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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이 ‘질병’으로 정해질 때: 보험 회사의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의학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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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리(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무엇이 질병을 결정하는가? 질병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우리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질병들을 마주할 때면 이러한 의문들이 떠오르곤 한다.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전에는 질병이 아니었던 증상들이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질병으로 발견되거나 인정되는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ADHD) 같은 증상은 현대에 와서야 질환으로 인정받았고,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의학기술들 또한 최근에서야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정한 증상을 질병으로 명명하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의학 지식의 확대가 영향을 미치겠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신체적 증상의 여부 또는 의학적 필요 여부 보다 시장 논리,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영화된 의료보험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특정 증상이 질병으로 인정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다.

 

마리아 라루소(Maria LaRusso)를 필두로 하는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은 미국에서 소아 급성 신경증후군(Pediatric Acute-Onset Neuropsychiatric Syndrome, PANS [이하 판스])이나 연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소아 자가면역 신경정신장애(Pediatric Autoimmune Neuropsychiatric Disorders Associated with Streptococcal Infections, PANDAS [이하 판다스]) 질환을 가진 환자와 그 가족의 사례를 조사하였다(논문 바로가기 ☞ 부적절한 돌봄: 보험급여와 의학의 논리는 어떻게 아동들의 건강과 발달을 두고 절충하나?). 이를 통해 영리 목적의 구조를 가진 미국 보건의료체계가 의학적 증상이 있는 질병들에 개입하는 현실을 분석했다.

 

판스와 판다스는 넓은 진단적 개념으로, 바이러스 및 세균성 감염 또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특정 증상을 갖게 된 아이들의 상태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균에 감염되면 몸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데, 이를 공격하기 위해 생성되는 항체가 과잉 반응하면 대뇌를 공격하는 자가면역반응이 일어나 뇌신경이 손상되어 특정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대표적인 증상이 틱장애이고, 그 외에도 강박장애, 식이장애 및 불안장애, 무기력, 우울과 같은 다양한 행동 및 정서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가 판스/판다스를 국제질병분류체계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 ICD)에 등록했지만, 여전히 논쟁이 있는 질병이다. 판스/판다스가 다양한 증상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 증상에 대한 의학적 분석이 아직 미진하여 의사들이 이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당 연구팀은 판스/판다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들을 심층 면담하여, 균의 감염이나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병리적 원인이 기반이 됨에도 불구하고 해당 질환이 보험회사의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분석하였다.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해당 질환이 논쟁적이어서 의사한테 진단서를 받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판스/판다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 단순이 정신질환적 증상으로 파악하기 쉽고, 균의 감염으로 촉발된 질환이기 때문에 항생제 처방이 필요함에도 증상적인 진단으로는 이를 처방 받기 어렵다. 이 문제는 의사의 부족한 진료 경험보다도 보험 회사에 의료비를 ‘청구’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의료비를 청구할 수 없는 질병은 진단서를 받기도 어려운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가족들은 모두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를 내는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판스/판다스가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보험비용 처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의료서비스가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에 보험료가 비싼 것은 물론이고, 보험사의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 천문학적 비용을 내고 진료를 봐야 한다. 실제로 연구팀이 조사한 몇몇 가족들은 의료보험이 있음에도 치료비를 보장받지 못해 대략 십 만 달러(원화 약 일 억원)를 치료비용으로 쓰고 파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의료보험 보장 범위는 보험 회사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운 질병이 발견되면 보험 회사는 보험료를 올리거나, 아예 해당 질병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뿐만 아니라 보상 여부는 의료소송과 연관될 수 있는 입법, 판결사례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보험 회사가 해당 증상을 ‘질병’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의학적 지식의 확장(질병분류체계에 포함되는 것)과 별개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요인, 정확히는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이 때문에 환자의 가족들은 직접적으로 판스/판다스로 보험을 청구하기보다 이미 보장범위에 포함된 다른 증상으로 우회하여 비용을 처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는 커뮤니티에는 몇몇 ‘유명한’ 의사들이 있다. 그들은 판스/판다스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해당 질병으로 의료 보험 청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우회하여 진단서를 작성한다.

 

혹자는 보험회사의 인정 여부와 특정 증상이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민영화된 의료시장에서 실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보험 회사의 ‘인정’ 여부에 달려있는 미국의 경우, 보험회사와 질병의 실재에 대한 논쟁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미국의 의료시장에서 보험회사의 권력이 매우 커서, 이들이 의료적 돌봄 그 자체를 구성한다고 평가한다. 한 가족은 자신이 특정한 바이러스 치료제를 받기 위해 몇 달 동안 보험회사와 싸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의사가 아니라 보험 회사가 의학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 같다고 토로하였다. 영리를 추구하는 보험 시스템 안에서 의사가 ‘적절하지 않은’ 진단서를 많이 청구하는 경우 병원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어 해고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다른 가족은 판스/판다스 커뮤티니에서 유명했던 M박사를 보험회사에서 진단서 발급 남용으로 고소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판스/판다스는 소아 자가면역질환이기 때문에 빨리 발견하고, 빨리 치료할수록 상황이 호전 될 가능성이 높은데, 보험회사와의 지지부진한 싸움으로 치료 시기를 놓친 아이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소개한 사례는 이윤과 비용효율성을 앞세우는 현대 의학체계와 민영화된 의료제도가 만들어낸 ‘부적절한 돌봄’의 한 가지 예이다. 이런 일들을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들의 실재하는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모든 체계와 제도는 윤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지식과 기술진보에 힘입더라도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는데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서지사항

LaRusso, Maria, Daniel F. Gallego-Pérez, and César E. Abadía-Barrero. “Untimely care: How the modern logics of coverage and medicine compromise children’s health and development.” Social Science & Medicine (2022): 11496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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