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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을 실천하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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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은(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시민은 과학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가?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 시민들은 과학을 실천하는가? 시민과학에서 남녀의 참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과학은 대개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거나 수행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분야로 간주된다. 이러한 경계는 자칫 과학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한정짓고, 일반시민들을 과학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시민들로 하여금 전문가의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학이 일반시민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의미있는 과학적 지식을 만들어낸 사례연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인류학자 오은정은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이 지역에서 방사능 측정활동을 활발하게 지속하고 있는 이와키 방사능 시민측정실 <타라치네>(이하 타라치네)의 활동을 분석하였다(논문 바로가기 ☞ 재난 지역 여성의 시민과학 실천을 통해 본 삶을 위한 연대: 후쿠시마 이와키방사능시민측정실 타라치네활동을 중심으로). 타라치네는 후쿠시마현 이와키 지역의 여성들이 주체가 된 시민과학단체로서, 연구자는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 일본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하며 문헌 및 인터뷰 자료를 수집했다.

 

후쿠시마 지역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과학적 실천에 나서게 된 것은 공공연한 여성혐오적 분위기와 자신들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서부터이다. 방사능 위험에 대해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자들의 히스테리”로 치부되거나 국가의 부흥의지를 꺾으며 공동체를 배반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재난복구과정에서는 여성들이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견은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았으며, 유급으로 잔해처리 노동을 한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이 피난소에서 한 돌봄노동(청소, 식사, 어린이 보호 등)은 자원봉사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후쿠시마출신 며느리는 필요없다”는 혐오적 발언이 유행하기도 했으며, 이 지역의 여성들은 “잘못된 자손을 번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방사능 오염물”로 취급되기도 했다. 여성의 취약한 지위와 젠더불평등 구조가 재난상황에서 더욱 명확히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여성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자신들의 위치를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성단체에서는 다양한 지원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젠더관점을 포함한 재해이론과 당사자의 목소리를 언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을 꾸준히 제기했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활동 중에서도 특히 후쿠시마 여성들이 대안적인 삶을 상상하며 참여한 방사능측정 시민과학 실천에 주목한다.

 

일본정부가 공개한 방사능 위험정보는 검사대상의 표본이 너무 적거나 실제로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사물들은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시민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에 타라치네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구성하는 사물과 장소의 방사선량을 직접 검사, 측정하여 그 자료를 정리하고 공표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연구자는 이들의 작업이 단순히 객관적인 수치들을 축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사물, 사람, 장소와 새롭게 관계를 맺고 거리를 조정하며 삶의 세계를 확장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연구자는 타라치네의 활동이 개인적인 차원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도, 지역 사람들이 공통의 세계 감각을 형성하게 하는 소통의 한 형태라고 분석한다. 특히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타라치네는 방사능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라도 편히 꺼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지역여성들은 주변에서 접하는 사물과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타라치네에서 다 같이 고민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연구자는 방사능을 측정하는 것이 불확실한 재난상황 속에서 지역여성들이 타라치네를 통해 주체적으로 생활정치와 연대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시민과학활동은 개인의 기업가적 자질을 강조함으로써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시민들이 스스로 위험을 통제, 관리하게끔 일조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유하는 지향과 목적, 구체적인 활동내용과 과정에 따라 시민과학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시민과학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며 대안적인 삶을 함께 모색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이런 민주적인 지식정치는 기술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지식이 초래하는 결손을 메꾸고, 시민들의 필요와 관점에 대한 정부의 책무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 서지정보

오은정. “재난 지역 여성의 시민과학 실천을 통해 본 삶을 위한 연대: 후쿠시마 이와키방사능시민측정실 『타라치네』 활동을 중심으로.” 비교문화연구 27.2 (2021): 143-19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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