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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인력 정책에서 행위자 집단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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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인력 정책에서 직군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조상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다른 모든 노동과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현장의 인력은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인력은 수행하는 업무에 비해 대체로 그 수가 부족하며, 특히 비수도권의 비도시지역인 경우 이미 시장을 통한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 놓여있다.

 

한편 보건의료 전문직은 전문 지식의 사용에 대한 독점적 통제권과 자율성, 명성, 금전적 보상을 부여하는 사회적 계약을 토대로 활동한다. 타 분야와 구별되는 업무 혹은 서비스의 질과 성실성을 유지할 책임을 지는 대가로 보상을 받는 특징이 있다.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때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정당화하거나 도전받는 것에 방해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인력 정책의 경우 직군 간의 갈등이 자주 관찰된다. 이러한 경향은 암묵적으로 정책 결정과정에서 고려될 것으로 생각되나 명시적으로 이를 파악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보건의료인력 정책에서 직군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집단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보건의료인력 거버넌스와 전문직 종사자: 뉴질랜드의 일차의료 인력 정책 행위자들에 대한 재분석). 논문의 분석대상이 된 뉴질랜드의 일차의료 인력은 계획되기보다 보건의료체계가 부여하는 재정적 인센티브와 같은 동기에 의해 공급되는 탓에 환자 대비 인력 비율이 사람들의 수요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현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일차의료 환경에서 종사하는 보건의료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분석을 통해 이들의 권력 역학 관계와 인력 정책, 이슈에 대한 입장을 파악하고자 했다.

 

연구진은 일차의료 이해관계자 그룹과 보건의료체계의 주요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반구조화 인터뷰 자료를 이용하여 행위자 분석을 실시했다. 선행연구에 따라 일차의료 현장의 행위자를 ‘1) 인증과 자격을 통해 자율 규제권을 가진 의료 전문가(의사, 간호사)’, ‘2) 전문가의 업무를 규제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국가 혹은 정부’, ‘3) 전문직 인력을 고용하거나 서비스 제공에 활용하는 기관 등 사용자 조직’, ‘4) 교육 기관이 자격을 수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 자원을 보유한 학자’, 이렇게 네 유형으로 분류한 분석 모형과, 실무 전문가를 다시 의사, 간호사의 소분류로 나눈 다섯 집단 유형의 분석 모형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특정 행위자 그룹의 권력 특성을 ‘영향력 행사’와 ‘의존성’이라는 두 축을 이용하여 나타냈다(그림 참고). 네 집단 모형에 따르면, 기관과 같은 사용자 조직은 높은 영향력과 낮은 의존도를 가진 지배적 행위자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은 영향력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 전문직을 의사와 간호사로 분리한 다섯 집단 모형에서는 의사가 중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면서 의존도가 가장 낮은 집단이고, 간호사는 가장 높은 영향력을 가지면서 다른 행위자에게 중간 정도로 의존하는 집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의 경우 모형의 종류와 상관없이 영향력이 거의 없고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인터뷰 내용에서 전략적 이슈를 정리하여 언급된 빈도를 산출하고, 전략적 이슈별로 논쟁적인 정도를 산출했다. 전략적 이슈로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은 ‘비용 및 자금 조달’, ‘새로운 치료 모델’, ‘고령화’, ‘리더십’, ‘의료인력 부족’이었다. 연구진은 특정 전략적 이슈가 논쟁적인지의 여부를 전략적 이슈의 대안에 대한 찬성-반대 비율을 산출하여 지표화하였다. 의료인력 부족 문제와 보건의료인력 직종 구성비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논쟁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자국 내 활동하는 다른 국가 출신의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이슈가 그 뒤를 따랐다. 또한, 특정 이슈에서 각각의 행위자가 가진 입장에 따라 연대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 산출되었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사용자 집단의 영향력이 가장 크고, 전문직을 의사와 간호사로 분리한 모형에서 각 전문직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사용자 집단의 강한 영향력은 현재 제도에서 자금 제공자, 고용주와 전문직의 관계를 반영하고, 일반의(GP)와 같은 전문직이 타 전문직의 고용주와 같은 관계를 형성할 경우 사용자의 권한이 더 강화된다고 보았다. 또한 의사와 간호사를 상이한 집단으로 간주한 분석 모형에서 의사는 사용자와 연대하는 경향이 있고, 간호사의 경우 일관된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논쟁적인 이슈에서는 집단 간의 연합과 영향력 행사가 일어날 수 있다. 행위자 집단은 특정 전략적 문제에서 원하는 해법이 서로 다르다. 연구진은 개별 집단의 영향력이 약하더라도 서로 크게 갈등하지 않는 집단끼리 연합하면 예상치 못한 정책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전문직의 정책 관여 능력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상응하는 이익에 반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연구진은 보건의료인력 정책을 시행할 때 각 행위자에게 전략 목표를 제시하여 동의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보건의료인력 개발에 관한 WHO 지침에 따르면 인력의 모집과 유지에는 출신지, 가족, 가치, 생애주기와 같은 개인 요소, 이익, 자산, 보수, 지불 체계와 같은 재정 요소, 근무 환경, 인프라, 안전, 기술과 의료 접근성 등의 직업 주거 요소, 의무 복무, 훈련, 경력 등의 교육 관련 요소, 자녀 교육, 배우자의 고용, 지역사회의 인프라, 지역사회와의 유대와 같은 가족과 지역사회 요소가 있다. 생각보다 많은 차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인력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많은 요소들을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해야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보건의료인력이 가진 전문성과 이들이 정책 과정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이 정책에 실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난해한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단 간의 갈등과 타 정책 행위자와의 잠재적 동맹을 깊이 이해하고, 더 나아가 흔히 간과되는 국가 혹은 정부가 정책을 바라보는 입장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보건의료인력 정책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정책을 누가 찬성하는지, 누가 반대하는지, 왜 그러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각 정책 행위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Rees, G. H. (2023). Health workforce governance and professions: a re-analysis of New Zealand’s primary care workforce policy actors. BMC Health Service Research, 23, 44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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