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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문화와 여성 자살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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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리라(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산후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어린 자녀를 방임, 학대하거나 자녀살해 후 자살을 선택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기사 바로가기 1, 기사 바로가기2).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출산 후 6주 이내 절반에 가까운 산모들이 산후우울감을 겪는다는 사실은(자료 바로가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 과정에서 여성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변화와 어려움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 심각한 산후우울증과 자살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보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병약한’ 엄마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많은 자살연구에서는 여성은 남성보다 자살률이 낮으며, 특히 엄마가 되었을 때 자살률은 더 낮아질 것이라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이유로 여성들은 출산 후 모성을 갖게 되어 생존본능이 강해진다는 점을 언급한다. 실제로 북·서유럽 국가들, 캐나다, 이스라엘 및 미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출산 후 자살률이 낮아지는 결과를 보여준다. 서두에 살펴본 기사와는 다른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떤 맥락이 산후 여성들의 경험에서 차이를 만들어낼까?

 

이와 유사한 질문을 가지고 첸 연구팀은 대만을 사례로 하여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산후 문화와 여성의 자살률의 관계를 다룬 연구를 발표하였다(논문 바로가기 ☞ 출산 후 1년 내 여성의 자살: 인구기반연구). 대만 여성들은 교육, 임금노동 및 공공리더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적으로는 활발하나, 가족문화는 여전히 가부장적 관습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출산 후 자녀돌봄 방식이나 엄마가 임금노동에 다시 참여할 것인지, 참여한다면 언제 시작할 것인지 등 중요한 결정에 시댁의 의견이 반영되기 쉽다. 게다가 산후 약 6주에 해당하는 ‘zuò yuènzi’(산욕기)에는 산모의 회복을 위해 여러 관습들이 시행되는데, 어떤 행위들은 산모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침상에서 벗어나거나 외출 및 목욕, 머리감기 금지). 연구팀은 대만에서 벌어지는 산후 상황과 관습을 고려하면 출산 후 1년이 되지 않은 여성들에게서 자살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라 예측하였다.

 

연구를 위해 국가신분번호데이터(NID)와 출생증명데이터(BCA)(2001-2016), 국가건강보험데이터(NHI) 및 사망신고(DR)(2001-2017)자료를 연결하였으며, 2001년 1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 사이 출생증명데이터에 등록한 여성들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해당 기간 동안 정상분만한 20-44세 여성(N=2,157,409)만을 포함하였는데, 이 가운데 총 1,571건의 자살이 발생했다. 자살사례와 비교를 위해 무작위 추출을 거쳐 통제집단을 설정하였다(자살사례의 4배 수인 N=6,284).

 

출산과 자살률 관계를 다룬 기존 연구들에서는 출산경험 유무와 관계없이 동일한 연령대의 일반 여성이 통제집단으로 설정되었으나, 이 집단과는 명확한 비교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동일한 연령대의 출산경험이 있는 집단을 선택하였다. 자살집단과 통제집단은 모두 ‘지난 42일 내 출산’, ‘42일에서 6개월 내 출산’ ‘6개월-12개월 내 출산’, ‘출산한지 1년이 지난 여성’으로 구성된다. 조건부 이항로지스틱 모형을 통해 최근 출산집단이 그 시점을 지난 집단과 비교했을 때(예를 들면, ‘42일 내 출산’ 집단과 ‘출산한지 42일이 지난 집단’의 비교) 자살률에 미치는 효과를 보여주는 자살 오즈비(odds ratio)를 산출하였다.

 

기초 분석 결과, 자살집단은 통제집단과 비교하여 싱글맘이거나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및 정신질환 병력을 가질 확률이 유의하게 높았다. 로지스틱 분석을 통해 출산 기간별 자살집단과 통제집단이 포함된 모형을 살펴보면, ‘지난 42일 내 출산’과 ‘출산 후 42일이 지난 집단’, ‘42일에서 6개월 내 출산’과 ‘출산 후 6개월 지난 집단’ 및 ‘6-12개월 내 출산’과 ‘출산 후 12개월이 지난’을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최근 출산한 경우 자살 오즈비가 높게 나타났다. 자살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회경제적 지위와 정신질환 병력을 보정한 최종모형에서도 최근 출산 집단에 속한 경우 이후에 출산한 집단보다 자살 오즈비는 이전 모형에 비해 더 높아졌다.

 

이는 그동안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자살연구에서 산후기간이 여성에게 보편적으로 자살로부터 보호 효과를 갖는다고 가정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또한 정신질환 병력을 보정했을 때에도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은 산후 여성의 자살사망률이 단순히 정신질환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 산후기간의 맥락과 의미 측면에서 자살을 해석해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더불어 싱글맘인 경우 자살 오즈비가 일관되게 높게 나타나 해당 사회가 특정 집단에 속한 여성에게 갖고 있는 편견 역시 자살률을 높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떨까?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가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자녀의 주 양육자는 엄마이다. 엄마에게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돌봄 책임은 아빠에 비해 훨씬 무겁다. 가족으로부터 지원이 부족하거나 부재한 엄마는 소위 ‘독박육아’를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해 임신과 출산 이전 참여했던 사회적 활동의 제한은 여성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듯 한국에서 출산율은 2020년 기준 0.837로 1명에 채 미치지 못한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여성들이 겪게 되는 삶의 극적인 변화와 어려움은 소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출산한 여성 대다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출산과 양육은 대단히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어있다 할 수 있다. 소개한 연구에서 출산 후 다양한 측면에서의 제약이 여성의 자살률을 높일 수 있다는 해석은 유사한 산후문화를 지닌 한국에서도 이미 존재할 수 있다.

 

‘강한 모성’이라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이미지에 기대지 않고, 여성들이 임신, 출산 및 양육으로 인한 젠더불평등한 제약과 압박을 덜 수 있을 때 여성들의 자살률이 줄고 정신건강도 증진될 것이다.

 

*서지사항

 

Chen, Y.Y. Canetto, S.S., Wu, K.C.C and Chen, Y.L. (2021) “Women’s Suicide in the First-Year Postpartum: A Population-based Study” Social Science & Medicine 292:11459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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