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정치, 경제, 사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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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모든 현실은 장밋빛이기 어려우니, 2020년 새해도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희망찬 미래’라는 신화는 지난날 모든 것이 커질 때 생긴 마음의 버릇인지도 모른다. 실로 그런 종류의 미래란 것이 있을까? 그저 묵묵히 만들어 가야 할 전망과 다짐을 습관처럼 희망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

 

희망보다는 전망해보자. 정치와 경제는 2020년에도 우리의 생각과 삶, 생활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것이다. 탈출은 불가능하다. 현실에 붙들려 허우적거리거나 마치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혐오하지만, 그 누구도 현실 정치와 경제를 벗어날 수 없다. 일부러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정치에서는 4월에 있을 총선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결과(어느 당이 얼마나 당선되고 정당의 의석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보다 과정(선거 과정에서 어떤 의제가 드러나고 어떤 논의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지)을 주목한다.

 

사회구성원의 관심이 분출되고 모여 모습을 갖추는 과정이야말로 그 어떤 정체와 정치도 피할 수 없는 민주성의 요체다. 정치인과 정당, 현실 정치의 수준과 무관하게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아마도 최대치일 것이다.

 

4월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망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이 시대의 핵심 과제라 말하는 평화에 대한 위협, 심각한 불평등, 공공성의 위기, 임박한 기후 위기, 고령사회 대비 같은 것은 관심사, 여론, 의제, 정치, 그 무엇도 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 대신 지역발전, 경제 활성화, 소득 증대, 숙원 사업, 도로와 철도와 공단, 공장과 의대 유치, 예산 따기 같은 습관과 숙원이 모든 의제를 빨아들이리라. 몇십 년째 비슷하게 또는 그대로, 우리의 관심과 정치는 그 부근을 배회할 것이 틀림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직 ‘현실’과 ‘사익(私益)’의 정치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사람은 당장 표를 얻는데, 지금 국회의원인 사람은 다시 당선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다. 이번에는 해당이 없지만,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도 마찬가지.

 

총선과 간접 관련이 있는, 지금 집권 중인 정권이라고 좀 나을까. 어떤 말을 동원해도 ‘선언’과 ‘전망’ 또는 ‘비전’ 바깥의 실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 뒤 20년 뒤는 언감생심, 2~3년짜리 공약과 정책을 붙들고 씨름하느라 멀리 보거나 곁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이 무슨 사익을 바란다고? 꼭 돈을 따져야 사익일까, 현실을 벗어나지 않고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 사익의 핵심이다. 당선, 재선, 재집권, 또는 성공, 그 무엇을 위하든 미래를 회피하는(또는 내버려 두는) 정치가 사익이 아니고 무엇이랴.

 

따지고 보면 4월에 총선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정치가 나타날 리 만무하다. 정치 또한 연장선이고 경로이며 축적인 법, 토대 바깥에서 독립할 수 없다. 지금 제도 정치로부터 탈출해 유례없는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음은 경제. 결론부터 말하면 2020년의 경제(정확하게는 정치적 경제) 또한 연장선, 경로, 축적, 토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몇 년 정책 기조가 작동했던 정치적 경제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통령의 ‘신년 인사’를 들어보자.

 

“경제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땀 흘리는 민간의 노력에 신산업 육성, 규제혁신을 비롯한 정부의 뒷받침이 더해지면 올해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것이라 확신합니다….(중략)…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을 육성하는 DNA 경제 토대를 마련하고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3대 신산업에 과감히 투자하겠습니다. 신기술, 신산업의 진입과 성장을 가로막는 기득권의 규제도 더욱 과감하게 혁신해나갈 것입니다.”(기사 바로가기)

 

사회, 복지, 보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경제 구상의 거울이면서 또한 모순이기도 하다. 다시 대통령의 신년 인사.

 

“아동수당, 온종일 돌봄 확대, 고교 무상교육 실시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담을 줄였고, 건강보험보장이 크게 강화되면서 특히 중증질환이나 처지가 어려운 분일수록 의료비 부담이 대폭 줄었습니다. 2년여 만에 전국 모든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어 ‘치매국가책임제’ 약속도 지키게 되었습니다. 빠른 고령화 속에서도 가계소득이 모든 계층에서 고르게 증가했고 소득분배도 개선되었습니다.”

 

이상 두 가지를 종합하면 경제와 사회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간다는 것으로 ‘읽힌다’. 정권 차원에서는 관리나 유지, 정리 태세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단언컨대, 획기적 변화나 개혁은 없다.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라 조금은 추상적이고 모호하지만,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거나 구조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다.

 

 

이런 경제와 사회의 시대착오는 늘 지적했으니(경제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논평>), 오늘은 딱 한 가지 2020년에도 정치와 정책 환경은 거의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둔다. 그러니 기대하지 말 것, 혹시 집권 여당이 4월 선거에서 승리해서 입법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갑자기 개혁 모드로 돌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정치와 경제에 관한 이런 판단을 두고, 어둡다. 부정적이다, 비관적이다, 냉소적이다 등으로 비판할지 모른다. 감히 말하지만, 우리는 과거와 다름없이(!) 긍정적이다. 달라질 것이 없으니, 이런 상황은 더 나빠진 것이 아니라 늘 그랬던 그대로, 즉 ‘디폴트’가 아닌가.

 

오히려 여러 기회가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뜻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일차는 4월 총선이다. 우리가 누구라도, 말하고 요구하며 기획할 기회가 있을 터, 충분히 생각하고 공부해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총체적, 단절적 변화까지는 아니어도 ‘틈새적’ 또는 ‘공생적’ 개혁의 기회를 찾자는 것(에릭 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에서 따온 말). 2020년 1월 첫 주, 우리의 다짐이자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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