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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연금이 가난한 노인의 건강에 미치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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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채 60세가 안 되었고 61세가 되면 살아있는 기념으로 환갑 잔치를 거하게 벌였다고 한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환갑 잔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60세를 넘긴다는 것이 특별히 축하하고 기념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전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OECD 회원국 중에서 노인 빈곤율 1위, 자살률 1위 인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미래 노인 세대에게도) 장수가 마냥 축하할 만한 일인지 의문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 집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6년 기준 82.7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3.0세에 불과하다. 생존해 있지만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생하는 기간이 9.7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는 지역별, 소득계층별로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 예컨대 한국의 17개 광역시·도 중에서 기대수명이 가장 긴 곳과 짧은 곳의 격차는 약 3년인 반면, 건강수명의 격차는 약 5년 정도이다. 또한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에 기대수명은 약 6.5년 차이가 나지만, 건강 수명은 약 11.3년 차이가 존재한다 (참고자료: 포용복지와 건강정책의 방향)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일수록 건강하지 않은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높고, 질병이나 사고 등 예기치 못한 위험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금의 노인세대 중 여성은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왔고, 경제활동의 기회가 없거나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해왔기에 노후 준비가 더욱 부족한 실정이다(고령시대, 남성보다 여성노인 ‘더 가난’…소득·연금 ‘적어’, [젠더 마이크] 이유 있는 여성노인의 빈곤). 대표적 노후보장책인 국민연금이 노동시장의 기여에 기초한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최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사회적 연금(social pension) 또는 비기여식 연금(non-contributory pension)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 연금은 비공식 노동시장에 참여했거나 가사노동 등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보험 기여 방식의 연금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연구들은 이러한 무기여 연금이 빈곤층 노인들에게 경제적 도움은 물론 정신적/신체적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콜롬비아 안데스 대학과 미국 하버드 대학 공동 연구팀이 2018년 국제학술지 <Health Affairs>에 발표한 논문은 콜롬비아의 무기여 연금 프로그램 ‘Colombia Mayor’ 가 노인의 건강과 의료서비스 이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논문 바로가기: 사회 연금 소득과 콜롬비아 남성 빈곤 노인의 자가 평가 건강 수준의 향상).

‘Colombia Mayor’는 연금 소득이 없는 빈곤층 노인에게 무기여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기초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산조사를 거쳐 기준에 해당하는 노인에게 매월 16-34 달러 수준의 현금을 지급한다. 2003년 처음 제도를 도입했을 당시 150만여 명이던 수급자는 2018년 24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연구팀은 콜롬비아 ‘전국 삶의 질 조사’ 2010-2013년 자료를 이용하여 도구변수 추정법으로 건강 영향을 평가했다.

 

분석 결과, 무기여식 연금을 지급받은 남성 노인의 경우 지난 한 달 동안 자가보고 건강문제가 5.6% 감소했고, 지난 두 달 동안 입원이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인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주관적 건강수준이나 지난 1년 동안의 의사 방문 횟수에서는 남녀 모두 의미 있는 개선이 관찰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Colombia Mayor이 여성 노인의 건강 개선에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남성 노인이 여성 노인에 비해 고령에도 일을 할 가능성이 높고, Colombia Mayor 같은 무기여 연금을 받게 되면 노동과 위험 환경 노출이 줄어들기 때문에 건강 혜택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연금 소득을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나눠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연금 혜택의 몫이 작아져서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여성 노인의 이러한 행동은 다른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예컨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여성 노인이 사회연금 수급자가 된 경우에는 손녀의 건강과 영양 수준이 향상되는 반면, 남성 노인이 수급자인 경우에는 이러한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논문 바로가기: 할머니와 손녀 – 남아공에서 노령연금과 가구 내 분배).

 

 

오늘 소개한 연구는 비록 남성에게 한정된 영향이긴 하지만 노인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한 사회정책이 건강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Colombia Mayor 같은 무기여 연금이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노후의 건강,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기여 연금이 노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다. 소득 증가가 영양 개선, 의료서비스 접근성 개선, 경제적 스트레스 감소 등에 영향을 미치고, 유급노동이나 직업상 위험 노출을 감소시켜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있고, 다른 가구원에 의한 연금의 강제 유용이나 연금 수급자의 남용 때문에 건강에 항상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Colombia Mayor 효과 연구 결과도 이러한 복잡성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운영하던 일자리 사업, 무료 급식 제공 등 복지 프로그램이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대부분 중단되었다. 이는 저소득층 노인의 경제적 상황뿐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긴급재난지원금 같은 일시적 위기 완화책 뿐 아니라, 장기적 여파에 대비할 수 있는 노인 소득보호 정책이 절실하다. 특히 오늘 논문에서 소개한 사회적 연금의 한국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 서지정보

Hessel, P., Avendano, M., Rodríguez-Castelán, C., Pfutze, T. (2018). Social pension income associated with small improvements in self-reported health of poor older men in Colombia. Health Affairs, 37(3), 456–463. https://doi.org/10.1377/hlthaff.2017.128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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