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수수(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코로나19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반해, 여전히 취약할수록 잘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 역시 그렇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도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었지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사회적 재난 상황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이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등장할 리도 만무하다. 이대로라면 코로나19 유행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다음을 대비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최근 유니세프에서는 코로나19가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바로가기).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강타한 작년 한 해 동안 배고프고, 고립되고, 학대받고, 불안에 떨어야 했던 아이들이 증가했다. 수 억명의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이 중단되었고, 돌봄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도 심각하게 침해받았다. 감염병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가족을 빈곤으로 몰아넣어 어린이의 강제결혼 가능성까지 높였다.
최근 국제학술지 <아동의 지리학>에 실린 논문 “COVID-19이 호주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빈곤과 불평등 심화”도 유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호주의 대응은 감염병 유행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감염병 확진자 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감염병과 이에 대한 대응들은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이 악화되고 빈곤이 심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더욱 주변화시키고 여러 위험에 노출되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책대응에서 ‘어린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정치 지도자들이 어린이들을 참여시키거나 그들의 우려에 대응하려는 진지한 시도는 없었다.
이 연구는 코로나19 대응이 어린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호주 동부 6개 지역의 7세~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감염병 유행 이전에 수행했던 연구와 비교·분석했다. 6개 지역은 지역간 격차가 존재했는데, 4개 지역은 호주 통계청이 제시한 사회경제적 지표에서 낮은 값을 보였고, 1개 지역은 중앙값에 가까웠으며, 1개 지역은 높은 값을 보였다.
유니세프에서는 학교폐쇄보다는 학교를 여는 것을 권고했으나, 호주에서는 이를 두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총리는 학교개방 유지를 선호했으나 부모들은 자녀의 출석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고, 주마다, 지역마다, 학교 간 차이가 발생했다. 실질적으로 학교는 많은 날들을 문을 닫았고, 모든 교육과 학습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자원이 부족한 어린이는 디지털 기기 사용 등에서 기존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처해졌으며, 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착수했던, ‘호주 어린이, 지역사회 및 사회적 자본(이하 CCSC 프로젝트)’이라는 연구프로젝트 결과를 바탕으로 감염병 유행은 어린이의 중요한 삶의 측면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가정했다. 연구진은 CCSC 프로젝트가 감염병 유행 이전에 수행된 연구이기 때문에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밝혀낼 수 있는 것들에 명백한 한계가 있고, 코로나19가 어린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도 언급했다. 그럼에도 기존 연구는 어린이에게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더 큰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영역을 확인하는 분석 렌즈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그간 CCSC 프로젝트 등을 통해 어린이들은 경제적 안정, 안전, 대인 관계와 세대 간 관계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린이 친화적인 공공장소와 어린이의 소속감과 복지의 핵심이었던 지지적인 돌봄 관계를 통한 지역사회와의 유대감은 모두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제한되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공공장소와 학교의 폐쇄 또는 제한은 어린이의 이동성, 포용적 공간에 대한 접근성 약화에 명백하게 영향을 미쳤다.
또한 연구진은 코로나19 대응정책에 대한 언론매체의 논쟁에서 대응정책들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어린이가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낮다고 알려졌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영향에 대한 논의는 어린이와 거의 관련이 없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라며, 그 가정들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어린이는 가족의 경제적 상황을 예리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학교 폐쇄 역시 정부와 학교, 부모들에게 뜨거운 논쟁거리였지만, 정작 어린이가 당사자이고 영향을 크게 받는 일이었음에도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정치적 공간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한국은 작년에 어린이날을 앞두고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관련 어린이 특집 브리핑을 진행했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그러나 한국 역시 학교 폐쇄, 온라인 강의 전환, 학교급식 중단, 돌봄교실 운영방식 등 어린이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린이들의 의견을 물은 적이 없으며, 그들의 입장에서 정책이 운영되지도 않았다.
연구진은 지금 연방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한 지원을 줄인다는 방침을 재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원 삭감이 진행되면 빈곤한 어린이의 수가 급증하여 어린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사회적 유대감에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도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게 성장 발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그것은 이들의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로 눈을 돌리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고, ‘진짜’ 필요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자.
*서지정보
Bessell, S. (2021). The impacts of COVID-19 on children in Australia: deepening poverty and inequality. Children’s Geographies, 1-11. DOI: 10.1080/14733285.2021.190294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