다. 슬프지만, 고 김용균 씨의 생명도 그 이윤의 한 부분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업에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해도, 그동안 벌어들인 이익에 비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기회비용이다.

 

이러한 방식의 ‘이중노동시장 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특징적인 노동시장형태로 발전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민건강연구소는 지난 12월 17일 서리풀 논평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이 시대의 지식으로 정립된 것을 넘어, 삶과 문화 속에 뿌리를 내렸다”고 진단했다.(☞관련 논평 : ‘위험의 외주화’는 왜 멈추지 않는가?)

하청노동자가 원청노동자에 비해 일터에서 다치거나 사망할 위험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한국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최근 <스칸디나비아 노동환경건강 저널(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에 개제된 논문 “불안정 고용과 산업재해 – 체계적 문헌고찰(Precarious employment and occupational accidents and injuries – a systematic review)”에 의하면, 하청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이 산업재해 발생과 상관성이 높은 현상은 세계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바로 가기)

 

이 논문은 1990년부터 2017년까지 발행된 불안정 노동과 산업재해의 상관성에 관한 논문 총 17편을 종합하여 체계적 문헌고찰을 시행했다. 연구팀은 불안정 노동을 하청노동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다중 직업, 시간제, 자영업, 노조 없는 일터 등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정의했다.

 

이 중 하청노동 부분에 주목해보자면, 미국 워싱턴 주와 핀란드의 산재보상자료, 이탈리아 고속열차 건설현장 조사를 이용한 세 편의 연구 모두에서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위험이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 미국 워싱턴 주에서 2003년 1월 1일부터 2006년 6월 30일까지 산재보상이 승인된 342,540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Smith et al., 2010),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표준노동자(하도급 관계가 아닌 경우)에 비해 1.17배 높았다(95% 신뢰구간: 1.14-1.19). 특히 ‘끼임’에 의한 산업재해는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하청노동자가 각각 4.93배(95% 신뢰구간: 2.80-8.08), 4.05배(95% 신뢰구간: 3.25-5.00) 높게 나타났다.
● 핀란드 산재보험연맹(Federation of Accident Insurance Institution, FAII)의 2006-2007년 청구 자료를 이용한 연구에서(Hintikka, 2011),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빈도는 표준노동자에 비해 2.26배 높았다. (95% 신뢰구간: 2.19-2.32) 
● 이탈리아의 토리노와 노바라를 잇는 고속열차 건설현장에서 진행된 2003-2005년 조사에서(Bena et al., 2011), 하청노동자는 원청노동자에 비해 산업재해율이 1.19배 높았고(95% 신뢰구간: 0.99-1.43), 계약기간이 짧을수록 산재위험이 높아졌다. 이를테면, 계약기간이 2년 이상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계약기간 6개월인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2.12배 높았고(95% 신뢰구간: 1.72-2.60), 1년인 노동자는 1.51배(95% 신뢰구간: 1.27-1.79), 1.5-2년인 노동자는 1.16배 높았다. (95% 신뢰구간: 0.91-1.26)

국가별 문화적/제도적 차이, 기업주나 노동자 개개인의 특징을 넘어서 이렇게 공통된 현상이 관찰되는 것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공통적인 ‘구조’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청노동자에게 산업재해가 집중된다는 과학적 지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불평등하고 비윤리적인 상황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단순히 힘 있는 특정 사람 혹은 단체가 행사하는 폭력이나 규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은 국가 경제발전, 국민 건강증진 등 얼핏 보기에는 긍정적인 사회 기능의 이름으로 행사되기도 한다. 권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의 외주화나 장시간노동을 ‘옳다’ 혹은 ‘어쩔 수 없다’고 믿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예컨대, 하청노동자가 사망하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요구하면 되지 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불법파견 금지 같은 ‘민주노총 선전’을 하냐는 소셜미디어 메시지, 기사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원청 기업은 책임을 지지 않고 비용을 전가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데,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대로 두고 안전관리만 강화하자고 하는 것은 사실 형용모순이다. 많은 이들이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노동시장 구조가 공정하다고 믿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울어진 지식권력의 성공을 의미한다.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불평등한 지식에 맞서기 위해서는 착취적 구조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에 주목해야한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대가로 돈을 벌고 권력을 유지시키려는 힘 말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그레이엄 스캠블러 (Graham Scambler)는 불평등을 초래하고 지속시키는 자본주의 엘리트 세력의 역할에 주목하여 ‘탐욕스런 개자식 가설(greedy bastards hypothesis)’을 주장했다. (☞바로 가기)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연구가설이지만 듣기만 해도 저절로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지 않은가? 정부가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경미한 안전·보건조치 위반에 따른 사망사고까지 하한의 징역형을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한 한국경영자총협회, “정부가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너무 엉터리”라며 “미리 이야기하는데 이 법률안으로는 논의가 불가능하다”라며 으름장을 놓은 이장우 한국당 의원, “산업안전보건법이 이대로 가게 되면 대한민국 산업계 전체를 민주노총이 장악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며 “원청의 책임이 무한정 확대되면 기업 경영 존립 기반이 와해된다”고 주장한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 우리는 더 이상 이 ‘탐욕스런 개자식(greedy bastard)’들의 손에 의해 힘없는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사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조차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지켜지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 김용균 씨 부모님의 처절한 호소와 노동단체, 시민사회의 압박 덕분에 겨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허망하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기 위해 인신공양으로 만들어졌다는 에밀레 종도 아니고, 노동자들이 한 명 한 명 죽어갈 때마다 조금씩 법이 바뀌고 제도가 개선되니 말이다. 앞으로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내놓아야 안전한 일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한 주 앞으로 다가 온 2019년에는 부디 노동자들의 인신공양 없이도, 위험의 외주화 규제가 더욱 강화되고 실질적 법 집행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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