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숫자와 통계를 넘어 구체적인 고통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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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학자 제리 멀러가 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측정할 수 있는 업무를 완수해야 보상을 받는 사람들은 다른 과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줄인다. 그 결과 어떤 조직의 목적은 사라지고 본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었던 측정(지표)만 남는다.” (필자 번역)

 

한국어 번역본은 <성과지표의 배신>이라 제목을 달았지만, 원문 제목은 <측정의 독재(The Tyranny of Metrics)>로 훨씬 더 직설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다. 영어 ‘메트릭스’는 ‘측정’보다 ‘측정+평가+성과+지표+계량화’를 두루 포함한 뜻으로 해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터널 한복판인 ‘코로나19 시대’에 갑자기 측정, 성과, 지표 따위를 말하는 이유를 짐작하시겠는지? 한 마디로 정부가 주도하는 논쟁 때문이다. 벌써 일 년이나 시간이 지났는데 재난지원금, 자영자 손실보상, 재난기본소득 등을 논쟁만(!) 하고 있으니 그 연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재부와 부총리는 도대체 왜 저러는가?

 

 

중앙정부, 특히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모든 논리를 동원해 재정 건전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건전성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 그들은 늘 숫자와 지표를 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국가채무비율, 경제성장률, 수출액, 조세부담률, 장기재정전망 등을 동원하는 것이 한결같다. 바로 측정이자 지표다.

 

‘독재’는 무엇인가, 사고와 행동을 한 가지로 지배하고 억압하는 체계와 체제가 아닐까. 국가와 정부가 숫자와 지표를 자신의 성과와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은 지는 오래다. 혹자는 세계적으로 이른바 ‘신공공관리론’이 득세한 후라고 말하나, 우리 경우는 박정희 정권부터 치면 40~50년이 넘게 지속하는 전통(?)이자 역사적 경로라 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0월 유신, 100억 불 수출, 1000불 국민소득”이라는 1970년대 말의 구호.

 

경제 당국만 그럴까, 코로나19 유행과 대응에 한정해도 국가와 중앙정부의 ‘성과’는 모두 지표로 표현된다. “방역과 경제 모두 성공했다”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모두 숫자이고 통계이며 그것도 국가적(전국적) 지표다. 숫자로 나타낸 이런 결과들이 갖가지 힘,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2년 또는 5년 뒤, 되돌아보면서 경제 당국이 얼마나 잘 했느냐고 평가한다고 해보자. 세상이 꽤 많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 경제 부처가 앵무새처럼 되뇌는 그 지표들이 그대로 성패를 가르는 기준으로 통용될 것이다.

 

경제 당국과 그 책임자가 “눈물을 쏟으면서까지”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의 동기이자 보상, 인센티브 구조가 이러면 결과가 그럴 수밖에. 자영자의 경제적 피해나 장애인의 고통은 명확한 숫자와 통계로 포착되지 않으며,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성과지표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토록 구조적이고 체제적이면 그들의 무관심을 비판하거나 도덕을 문제 삼아도 별 소용이 없다. 한 개인으로 정치인과 관료는 자영자, 장애인, 홈리스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지만, 국가권력, 통치, 체제, 체계, 제도 등은 그런 개인을 초월한다.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하지만 체제도 환경과 맞물려 늘 변하는 법이니, 정부와 기재부의 완고함과 무관하게 구조는 점점 더 불안정하다.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이니, 기존의 ‘성과지표’가 급격하게 동요할 수도 있다.

 

사실 보편과 선별을 논쟁할 여유가 어디 있나, 지금이라도 최소한 다른 나라 만큼이라도 사회경제적 안전망을 짜야 할 때가 아닌가. 문제는 통계와 지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과 그 고통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정책 당국을 벗어난다는 점. 여전히 내용은 텅 비었고 현실과 분리된 지표들이 지배한다.

 

이런 맥락에서 거시, 국가, 중앙을 넘어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분산된 현실을 드러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지 않나 싶다. 그 현실이란 숫자와 통계, 지표 뒤에 숨은, 또는 아예 그런 것으로는 알 수도 없는 사실과 진실을 가리킨다.

 

여론, 공론, 언론 등이 작동하면 좋겠지만, 숨은 고통에서 출발해 더 큰 요구를 ‘가시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개별적이고 산만하지만, 국소적이고 유동적이지만, 진실한 고통. 그것을 조직하는 일이기도 하다.

 

드러내고 가시화함으로써, 수단인 측정+평가+성과+지표+계량화가 본래 목적이자 가치인 생명, 안전, 삶의 질, 행복을 위태롭게 하는 체제에 도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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