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코로나19 유행이 조금 소강상태라니 다행스럽지만, 더 큰 위험요소가 있는 터라 안심하기는 이르다. 추석을 맞아 이동하고 모이는 것이 감염 전파를 부추긴다면, 명절조차 위험과 두려움이 되는 새로운 시대임을 절감한다.
지금은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방역 당국이 말하는 권고를 따르는 것이 최선이리라. 덜 움직이고 덜 모이는 쪽으로. 무엇을 하든 코로나19 유행을 염두에 둔 예방적 행동이 개인과 공동체를 함께 안전하게 하는 최선의 길이다.
추석이야 그렇다 치자.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는지, 현재 방식의 지속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외국의 유수 언론이 인정하고 국제기구도 동의하는 대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시민의 협력, 참여, 정책 순응 같은 것들이다. 그 무엇이 토대가 되었든 우리는 현재 방식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계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한다.
정신, 심리, 감정으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생활과 생존의 조건이 나빠지는 것이 큰 걱정이다. 먹고 사는 문제 또는 죽고 사는 문제가 많은 이의 과제가 되면, 개인의 규범과 사회문화적 압력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다. 생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시위에 나선 이들이 더 이기적이거나 덜 도덕적이어서 그러지는 않을 터다(기사 바로가기).
방역보다 경제가 더 중요하니 한쪽을 포기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처한 조건에서 유행 정도에 따라 방역 단계를 올리느니 마느니 논쟁하는 것은 무용하다.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정치적 근거를 다 동원해서 따져 봐야 다 부질없어서다. 어느 쪽으로 ‘결단’하고 ‘선언’하는지와 무관하게 당사자가 실행하고 실천할 수 없다면 방역 단계를 변경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실행 가능성이 없는 조치는 면피용일 뿐이다. 영업하는 가게를 닫으라고 공권력이 개입해도 생존을 위해서 법을 어기거나 피하는 사태를 걱정한다. 정부는 할 말을 했다고 하겠지만, 스스로 감염을 의심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이동하고 남과 접촉하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
주로 개인에 의존했던 지금까지의 대응과 분명히 눈에 보이는 한계, 그리고 눈앞에 다가온 재유행의 가능성을 비교해 보시라. 설마 다시 큰 유행이 있을까,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일 년이 더 걸릴지 그 이상 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백신도 금방 답이 되지 않고 치료제도 이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무리 따져 봐도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조건을 준비해 놓는 일 말고 무엇이 있는가. 영웅적 개인과 “국난을 극복하는 한민족의 저력”을 되뇔 일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 있는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공적, 사회적, 구조적 대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제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몇 달 전부터 유행에 대비해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정비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예를 들어,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려면, ‘코로나 자본주의’와 ‘코로나 공공보건’).
다시 비슷한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 태세가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유행이 끝난 후부터 8월의 재유행까지 무엇을 준비하고 훈련했는가? 지난 6월 중순에 우리가 촉구한 준비 사항 중 의제가 된 것이 무엇이라도 있는가?
“뭐니 뭐니 해도 수많은 사람의 생활과 생계 대책이 중요하다. 실직자와 비정규 노동자, 영세 자영자, 한계 상황의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꼼꼼하지만 담대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감염병 유행의 사후 대책이 아니라 방역 대책 그 자체다.
그 누구도 ‘부채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임대료, 이자, 공과금, 건강보험 보험료 등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정부의 가장 큰 관심사일 테니 더 말하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 연쇄 반응이 일어날 터, 정부의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잘 모른다. 비슷한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은 모든 이가 기꺼이 실천하고 안심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 그야말로 흉내 내기나 찔끔 면피용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구조와 관련이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니, 이른바 2차 재난지원금이 대표적 사례다.
중환자 치료를 비롯한 의료체계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중환자 치료용 병상 확보를 그토록 강조했지만, 부족 사태는 재현되었고 민간 병원에 호소하는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기사 바로가기). 서류로 만든 도상계획은 어떤지 모르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준비 태세는 과거와 대동소이다.
짐작하건대 어떤 상황은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질병관리청 등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서 정부 내 지휘체계가 바뀌고 심지어 중대본의 ‘총괄조정관’도 바뀌었으니 하는 말이다. 중환자 병상을 챙기던 책임자도 새로운 자리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다시 ‘손발’을 맞춰야 하는 사정이 된 셈이니, 그 사이의 비공식적 정보 공유와 일의 절차, 규칙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행정부는 큰 문제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나, 감염병 관리 그리고 병상 배정을 비롯한 ‘임상 거버넌스’는 다른 재난이나 자원과는 차이가 크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이른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약칭: 재난안전법)이 감염병에도 적용된다고 되어 있지만, 이번 사태에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요컨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국민/시민/주민에게 개인행동을 호소하고 촉구하는 대응 전략으로 시종했다. 8월에 시작된 수도권의 유행도 그럭저럭 수그러든다고 생각하면, 앞으로도 그 기조를 크게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정부의 추경예산으로 판단하건대, 사회적 수준에서 ‘대유행’에 대비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 위해서 정부가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맞았으면 좋겠다. 우리 또한 큰 유행이 다시 없기를, 그리하여 인명 손실과 나쁜 사회경제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학수고대한다. 정권과 정부의 성공, ‘K-방역’의 성과, 국가 위신 따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한다고 해서 또는 희망한다고 해서 이게 그렇게 될 일인가? 지금 만약의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닥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미리 피할 수 있는 죽음을 막아야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이를 괜한 걱정에 낭비라 할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추석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낼까 하는 것과 더불어, 국가와 정부가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을 챙기고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국민에게 의견을 듣고 동의를 받는 일도 급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두 달 뒤 이후를 대비한 준비를 지금 해야 한다. 아마도 법과 예산까지 바꾸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행정부와 국회, 주요 정당들이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모두가 이동과 만남을 줄인 이번 추석에는 “모든 재난은 인재”라는 경구를 모두가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