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봉사’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때다. 여름 방학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참여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언론 홍보도 어지간해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나라 안과 밖을 가리지도 않는다. 종류는 다양하고 방식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아주 일부를 빼면 좋은 뜻 자체를 의심하긴 어렵다. 일부 기관이 노골적인 세일즈와 홍보를 하는 것은 못내 언짢고 아쉽다. 하지만 아주 장삿속으로만 그런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대부분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참여한다. 모두들 결과도 좋기를 바란다. 이 일에 나서는 사람들은 기꺼이 돈과 시간, 다른 자원을 내놓는다. 너나 할 것 없이 봉사의 경험을 활용하고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두 손 들어 환영하기 어려운 때가 더 많다. 솔직히 말하면, 상당수 봉사는 반대하고 말리고 싶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이나 방식, 대상이 모두 다르니 한 가지로 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의료 봉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몇 가지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그나마 누가 보더라도 터무니없게 잘못 하는 경우는 빼도 그렇다.
첫째 문제는 주민이나 환자 편에서 볼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료 봉사가 대부분 일시적이고 단편적이라는 점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문제를 보완하고 싶어도 해결책은 많지 않다.
의료 봉사 역시 사람들의 병이 낫고 건강이 향상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에는 반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시적인 ‘개입’으로는 이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한번 투약으로 평생 가는 치료도 아니라면, 약을 ‘뿌리고’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장 좋은 상태라야 문제를 발견하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내든 국외든, 당사자가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슨 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안다는 소리다. 기껏해야 문제를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라면 진료나 진단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환자와 질병을 발견하더라도 후속 조치가 없으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다음으로, 활동의 대상이 되는 현지 주민의 생각, 문화, 태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쉽다는 것도 문제이다. 건강이나 의료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사회와 문화라는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하는가의 문제이다. 그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병으로 규정되거나 그 반대의 일이 생길 수 있다. 어떤 상태에서 무슨 생각으로 의료를 찾고 이용하는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먼 나라 후미진 곳에 한국의 의료 봉사 팀이 처음으로 초음파 진단을 했다고 치자. 또는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해도 좋다. 일차의료 수준에서 충실하게 원칙에 맞추어 건강검진을 잘 하고 있는 농촌 지역이 있다고 가정하면 된다. 여기에 대학병원이 어마어마한 검진 설비를 가지고 가서 ‘종합 자동 컴퓨터’ 검진을 무료로 한다면?
이것을 단지 기술 측면에서 ‘혜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봉사는 의료는 물론이고,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중에는 부정적인 것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현지의 기관과 인력, 사업과 진료를 불신하고 ‘선진’ 의료만 최고로 치게 되는 것이 대표적 부작용이다.
의학과 의료는 보편성을 가진다고 주장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건강과 질병, 의료 이용의 패러다임이 다른 지역사회 또는 다른 문화에 전파되고 확산되는 것은 길고 비싸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의료 봉사는 이런 확산 과정의 통로가 되기 쉽다.
세 번째로, 의료 봉사가 ‘그 곳’에서 작동하고 있는 보건의료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봉사’의 대상이 되는 지역이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고 있든 아니든 외부의 충격에 따라 쉽게 동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건강검진은 문화를 설명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보건의료체계와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국내와 국외 모두 해당된다. 국내에서 특히 여건이 나쁜 곳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그 곳에서도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의원이 존재하고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부족하고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규모 의료 봉사는 이런 체계를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스스로 커가고 발전해야 할 기회를 없앤다면 외부 자극은 차라리 ‘파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외국을 찾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언하지만, 그 어떤 지역도 나름의 보건의료체계가 전혀 없는 곳은 없다. 이미 있는 체계와 아무 연관 없이 외부 충격을 주게 되면 그동안 유지되던 보건체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주 적은 자원으로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이런 곳에 여러 인력이 진료 서비스와 약품, 재료를 일시에 풀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예방을 위해 교육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값비싼 치료를 소개만 해놓고 돌아온다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나름 형성되어 있던 체계는 허물어지고 시스템은 왜곡된다. 막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의 자체 시스템을 위협하는 결과가 가장 심각하다. 지역 공공병원이나 의원에서(국내든 외국이든 비슷하다) 어떤 수술을 막 시작했는데, 의료 봉사단이 한꺼번에 해당 수술 대부분을 해버렸다면? 공공이든 민간이든 체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몇 가지만 말했지만, 이만해도 의료 봉사를 다시 생각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활동에 나서는 사람들도 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지만, 여전히 새롭고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 크다. 좋은 뜻을 어떻게 좋은 결과로 바꾸어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첫째, 본래의 좋은 의도를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지진이나 홍수가 난 지역에 의료 봉사를 하겠다는 것은 그곳의 주민에게 정말 도움이 될 일을 하려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다. 진정한 ‘필요’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하는 데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비교적 쉽다. 언론에 비쳐지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면 몰라도, 의료 봉사 대신 차라리 물품을 지원하거나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편이 훨씬 효과가 클 수도 있다. 인력이 부족해서 곤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면 ‘직접’ 가는 것이 꼭 좋다는 보장이 없다. 많은 인력이 갔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었던 봉사의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
둘째, 어떤 경우든 ‘현지’의 보건체계와 인력, 또는 기존 사업과 결합, 통합되는 것이 좋다. 본래 되고 있던 일을 지원하고 보강하는 것이 우선이란 뜻이다. 이렇게 되려면 미리 제대로 계획을 세워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때로 특정 전문가가 필요하거나 단기간의 집중 사업(예를 들어 조사나 홍보)이 요구되기도 한다. 물론 시설이나 장비, 물품이 필요한 때도 있다. 의료 봉사가 현장의 이런 요구와 부합하고 전체 사업 속으로 통합되는지는 사전에 어떤 ‘통합적’ 계획을 세우느냐에 달렸다.
셋째 과제는 전체 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꼭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활동도 그 지역과 주민들에게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이미 그 안에서는 인력과 시설, 재정, 서비스, 행정 등이 하나의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의 자극과 개입, 충격은 보건의료체계를 좋게 하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피상적이고 단기적인 관찰과 경험만으로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언뜻 의사가 부족한 것이 문제로 보여도,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을 파견한다고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시설과 물품, 의약품은 어떻게 할 것인지, 또 그에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요약해 보자. 바람직한 의료 봉사를 한 마디로 말하면, 봉사 대상이 되는 곳, 그리고 그 곳의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봉사를 하는 쪽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계획하고 요구하며 조정하는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당장은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정성과 시간과 자원을 쓰고, 어려움과 곤란을 기꺼이 감수하려 하고 있다. 선의가 마땅히 좋은 결과를 맺어야 한다. 의료 봉사의 새 모델을 만들고, 또 새롭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