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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적 국가권력에 맞서는 사회보호의 원칙과 시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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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기념일을 하루 앞둔 저녁에 열린 노동자 집회가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며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그에 앞서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총장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유혈 진압과 일부 비영리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출의 부정비리를 이유로 연간 지원금 30% 감축계획 발표가 있었다(비영리 민간단체에는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협회, 복지시설, 재단 등이 포함된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과 불신을 표출해 왔던 윤석열 정부의 예상된 조처이다. 결국 ‘변함없는 친구로 남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이 빈 말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한국노총은 경사노위 참여 전면 중단을 선언하고 윤석열 정부 퇴진운동에 돌입했다.

 

양대 노조에 대한 물리적 공격,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재정적 압박의 목적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 요구와 시민들의 공익적 사회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다. 바로 노동 혐오와 배제를 공고히 하고, 시민들의 참여 및 협력, 조직화를 약화시킴으로써 국가기구의 독단적 지배를 더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런 생각 즉, ‘노조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단이고, 시민사회활동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다’는 인식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려는 집요한 폄훼 노력이다.

 

국가권력을 견제·비판하며, 공적 가치와 공공성을 실천하려는 민주 시민들의 존재를 억압하고 지워버리려는 이런 국가의 통치 의도는 쉽게 달성될 수 있을까? 아니 쉽게 달성되도록 놔둬도 되는가?

 

 

생업으로 혹은 학업이나 돌봄으로 말 그대로 ‘현생이 고달픈’ 사람들이 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시위나 파업에 참여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 대신에 약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문제시하는 사회운동을 본업으로 삼을까?

 

시민들은 그런 정치적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적으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사회경제적 평등에 대한 믿음과 억압과 착취에 대한 반대이다(마르코 지우니 등, <거리의 시민들>).

 

시민들은 정치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거나 착취당하지 않고, 교육이나 주거·보건의료서비스 등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조건들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 정치적 행위를 통해 사회 내 권력의 역학관계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자원과 권한의 배분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기득권과 권력자들에게는 위협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우리 연구소가 여러 차례 언급해왔던 권력삼분관계로 보자면, 사회권력은 국가권력이나 경제권력보다 열세에 놓여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노동자·시민들의 집합적 정치행위를 통해 제 몫을 인정받지 못했던 실존하는 문제와 요구들을 공적 선택의 영역으로 옮기며 사회권력의 힘을 확대해왔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어떤 정치적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겨우 수사와 처벌의 정치 아닌가? 사회의 총체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권력, 자원, 권위는 오직 정부만이 가지고 있다(Giroux, 2006). 그러나 경찰이 노동자 강제연행과 압수수색 전에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이 노사 합의가 지켜지지 않아 400일 넘게 천막농성을 이어갈 동안, 그 사회적 합의를 준수하도록 사측에 어떤 강제적 조치를 발동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없다. 수사와 처벌이 오로지 약자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추어본다면, “불평등하고 자의적인 수사와 처벌의 정치”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

 

게다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조직과 인물에 대해서는 지원철회나 인사발령 처분이라는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는 조치를 취하면서 마땅히 필요한 권력 견제와 감시의 통로를 서서히 막고 있다. 성장둔화, 고령화, 기후위기, 미·중 갈등 등 쌓여가는 난제들 속에 정권이 책임성의 위기, 대응성의 위기에 직면하며 얼마나 더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정치를 남발할지 우려된다. 게다가 대응성의 위기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드는 긴축정책과 공공서비스 감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집권 14개월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의 사회적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시민들을 향한 무력을 결의하는 잔인한 정치에 기대할 것은 없다. 시민의 정치가 필요하다. 칼 폴라니는 19세기에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시장원리로 재편해 갈 때,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의 팽창을 저지하고 인간과 자연을 지키기 위한 ‘사회보호의 원칙’으로 대항운동이 조직화되는 이중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우리는 지금의 퇴행적 권위주의 정치의 확장으로부터 시민들의 역사적 성취와 미래를 보존하는 새로운 사회보호의 원칙 아래 단결해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들을 갈라놓아 다수 대중의 결합된 힘을 없애려고 하는 국가권력의 공격에 대하여 우리 노동자와 시민들은 더 절실하게 연대와 저항에 기반하여 저 타락한 정치를 사회구성원들의 삶에 복무하는 정치로 되돌려야 한다.

 

우선 각자의 상황에서 가능한 실천들을 수행하자. 가용한 시간과 자원을 고려하여 경제나 정보인권, 역사, 환경, 젠더 등 자신이 관심 있는 이슈를 다루는 조직이나 단체에 가입하자.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회원들과 공동행동에 나서자. 집정자에게 집요하게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아울러 단체가 그 목적을 잘 이행하는지 평가하고 감시하자.

 

나아가서 현 국가권력의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인 시도를 타격하면서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지키고 강화하자. 정당이나 노동조합·조직화된 시민단체에 참여하여 직접적으로 정치와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 진정서 서명·시위 및 캠페인 참여 또는 불매/구매 운동 같은 비제도적 실천운동에 참여하는 것!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보다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사회운동을 구현하는 것!

 

지금의 국가권력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들까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권력의 저항도 더욱 전면적이고 강력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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