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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수리(數理) 모형의 감정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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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언론 보도를 통해 정부 당국뿐만 아니라 감염병학자나 수리과학자들이 코로나 유행의 규모는 어떻게 될지, 언제쯤 추세가 변할지 여러 시나리오로 예측하는 장면은 꽤나 익숙해졌다. 감염재생산지수나 백신접종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산출했다는 그런 추정치들은 방역대책을 위한 상당히 객관적인 데이터로 인식된다.

 

그런데 오늘은 소개할 연구는 이런 수리모형이 어떻게 산술적 범위를 넘는 영역과 엮이면서 감염병 확산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문제화하고 전례없던 도시 봉쇄의 근거가 될 수 있었는지 분석한 논문이다. 연구팀은 2020년 3월 영국에서 내려졌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 수준의 봉쇄조치에 관여한 수리모형 전문가와 과학자 29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 최신호에 게재하였다(논문 바로가기 ☞ 판데믹 키우기: 코로나19 수리 모형의 상황적 기능). 연구자들은 분석 결과를 자료 분석, 연구 결과와 제반 환경의 결합, 정책 적용의 세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연구자들은 우선 자료 분석 단계에서 수리 모형이 ‘충분한 근거’로 활용되는데 필요한 두 가지 요소를 발견했다. 첫째는 복잡한 추상화가 아닌 실제 자료와 근접한 결과를 나타내는 단순한 모형이 만들어낸 현실감이다. 연구 대상자 중 한 명은 ‘단순한 지수함수 그래프가 현실을 잘 설명했고 논쟁할 거리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는 여러 자료원을 이용한 반복 검증이었다. 학계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확산세가 더 빠를 것으로 예측한 모형은 자신 있게 발표하기 어려웠는데, 반복 검증은 망설임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확산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이용하여 판데믹의 위험성에 관한 인식을 키우는 과정은 자료와 모형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연구자들은 예측모형이 근거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기존 정책, 정부의 자문 체계, 부족한 시간, 불확실성 그리고 ‘믿음의 도약’과 얽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먼저 수리모형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가 판데믹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 불편한 상황에서 통상 전문가에게 주어진 역할인 조언을 벗어나 명확하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로 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완벽하게 과학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황의 응급한 정도를 강력하게 알리기 위해 계산 결과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더 큰 위협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수리 모형은 단순 계산 결과 이상의 힘을 갖게 되었으나, 이 정도로는 정책 차원에서 봉쇄 전략이 관철되지는 못했다.

 

이후 영국의 판데믹모형자문단(SPI-M)은 판데믹에 관한 여러 우려를 정리하여 정책합의 과정에서 쓸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 출판하고, 비상사태 과학자문단인 SAGE를 거쳐 영국 국무조정실에 제출했다. 연구자들은 SPI-M이 전문가들이 각기 생산한 연구결과가 종합되는 공간을 제공했기 때문에 근거가 될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이 때 전문가들의 합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 근거가 충분히 검토되었고 표준화를 거쳤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부여하였으며, 정책 영역에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일인 국가적 봉쇄정책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시간 부족과 불확실성이라는 요인 때문에 자신들의 모형이 봉쇄라는 유례없는 결정에 이용되는데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평소라면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했을 일을 급하게 수행하며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거나, 불확실성 속에서 고참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통상적이고 익숙한 결정을 반박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감정적으로 큰 어려움이었다.

 

연구자들은 기존의 과학과 수리 모형의 과학 사이에 만들어진 이런 간극을 경험적 적합성 검증을 거친 특권적 지식의 원천인 ‘데이터’와 아직은 합리적 의심에 불과한 ‘믿음’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자들은 판데믹모형자문단에서의 합의 도출이 불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행동할 때 필요한 ‘믿음의 도약’을 도왔으며, 이 ‘믿음의 도약’이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자명한 인식론적 요건이라고 보았다. 예상보다 빠른 ‘더블링 타임’으로 나타난 지수함수적 문제 상황은 시간과 자연에 대해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사흘에 불과할지라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계획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이 비약은 허용되었다. 감염병의 문제화에는 문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는 것보다 상황과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한편, 정책 영역에서 봉쇄 정책 발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최악의 상황을 신중히 가정하여” 빠른 확산세를 반영해 각종 지표를 산출한 연구 보고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경우 영국 인구의 80%가 감염되고 51만명이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는 그 전에 이루어진 수리 모형 연구를 제치고 국가 수준 봉쇄정책의 유일한 근거인 양 다루어졌다. 연구자들은 수리 모형의 산출 결과가 정책으로 변환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정책 과정의 하나로 근거가 이용되었다고 보았다. 수리 모형의 동력은 “감염병 확산 상황이 바뀌었고,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방금 알았다”는 정책 서사를 만들어주는데 있었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봉쇄정책은 “과학적으로”, “근거중심적으로” 시행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근거”라고 믿는 것들이 과학과 정책을 이어주는 기성품이 아니라, 여러 주체들이 맺는 관계 안에서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며 수리 모형이 만드는 근거와 모형의 정책적 유용성은 맥락에 맞는 기능을 할 때 충족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또한, 예기치 않은 국가적 봉쇄에서 수리 모형이 어떻게 정책 과정의 일부가 되었고, 근거와 정책이 어떻게 엉켜 있으며 왜 분리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수리 모형이 경험적 사실과 함께 현재의 정치나 정책과 일치해야 ‘적합성’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과학적 근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이러한 시각은 모든 소위 ‘과학’이 과학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킬만한 이유와 함께 새롭게 나타난다는 인식이다.

 

또한 근거 생성 과정은 숫자와 가치를 동시에 계산하는 작업이며, 감염병 확산의 경우 감염, 입원, 사망, 지표, 예측, 인프라, 기관, 과학자, 시간, 불확실성과 같은 그 자체로 광범위하면서 점점 넓어지는 특성을 가진 네트워크가 근거 생성에 관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판데믹 ‘규모의 크기’는 불확실성과 불안 그리고 양적인 계산이 분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정되며 모형에는 질병 확산세가 불확실한 재앙이 될 수 있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과학 또한 정치와 다름없이 계산 결과뿐만 아니라 감정에 따라 구성됨을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이 코로나19 판데믹의 심각성을 알린 수리 모형을 연구 주제로 삼은 이유는 모형과 근거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수리 모형과 과학을 통해 본래 하던 일을 보조하거나 편하게 만들거나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수리 모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학적’으로 완벽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데도 정책 결정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눈 앞에 놓인 과학적 근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맥락에 따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서지 정보

– Rhodes, T., & Lancaster, K. (2022). Making pandemics big: On the situational performance of COVID-19 mathematical models. Social Science & Medicine, 114907.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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