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 국가들에서는 선거 과정에서 여러 정당 혹은 정파가 경쟁하는데, 정치 담론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이 이루어지는 부문 중 하나가 바로 정부 지출이다. 정당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 국가의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무엇이 우선순위인가에 관한 입장이 구분된다. 전통적으로 우익 정당은 낮은 사회보장 지출과 시장주의적 지향을, 좌익 정당은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통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다고 간주된다.
그렇다면 집권 정부의 성향과 그에 따른 건강 부문 정부 지출 수준과 같은 정치적 요인이 그 사회의 건강 상태에도 영향을 미칠까? 영국의 알렉시우와 트래차나스 연구팀은 ‘건강의 정치적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자 이 질문에 관해 탐구하였다(논문 바로가기 ☞ 정치, 건강 부문 정부 지출, 그리고 영아사망률: 정당의 성향이 중요한가?).
연구팀은 분석을 위해 세계개발지표(World Development Indicator), 정치 제도 데이터베이스(The Database of Political Institutions) 등의 국제 조사를 활용하였다. 집권 정당의 정치적 지향(우파, 중도, 좌파), 그리고 GDP대비 건강부문 정부지출 비중과 집권당의 정치적 지향의 상호작용항이 영아사망률(출생아 1천명 당 1세 미만 영아 사망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분석 대상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총 19년의 기간 동안 G20에 속하면서 자료가 확보된 15개 국가(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멕시코, 미국,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인도, 일본, 캐나다, 프랑스, 한국)이다. 연구팀은 영아사망률의 국가 간 이질성을 고려해 고정효과모형 패널 분위수회귀분석(quantile panel estimator with non-additive fixed effects)을 수행하였다. 통제변수로 경제적 불평등(지니계수), 실업률, 중등교육 진학률을 포함하였다.
분석 결과, 우파 및 중도 집권 정당과 비교했을 때 좌파 정당의 집권은 영아사망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영아사망률 분위가 중간(0.25 ~0.75)에 해당할 경우에는 영아사망률을 현격히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사망률은 그 자체로 중요한 건강 문제일 뿐만 아니라, 모성 건강, 공중보건 수준, 의료의 접근성과 질, 사회경제적 상태 등 다양한 요인들과 관련되어 있고 또 아동기 건강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한 사회의 건강 수준을 나타내는 주요한 지표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구결과는 시민들의 전반적인 건강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의 우선순위를 건강에 둘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영아사망률이 가장 높거나(0.9) 낮은(0.1) 분위에서는, 좌파 정당의 집권과 정부 지출이 각각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양극단의 경우에서 건강 향상을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 지출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다른 요인들의 변화를 동반시킬 수 있는 복합적인 정책적‧제도적 필요함을 시사한다.
대표적으로 재분배 정책을 같이 시행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모든 분위에서 지니계수가 영아사망률을 확연히 높이는 요인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낮은 실업률과 높은 중등교육 진학률이 더 긍정적인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 역시, 건강 부문 정부 지출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형평성 향상을 위한 전반적인 사회 정책, 가령 보편적 복지나 부자 증세와 같은 진보적인 세금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정치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특히 건강 부문의 정부 지출과 재분배 정책에 호의적인 좌파 정부가 영아사망률을 비롯해 인구집단의 건강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적 근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논문의 함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들의 건강 증진은 단순히 다음 선거에서 어떤 정당을 뽑느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특히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더 나은 건강을 위해서는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 정치’를 넘어서, 건강과 관련된 정치적 과정을 특정 정당 및 이해집단이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의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편적인 권리로서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만이, 정당 정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서지사항
Alexiou, C. and Trachanas, E. (2021), “Politics, government health expenditure and infant mortality: does political party orientation matter?”,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Economics, Vol. 48 No. 12, pp. 1810-1825. https://doi.org/10.1108/IJSE-04-2021-0221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