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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인력의 성별 임금 격차, 언제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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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지난 10일 있었던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우승기념 퍼레이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특별했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대표팀 주장 메건 라피노(Megan Rapinoe) 사이의 설전이 SNS를 타고 퍼지면서 여성 스포츠와 여성 축구, 동일 임금, 인종차별금지, 성 소수자 권리 등을 열정적으로 옹호해왔던 라피노 선수의 그간 행적이 주목을 받았다. 오랫동안 FIFA와 미국 축구연맹이 체계적으로 여성 축구를 차별해왔음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해온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의 활동도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올해 (성별)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미국 축구연맹을 고소했다. 미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여자대표팀의 요구에 동의하며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바로가기: 남자축구대표팀의 성명). 스포츠계의 동일임금 실현을 옹호하고 성별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선수들만이 아니다. 이번 뉴욕의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서 축구팬들은 “동일 임금(equal pay)”을 연호했고, 조 맨친 미 상원의원은 여자선수와 남자선수가 동등한 임금을 받도록 하지 않는다면 2026년 미국에서 개최될 남자 월드컵에 연방 정부 기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관련기사).

 

누군가는 불평을 할지 모른다. 남자 월드컵이 1930년부터 이어진 세계적 행사라면 여자 월드컵은 1991년에야 시작되었고, 남자 월드컵에 비해 그 명성과 인기가 덜하니 임금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논거는 부족함이 없지만 (☞관련기사: 이제 미국 여자 축구경기 수입이 남자보다 더 높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적게 받는다), 이 글은 월드컵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므로 보다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통해 성별 간 임금격차 문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보건의료인력에서 성별 임금 격차는 중요한 연구 주제였다. 동일한 자격과 훈련, 비슷한 수준의 전문성과 기술을 가지고 동일한 노동에 종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들은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 모두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왔다. 성별 임금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연구들도 있다. 이를테면 여자 의사들이 이윤 폭이 더 큰 침습적(invasive) 처치를 덜 선호하고, 예방적 조치를 더 많이 취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양육 부담 때문에 여자 의사들이 출산 후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 비해 남자 의사들은 오히려 근무시간을 늘린다는 연구, 의과대학을 다니는 시절부터 남성들이 자신의 기대 소득을 더 높게 잡는다는 연구 등이 그것이다.

 

2019년 <건강정책 Health Policy>에 실린 프랑스 노동부와 공공지원연구센터 연구팀의 공동연구도 이런 맥락에서 의사들의 성별 임금 격차를 분석했다(☞바로가기). 이들은 성별 임금격차가 가정 내 역할분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프랑스 개업 의사들의 소득, 가족구조, 의료서비스 제공 행태, 배우자 소득 정보 등이 포함된 행정자료를 이용했다. 2005년, 2008년, 2011년 국가건강보험에 등록한 개업 의사들의 청구행태와 가족구조, 가구소득신고내용을 수집하고 이 시점 전체에 걸쳐 결혼 또는 시민결합(citizen partnership) 상태에 있었던 32,717명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경시적 분석을 시행했다.

 

분석 결과 성별 임금 격차는 전문분과와 무관하게 자녀를 키우는 여자 의사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GP)인 경우, 아이를 출산한 해 여자 의사의 임금은 자녀가 없는 여자 의사에 비해 27% 낮았다. 이 아이가 셋째 이상인 경우 임금 감소 수준은 33%에 달했다. 연구팀은 임신,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여자의사들의 소득 감소를 “양육자 효과(carer effect)”라고 명명했다. 양육자 효과는 막내가 여섯 살이 될 즈음이면 상당히 줄어들지만 자녀가 셋 이상 있는 여자 의사의 경우에는 막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에도 6% 정도의 임금감소효과가 남아있었다. 전문의라고 해도 양육자 효과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반대로 남자 의사에서는 양육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 일반의들의 경우 자녀 수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소득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저자들은 이를 “생계부양자 효과(breadwinner effect)”로 정의했다. 아이가 셋 이상이고, 막내가 여섯 살 이상인 남자 일반의사는 아이가 없는 남자 의사에 비해 약 6%의 추가 소득을 벌어들였다. 또한 남자 전문의들은 여자 전문의에 비해 자녀 출산 이후 추가 청구(extra billings, 특정한 개원 형태의 전문의들만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의료서비스에 대한 비용 청구)를 늘리는 경향을 보였다. 남자 전문의들은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8~12% 정도 많은 추가 청구를 했던 반면, 여자 전문의들은 추가 청구를 늘리지 않고 환자진료시간도 줄이면서 임금하락을 감내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자녀를 갖는 것이 성별 임금 격차의 중요한 원인이며, 이는 여자 의사들이 가정에서의 양육 부담을 떠안으며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것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여자 의료인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노동 시간을 줄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분석의 초점이자 결과라고 설명한다. 여자 의사 상당수가 의사를 배우자로 선택하거나(여자 일반의의 28%, 여자 전문의의 50%)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버는 파트너와 살고 있는 것이 이러한 현상, 즉 임금감소를 감수하며 노동 투입을 줄이는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설명 역시 젠더 평등보다는 의료인력 관리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다.

 

프랑스 의사들의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이 연구는 대표적인 전문직종인 의사들 사이에서도 가정 내 책임 배분에 젠더 규범이 체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보상 모두를 보장받는 의료전문직에서도 출산과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여자 의사들은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 경력 개발과 임금 상승의 기회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미국 의사들의 성별 임금 격차를 분석한 또 다른 연구(☞바로가기: 다지역 서베이에서 나타난 성별 임금격차)의 결론을 참조할 만하다. 의사 개인의 인구사회학적 특성과 노동시간, 업무 형태, 전문분과, 시술 특성, 소속 의료기관 특성 등을 고려한 이후에도 성별 임금격차가 지속됨을 확인한 이 연구는 노동시간과 경력에 따른 보상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경력개발초기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이후 자녀 양육을 위해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도전적 과제를 통해 성장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한다. 전문직인 여자 의사들이 일을 잠시 그만둔다고 해서 의사로서 살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 휴직을 쓰기 어렵고 그로 인한 불이익이 당연한 일로 되어 있는 조직 문화,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 배분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의 모든 일들이 여성 의료인의 임금과 지위에 체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양육자 효과”는 성별 간 임금 격차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본격적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지만, 국제사회는 보건의료체계의 젠더 편향을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테드로스는 전세계적으로 보건의료인력의 70%가 여성이지만, 보건의료조직 중 70%는 남성이 리더를 맡고, 성별 임금 격차가 15%를 넘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세계보건기구 내 성평등을 위해 힘쓰겠다고 선언했다(☞관련자료),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는 조직 내 성별에 따른 지위와 임금 격차를 공적 문제로 설정하여 이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관련자료).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66만 6천원의 임금을 받는 한국에서(☞2018, 관련자료)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는 대체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 같다. 의사나 간호사 등 동일 직종 내 성별 임금 격차가 어떤 수준인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한국에서 간호와 돌봄 전 분야에서 보건의료인력의 여성중심성은 명백하며, 여자 의사의 숫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성별 임금 격차는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할까? 당사자들과 정부,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참고문헌

* Mikol, F., & Franc, C. (2019). Gender differences in the incomes of self-employed French physicians: The role of family structure. Health Policy, 123(7), 666-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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