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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유행 시기 아동의 정신건강, 어떤 돌봄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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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수수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갈 즈음, 유럽소아과학협회-유럽국가소아과협회연합(The European Paediatric Association–Union of National European Paediatric Societies and Associations, EPA-UNEPSA)는 관련 정보와 과학적 지식의 공유를 목적으로, 중국의 주요 학술기관, 의료센터와 협력팀을 꾸렸다.

이 협력팀은 지난 6월 국제학술지 <소아과학 저널>에 중국에서 진행된 예비연구를 근거로 한편의 논평을 실었다. 협력팀은 코로나19 유행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수집된 초기 데이터를 보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족과 돌봄자(care-giver)의 역할을 강조하며, 감염병이 유행하는 동안 아동의 심리적 요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다.

 

협력팀은 중국에서 코로나19 유행은 3개월에서 17세까지의 아동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들 대부분은 감염자와 밀접하게 접촉했거나 밀접 접촉자의 가족 중 한 명이었다고 보고했다. 18세 미만 연령 집단에서 코로나19 검사에 양성반응을 보인, 증상 또는 무증상자에 대한 공식 집계 자료는 없다. 그러나 협력팀이 확인한 감염 아동들은 증상이 없거나 발열, 마른 기침, 피로감 등을 보였고, 코막힘, 콧물을 포함한 상부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복부 불편감, 메스꺼움, 구토, 복통, 설사 등 위장 증상이 나타나는 아동 환자들도 있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아동은 대부분 발열이나 폐렴 증상 없이 가벼운 임상 증상이 나타나며, 발병한 뒤 1~2주 안에 회복되었다. 이처럼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코로나19에 덜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예비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동들에게는 심리적 영향이 크고 행동 문제를 보였다.

 

2020년 2월 둘째 주 동안 산시 성에서 ‘감염병에 대한 아동 행동과 정서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예비 연구가 이루어졌다. 중국 정부의 이동 제한 명령 때문에 연구팀은 온라인 설문을 활용하여 부모들의 응답을 얻었다. 부모가 작성한 설문에는 우울증을 포함한 불안장애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DSM-5 기준을 포함했다. 이 조사의 목적은 아동청소년의 우울증을 진단하기보다는 이러한 응급 재난 상황에서 아동청소년의 정서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 3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 320명 (여아 168명, 남아 142명) 사이에서 가장 흔한 심리적 행동 문제는 집착, 산만함, 짜증(과민함), 두려움이었다. 몇몇 아동은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에 거주했기 때문에 보호 격리 상태로 집에 갇혀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감염병과 친척의 건강을 묻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악몽을 포함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 식욕 부진, 신체적 불편함, 불안과 부주의, 집착, 분리 문제가 주요 심리적 문제로 드러났다. 제일 나이가 어린 3-6세의 아동이 더 나이 많은 아동들에 비해, 가족이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집착을 더 많이 드러냈다. 6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은 부주의와 반복적인 질문 행태를 더 많이 보였다. 집착, 부주의, 짜증(과민함)은 모든 연령층의 아동에게 나타났다. 감염병 상황이 심각한 지역에 거주한 아동들에서 두려움, 불안의 수준이 더 높았다.

 

협력팀은 이러한 예비연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알 수 없는 사건에 직면한 아동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가족, 학교, 기타 사회적 관계를 포함해 공중보건 프로그램을 통해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국 소아과 의사들도 이 문제에 대해 대책을 제시한 바 있다. 부모와 가족에게 아이들과 소통을 늘리고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 게임을 하며, 신체활동을 촉진하는 활동을 장려하고, 걱정과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음악치료를 사용하는 것 등이다. 중국 소아과 의사들이 제시한 대책은 의미 있지만, 전적으로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만일 가족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소개한 논문의 연구팀 역시 돌봄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그 돌봄자가 부모와 가족으로 한정되었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유행에서 사회적 돌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가정 안에서의 아동학대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위험이 더 증폭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공적 돌봄은 연령에 따라 영유아, 아동, 청소년으로 나뉘어, 각 부처별로 분절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틈새가 생기고 지금 같은 재난 상황에서 그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면서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문을 닫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긴급 돌봄이 마련되었다고 하지만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교육부의 돌봄이 제각각이라 돌봄자는 난감할 때가 많다. 생계를 위해 아동을 집에 남겨 두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보호자는 늘 존재하며, 그 보호자와 가족에게만 아동의 돌봄을 맡겨둘 수 없다. 비대면을 강조하지만 영유아를 돌보는데 비대면은 가능하지 않으며, 신체접촉을 최소화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상시적으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며 신체적 접촉을 통해 놀이와 발달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최소한의 접촉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보육교사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학습권과 방역 사이에 학교교사들 역시 고민한다.

유행 시기에도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가족들, 복잡하고 분절화된 사회적 돌봄 체계의 어느 틈새에선가 고립되고 방치된 아이들이 있다. 아동을 중심에 둔 사회적 돌봄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코로나19는 또다른 숙제를 던져주었다.

 

 

 

* 서지정보

Jiao, W. Y., Wang, L. N., Liu, J., Fang, S. F., Jiao, F. Y., Pettoello-Mantovani, M., & Somekh, E. (2020). Behavioral and emotional disorders in children during the COVID-19 epidemic. The journal of Pediatrics, 221, 26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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