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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노인의 고독과 우울을 당연하게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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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어느덧 코로나19와 함께 맞는 두 번째 명절이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에 따라 가족이 흩어져 따로 소규모로 모이는 새로운 모습이 등장할 모양이지만, 지난 추석에 이어서 이번 명절도 ‘오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캠페인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바로가기). 한편으로는 그동안 잘 버티던 어르신들도 부쩍 우울해하신다는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명절 전후로 자살이 증가한다는 통계는 평소에는 그저 넘겨 보냈을 상황도 사회적으로 인지되는 특별한 날에 그 상실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을 보여준다(기사 바로가기). 명절이 되면 봉사와 후원이 몰리던 쪽방이나 복지관도 이번 명절엔 들르는 사람 없이 한적해졌다는 기사를 보면 이제는 이런 관심마저도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이슈가 삼켜버린 듯 하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워져서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더 불평등하게 힘들고 외롭고 아프고 죽는다는 것이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대이기도 하다.

 

최근 <건강형평성 국제 저널>에 실린 호주 연구팀의 논문은 남성 노인에서 사회심리적 요인이 사망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논문 바로가기: 호주 남성 노인에서 사망률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심리적 기여: 인구집단 기반 코호트 연구). 연구진은 한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남성 노인으로 구성된 코호트를 구축했다. 총인원은 1,522명으로 이들이 처음 모집되었을 때 평균 연령은 77.4세였다. 약 9년간 추적 조사하여 생존분석을 통해 기초조사에서 수집한 교육수준, 직업, 소득수준, 주택 소유를 사회경제적 수준 점수로 환산해 사망률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여기에 사회적 지지와 심리적 문제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한 것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사회적 지지는 구조적 차원과 기능적 차원을 각기 측정하였다. 구조적 차원의 사회적 지지는 결혼상태, 가족 구성, 가족과 가족 외에 관계를 맺는 사람들, 이들과 연락하고 만나는 빈도, 종교 등의 사회 활동 여부 등이 해당된다. 기능적 차원의 사회적 지지는 맺고 있는 사회적 연결망이 잘 작동하는지, 충분한지, 만족하는지와 같은 실질적인 기능 여부이다.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널리 사용되는 척도를 사용해 각각 우울 증상과 불안 증상을 측정했다. 그 외에 사망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나이, 출신국가, 건강행태, 비만도, 주관적 건강수준을 보정하여 사회경제적 위치로 인한 사망 불평등과 사회심리적 영향의 독립적인 효과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미혼이나 독거인 경우 전체 사망과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을 높일 위험이 있다는 것처럼 이미 잘 알려진 내용 외에도, 낮은 사회적 활동 수준 및 높은 우울과 불안 점수는 전반적으로 높은 사망률(암 사망 제외)과 연관성이 있었다. 한편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만족도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대해서 연구진은 일반적으로 노인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사회적 관계가 긴밀한 경향이 있어 대개 높은 만족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효과를 평가할 만큼의 변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을 보면서 의료뿐 아니라 교통과 모든 인프라가 부족한 읍·면 지역에 가서 어르신들에게 병원 다니는 불편함에 대해 물으면 하나도 불편한 것이 없고 요새 선생님들은 다들 그렇게 친절하다며 칭찬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면 과도한 유추일까.

 

핵심적인 결과는 사회경제적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에 비해 가장 낮은 집단은 전체 사망률이 1.5배,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이 1.41배, 암 사망률이 1.36배, 그 외의 사망률이 1.76배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명백하게 나타나는 불평등에 대해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문제가 기여하는 정도는 전체 사망 위험에서 35%,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에서 29%, 암 사망률에서 12%, 그 외의 사망률에서 39%로 분석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문제를 개선했더라면 약 1/3에 달하는 사회경제적 사망 불평등을 줄일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다른 연구와 비교할 때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요인의 사망 불평등 기여도는 일반 인구집단보다 노인에서 더 큰 경향이 있어 노인이 이러한 종류의 불평등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높은 수준의 사회적 지지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완충 또는 조절 작용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정적인 생활과 건강한 생활습관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우울과 불안과 같은 심리적 문제는 질병을 관리하고 스트레스를 다루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문제가 서로 독립적이기보다는 동일한 경로에 놓여있으며, 특히 치명적인 삶의 사건을 마주했을 때 낮은 사회적 지지가 심각한 심리적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 같이 말이다. 연구대상이 남성에 국한된다는 한계가 있어서, 분명 여성 노인의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문제 양상은 남성 노인의 그것과 달라 더 완충적이거나 어느 부분에서 더 취약할 수 있겠으나 기제(경로) 자체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없거나 만날 여력이 없고, 안전한 개인 공간을 만들어낼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노인에게 더 막막한 코로나 시대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반강제로 격리되다시피 한 이들은 오죽할까. 젊은이들에 비하면 노인이 죽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쉽지만, 죽음마저 불평등해지는 이 과정까지 당연하게 보지는 않기를 바란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포함해 특히 노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선택지다. 인터넷 접근성과 활동력이 높은 젊은 세대도 코로나 블루에서 자유롭지 못한 마당에 노인은 감염에 더 취약하니 위험하다며 언론은 두려움을 전파한다. 거기에 더해 집안에서 대안적 활동을 찾기 어려운, 오로지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려야 하는, 그러나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말해야 좋은 노인이 되는 상황. 그나마 숨통을 트여주며 사람의 온기를 나누고 생존까지도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공간마저도 가볍게 차단된(바로가기) 코로나시대 노인들의 삶은 결국 모두에게 다가올 미래임에도, 지금은 아니라는 마음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쉽게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서지정보

-Khalatbari-Soltani, Saman, et al. “Contribution of psychosocial factors to socioeconomic inequalities in mortality among older Australian men: a population-based cohort study.” International journal for equity in health 19.1 (2020): 1-1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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