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정부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보장하는 방안을 다시 마련하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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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는 권고문을 발표했다. 권고문은 윤석열 정부가 이미 표방한 노동시장 유연화의 국정기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확실하다. 연구회는 이 권고문이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 노동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하는 것이라 하였다. 노동시장 개혁이 미룰 수 없는 국가적‧시대적 과제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연구회 권고안의 목표가 정말 공정하고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것인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미 연구회를 구성하는 전문가들의 면면에 대해 큰 우려가 제기되었듯이, 권고안 내용은 예상대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지향하는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어 ‘답정너’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로 이해된다.

 

권고안은 노동시장이 직면한 세 가지 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문제,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따른 불평등 문제,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으로 인한 불완전 고용문제, 그리고 기술혁명과 경제구조 변화로 인한 중층적 고용관계의 문제를 해소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미래노동의 정책처방은 그 문제들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심화・확대할 것이 분명하다. 연구회 개혁방안은 누구에게 공정한 노동시장이고, 누구의 자유와 건강을 위한 ‘개혁’인가? 이 권고안이 정말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며, 누구를 보호한다는 것인가?

 

연구회가 밝히는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개혁과제의 기본방향과 세부 과제는 자가당착 그 자체이다. 장시간노동 문제를 단순히 ‘노동시간의 자율적 선택’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노사 자율’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구조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혁과제를 별개의 과제로 분리해서 제안하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와 현장 증언으로 밝혀지듯이 노동자들이 장시간노동을 ‘선호’해야만 하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임금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권고문 어디에도 낮게 책정된 기본급으로 인해 초과근무로 임금을 ‘보충’해야 하는 노동자의 고달픈 현실은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임금체계 개혁과제에서는 기본급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일언반구 하고 있지 않다. 국정과제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죽도록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그저 도외시하려는가?

 

권고안에서 다뤄지는 노동시간 개혁방안은 장시간 허용범위를 둘러싼 논란을 유발하는데, 그 논란의 핵심으로 노동자들의 통제 권한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들의 통제 권한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제안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통제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정부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을 전방위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이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율화와 규제완화를 내세우는 것은 연구회가 기업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음을 명징하게 방증해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 노동시간 체제를 전면 재조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재조직 방향은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합당하다. 그런데, 연구회 권고안은 도리어 그 부정적인 영향을 강화하고 있다. 연장근로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관리하는 것과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부여 등의 보호방안 마련이 노동자 건강 보장을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장시간 노동을 보장하려는 개악의 대안이라는 점이 명약관화하다. 권고문에서도 인정하듯이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이 일하는 사람의 건강에 현저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상식이 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 및 야간노동이 고통의 원인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개혁이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족쇄를 풀어주면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은 워라밸의 국민적 여망을 거스르는 노동개악의 술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기술 변화와 다양한 근로형태 확산에 맞춰 근로시간 제도를 현대화하겠다는 것 역시 기업의 필요에 따라 유연근무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고용주에 대한 규제와 노동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에 대한 구체적 방안의 제시 없이 유연근무를 확대하는 것은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강도 강화라는 우려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또한 시간제 노동자들에게는 유연근무가 인력 보충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 임금 감소, 노동조건 악화 등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기업과 사용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노동자의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임금체계 개혁과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고용’이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책이 잘못 제시되고 있다. 예컨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격차가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권고안에서는 개인의 직무 및 숙련 등 자격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타당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또한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공정한 평가 및 보상 등도 마찬가지로 그 결정 권한이 경영계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임금 삭감 정책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의심스럽다.

 

연구회 권고문은 대한민국 노동현실의 핵심 ㅁ문제인 장시간노동, 저임금, 고용불안 등의 문제를 노동자 개인의 탓으로 돌린 채, 그들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더욱 나쁜 노동을 조장할 뿐이다. 연구회 권고문은 후진적 노동현실을 개혁하기보다 오히려 후퇴시키는 개악을 제안하고 있다. 권고문이 지향하는 자유경제 기반의 노동시장이야말로 자본이 지배하는 ‘낡은 제도의 철창’이고 불안정노동이 판치는 위험한 노동시장이다. 정부는 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려는 청부형 연구회의 용역 결과를 폐기하고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보장하는 진정한 노동개혁방안을 제대로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2.12.13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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