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헬스 와치, 외부 기고문

‘코로나 불평등’ 희생자 방치? 힘없는 사람들이 뭉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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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자영업자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동태를 살피며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깊어진 불신의 골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저녁이 되어야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노래방 업주들은 ‘오후 9시 이후 영업 제한’이 업계의 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조치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켜지기도, 관리하기도 어려운 카페에서의 ‘착석 1시간 제한’ 조치에 곳곳에서는 방침의 정확한 내용을 두고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정부의 하향식 거리두기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침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함께 그 내용을 결정할 수는 없을까? 일방적인 희생이나 협조가 아닌 시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코로나19 대응은 불가능한 것일까?

 

지난 9월, ‘동부 및 남부 아프리카의 건강형평성 네트워크’ EQUINET[1]과 Shaping health 컨소시엄[2]의 활동가들은 <우리는 건강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 코로나19에 맞서는 지역사회>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표했다[3]. 이 보고서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 대유행 상황 속에서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거나 불응하는 대상이 아니라, 문제를 말하고 해결책을 같이 생각하고 실행해 나가는 대등한 주체로서 시민의 참여 필요성을 약 40여 개의 사례를 통해 옹호하고 있다. 그중 두 가지 사례를 여기 소개하고 그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도 : 농부들의 ‘농장에서 집으로(farm to home)’ 모델

 

코로나19 유행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어 가던 작년 3월 말, 인도 전역에는 강력한 봉쇄 조치가 있었다. 3월 24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TV 연설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겠다”고 발표했고[4], 이튿날부터 장장 21일에 걸친 긴 봉쇄 기간(이후 더 연장)이 시작되었다.

 

인도 서부의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에 자리 잡은 사타라 지구(Satara district)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소규모의 농업을 통해 살아가는 사타라 지구의 농민들에게 봉쇄 조치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혔다. 시장이 문을 열지 않고 사람들이 집 안에만 머무르게 되자, 농부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하지 못해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들 역시 식품에 대한 안전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을 돌파해보고자 사타라 지구 사타라 시의 한 농촌 마을(Nhavi Budruk)에서 38명의 농부들로 구성된 자조 그룹이 나섰다. 이들은 2016년부터 지역의 물 부족 위기에 대응해 농부들과 긴밀히 활동해 온 지역사회단체인 Paani Foundation의 활동가들과 함께 새로운 공급모델을 제안했다. 바로 농부들이 직접 주민들에게 농작물을 배달하는 직거래 공급모델, ‘농장에서 집으로(farm-to-home)’였다. 이는 농부들마다 지정된 직거래 구역(ward)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게 함으로써 과밀을 막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주민들에게 신선한 농작물을 안전하게 제공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이 그렇게 특별할 게 있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모델을 실제 구현해내기까지는 많은 장벽이 있었다. 지역의 농부들은 여태껏 중개인을 통해서만 시장에 농작물을 공급해왔기 때문에, 수확한 농작물을 직접 판매해 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농작물의 운반에서부터 이동, 판매의 전 과정을 조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 당국의 허가 없이는 봉쇄 기간 농부들의 이동과 직거래는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농부들을 비롯해 지역사회 내 공공, 민간을 막론한 여러 주체들의 연대와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부들은 자조그룹을 통해 판매할 농작물의 목록을 만들었고, 서로의 농지를 돌며 농작물을 함께 수확, 운반, 판매했다. 지역사회에서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지역사회단체(Paani Foundation)는 농부들과 지역의 여러 단체, 행정 기관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봉쇄 기간에도 농부들이 트럭을 이용한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가증을 내어 주었다. 또, 농부들의 농작물 운반을 돕기 위해 지역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 사용되는 지자체의 대형 트럭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가 하면, 지역의 운송업자들도 농부들의 농작물 운반 과정을 지원했다.

 

최초 농부들과 지역사회 단체의 문제 제기로 추진된 이 새로운 모델은 여러 농부들과 지역사회활동가, 지자체 공무원, 운송업자의 옹호와 협력을 통해 결과적으로 지역의 새로운 공급모델로 실행될 수 있었다.

 

▲ 인도 서부의 마하라슈트라 주 사타라 시 마을 농부의 직거래 일과 ‘아침 8시’, 농부들이 함께 수확을 완료했다. 오늘은 데야난드(Dayanand)씨의 차례다. 그의 농장은 파파야, 수박, 마늘, 생강, 구아바 등을 생산한다.(☞ 관련 기사 : <FOUNDING FUEL> 2020년 4월 5일 자 ‘The Satara uprising‘)

 

결과는 어땠을까. 처음에는 홍보가 부족해서 이용이 저조했지만, 점차 이용이 늘고 지역사회에서 호평을 받게 되었다. 농부들은 더 안정적으로 농작물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주민들은 영양가 있는 신선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모델을 처음 계획했을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긍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농부들과 소비자 사이에서 높은 수익을 챙겨오던 시장 중개인들의 과도한 이윤 창출 행위가 근절되자 수박 가격이 코로나 이전의 4분의 1로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이후 극심했던 주민들의 사재기 행위도 사라졌다. 정부의 봉쇄 명령이 있고 난 뒤, 식량을 비축해 놓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 규제 도매시장(mandis)으로 몰려오면서 한때 사타라 시의 도로는 극심한 혼잡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직거래 과정을 통해 각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야채와 과일을 언제든 구할 수 있고 농작물이 더 신선하고 위생적으로 취급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자, 주민들의 식품 비축 동기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다른 여러 나라, 지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사재기가 횡행하고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기 일쑤였던 가운데 사타라 지역에서는 오히려 농산물 가격의 안정화, 나아가 하락을 누릴 수 있었다.

 

인도의 농민들은 코로나19를 비롯해서 기후위기의 영향에 오랜 기간 불평등하게 노출되어 온 집단 중 하나다. 가뭄으로 인한 작물 피해는 농민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문제로, 기온 상승에 기인하는 인도의 자살 건수가 지난 30년간 근 6만 건에 달한다는 연구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되기도 했을 정도다[5]. 그런 맥락에서 코로나19가 불러온 생계 위협에 맞선 사타라 지구 농민들의 대응 사례는 위기를 각자도생으로 혼자 버텨내야 했을 수도 있었던 농민들이 단결해서 목소리를 내고,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내려는 의지와 동력을 이끌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모델은 팬데믹 이후에는 힘을 잃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익 창출 동기에 매몰되어 농민과 주민 상생의 취지는 사라지고 여러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로 남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농지에서 농작물을 베고 들어 올리며 협력했던 경험, 수확한 농작물을 주민들에게 건네며 나눴던 교감, 그 농부의 손에 의지해 밥상 위에 놓일 식자재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었던 주민들의 경험은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한 새로운 일들을 가능케 할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별수 없다고만 생각해 왔던 시장 중개인의 비합리적으로 높은 마진을 농민과 주민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강화된 지역사회의 역량은 공통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또 다른 행동을 이끌 단초가 될 수 있다. 지금의 동력이 비단 팬데믹의 시기를 넘어 지속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이다.

 

유럽: 코로나19 유행에 맞서는 청년들 사이의 ‘너그러움의 유행(#outbreakofgenerosity)’

 

유럽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에 맞서 시민들 사이에 너그러움(generosity)을 확산시키자는 의미에서 ‘너그러움의 유행(outbreakofgenerosity)’이라는 캠페인이 확산되었다.

 

이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의 청년들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문제의식을 느낀 노헨 마무디(Nourhene Mahmoudi)와 그녀의 친구들은 ‘만약 감염병이 그보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퍼져나가는 사람들 사이의 공감, 연대, 너그러움과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지역사회를 돕기 위한 행동을 계획했다.

 

이 캠페인은 유럽의 무슬림 청년 및 학생 조직 포럼(FEMYSO)을 통해 시작되었고, 이후 유럽학생연합(European Students’ Union), 유럽 반-인종주의 운동의 목소리(the voice of anti-racist movement in europe), 유럽 로마 풀뿌리 조직 네트워크(European Roma Grasroots Organisations Network), 세계기독학생연맹(World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유럽 지부 등이 파트너로 협력하게 되었다.

 

캠페인의 주요 활동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립되어 있는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안내 책자와 툴킷(도구 모음)을 개발했다. 이 자료들은 ‘outbreakofgenerosity‘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툴킷의 핵심적 요소는 ‘만약 자가격리 중이라면, 제가 여기 있어요’라는 도움 요청 카드다.

 

▲ #outbreakofgenoristy(영문판) 툴킷 중 도움 요청 카드.(☞ 바로 가기 : English-YOUTH-TOOLKIT.pdf )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가 이웃집 문 앞에 이 카드를 놓아두면,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자가격리 중인 주민은 장보기, 따뜻한 메시지 남기기, 전화, 마스크 등 필요로 하는 도움을 체크한 뒤 카드를 다시 문 앞에 놓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특히 노인이나 환자 등 코로나19 감염 걱정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들과 직접 대면 없이도 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현재 툴킷은 16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캠페인이 유럽의 여러 국가와 지역에 퍼지면서 각지의 상황에 맞추어 변형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색깔 기반 코딩 시스템을 도입해서 문 너머의 사람의 상태를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집 안에 있는 이가 초록색 종이를 밖에 놔두면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고, 빨간색 종이를 두면 의료나 돌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누구라도 멀리서 빨리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작고 큰 아이디어를 통해 캠페인은 변형되어 발전하고 있으며, 청년들은 해시태그(#outbreakofgenrosity)를 사용하여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캠페인을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가 문을 닫고, 대면 강의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아르바이트 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지는 등 코로나19는 청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주어진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할 뿐 쉽게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이다[6]. ‘너그러움의 유행’ 프로젝트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사회적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청년들이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꿈꾸며 그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한다.

 

이 밖에도 보고서에는 수십여 가지의 시민참여 사례들이 더 소개되어 있다. 보고서의 작성에 참여한 아홉 개 국가 저자들은 전 세계 각지에 이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을 것이고 보고서가 모든 경험을 포괄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한 명의 사람, 하나의 조직에 귀속시킬 수 없는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대부분, 자원과 힘이 없는 지역사회가 있었다. 전 세계의 여러 지역사회가 힘과 자원의 절대적 결핍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국가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 속에 스스로 역경을 이겨내야만 했던 지역사회의 자구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발판이 되어 정부와 기업을 움직이고, 지역사회에 적합한 새롭고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참여의 성과다.

 

흔히 사람들은 시민 참여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참여는 쓸데없지도, 비전문적이거나 약하지도 않다. 실제 그것은 매우 강력하고 결정적인 대안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참여는 그 자체로도 모두에게 가치가 있다. 일자리의 상실과 생계의 어려움에서부터 새로운 복지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까지, 우리 사회에서도 코로나는 도전과 기회를 만들며 모두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그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 참고문헌

[1] The Regional Network on Equity in Health in East and Southern Africa. 동부 및 남부 아프리카 지역 내 건강의 사회 정의와 형평성 제고를 위해 모인 전문가, 시민 사회, 정책 입안자, 공무원 등의 네트워크. https://equinetafrica.org/content/equinet-africa?page=13

[2] 여러 나라의 지역 보건의료 체계에서의 사회 권력과 참여 형성의 경험을 연구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로 미국 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 Donor-advised Fund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음. https://www.shapinghealth.org/about-shaping-health

[3] Loewenson R. et al. (2020) ‘We are subjects, not objects in health’: Communities taking action on COVID-19, Training and Research Support Centre in EQUINET and Shaping Health. https://www.equinetafrica.org/sites/default/files/uploads/documents/EQ%20Community%20Engagement%20synthesis%20rep%20Sep2020.pdf

[4] 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52024239

[5] https://www.pnas.org/content/114/33/8746

[6] https://en.unesco.org/news/covid-19-impacts-youth-voices-and-hampers-participation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많은 언론이 해외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백신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별 ‘순위표’로 이어집니다. 반면 코로나19 이면에 있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적 맥락, 유행 대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을 짚는 보도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코로나와 글로벌 헬스 와치’를 통해 격주 수요일, 각국이 처한 건강보장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모두의 건강 보장(Health for All)’을 위한 대안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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