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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는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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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21년 6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약칭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됨에 따라 가사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 등 노동관계 법령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다(2022년 6월부터 시행). 하지만 모든 가사노동자들이 적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인증한 기관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며, 「근로기준법」 상 근로시간, 휴식 등 작업환경 규제 측면에서 중요한 조항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자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임금, 장시간 근로, 부족한 휴게시간과 공간, 업무 관련 외 지시사항, 성폭력 노출 등은 가사 노동자들이 만성적으로 겪고 있는 노동환경이다. 그간 가사노동은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라 적용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의 경우 내외국인 구별없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지만,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경우 가사노동과 여성노동이란 취약성에 이주라는 취약성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노동환경은 건강의 중요한 사회적 결정요인 중의 하나로서, 위에서 나열한 사례들만 살펴봐도 이주 가사노동자들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플 때도 쉽게 병원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국제학술지 <환경연구와 공중보건>에 실린 연구로 대만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이주 여성 가사노동자의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관련 요인을 파악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논문 바로가기: 대만 거주 인도네시아인 이주 가사노동자의 의료접근성).

 

해당 연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사용하여 대만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2019년 2월부터 5월까지 데이터를 수집하여 최종적으로 248명을 분석대상에 포함시켰다. 다중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적용하여 사회인구학적 요인과 의료서비스 접근성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이주 가사노동자의 의료서비스 접근성과 관련된 요인은 결혼,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병원방문을 도와주기 위해 고용된 동행인의 존재였으며, 언어 장벽과 시간 사용의 유연성은 의료이용의 주요 장벽 요인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 연구 결과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으로 다가왔다면, 그 이유는 나라만 다를 뿐 한국 사회 내 이주 여성 가사노동자들의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대만 내 이주 돌봄노동자 또는 가사노동자들은 평균 휴일이 월 1일 정도로 보고되는데, 한국 내 이주 가사노동자의 경우 입주제 근무형태로 주당 6일 근무와 일 16시간 이상 근무의 비중이 높다(관련자료 ☞ 이주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와 정책방안). 이러한 근무환경은 건강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그들이 아픈 것을 알면 본국으로 송환시킬 것이 두려워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뿐 아니라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복합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의료 접근성 문제는 경제적, 시간적, 물리적 접근성을 넘어 사용자에게 과도한 권리가 주어지는 고용정책, 차별적인 보건의료체계, 노동시장 구조 등 근본적인 체계와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며, 고용주와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이주민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층적이다. 건강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에서, 이주 가사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이주 노동자가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킬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고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주 노동자의 생명과 생계에 직결된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 서지정보

 

Weng, S. F., Malik, A., Wongsin, U., Lohmeyer, F. M., Lin, L. F., Atique, S., Jian, W. S., Gusman, Y., & Iqbal, U. (2021). Health service access among indonesian migrant domestic workers in Taiwan.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18(7), 1–11. https://doi.org/10.3390/ijerph1807375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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