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2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아직 잠정적인 결과이긴 하지만, 재작년 합계출산율인 0.81명보다 0.03명 더 감소한 수치이다. 합계출산율 1.3명을 기준으로 하는 ‘초저출산’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감이 있다.
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렇다보니 합계출산율을 발표하는 시기만 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대책이 쏟아진다. 올해에는 세 자녀 이상 출산 시 병역 면제 혜택을 주거나, 자녀 수에 따라 증여 재산 공제를 확대하자는 대책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 왔다. 2005년 대통령 직속기구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치되었고, 5년마다 범부처 차원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시행된 2006년부터 지난 15년 동안 약 280조의 재정이 저출산 정책에 투입되었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기초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다양한 저출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출산장려금이다. 각 지자체의 조례에 근거하여 지급되는 출산장려금은 지자체의 상황에 따라 지원 규모에 차이가 있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역일수록 경쟁적으로 출산장려금을 올리다 보니 같은 시도 내에서도 출산장려금의 격차가 최대 20배까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저출산 정책이 출산율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실제로 출산율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었을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국제학술지 <BMC 공중 보건>에 발표된 것으로, 한국의 출산율 변화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요인을 정량적으로 살펴본 연구이다(☞논문 바로가기: 한국의 출산율 변화와 출산장려정책의 관계). 기존 연구들이 출산, 육아, 일·가정 양립과 같은 일부 영역에 초점을 맞춰 저출산과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살펴보았다면, 이 연구는 종단 자료를 사용하여 저출산 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다.
연구진은 통계청에서 제공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50개 시군구의 합계출산율 자료를 활용하여 출산율의 변화를 추정하였다. 종속변수인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수를 의미한다. 독립변수는 출산장려정책으로, 각 시군구에서 시행하는 출산장려정책의 수를 사용하였다. 출산장려정책은 ‘2014년도 지방자치단체 출산장려정책 사례집’을 통해 현금 정책, 현물 정책, 바우처 정책, 서비스 정책, 교육·홍보 정책으로 구분하였다.
현금 정책에는 출산축하금, 양육지원금, 보육수당, 난임부부 치료비, 산후조리비, 지역화폐 제공이 있으며, 현물 정책에는 출산 축하 선물, 영유아 안전키트, 임산부 철분제 및 엽산제, 기저귀 지원이 있다. 바우처 정책에는 산모·신생아 돌봄 바우처, 산모 초음파 검사 쿠폰, 기형아 검사 쿠폰 등이 해당된다. 서비스 정책에는 장난감·도서 대여, 시설 및 프로그램 이용, 도우미 지원, 무료 진료 등이, 교육·홍보 정책에는 출산 준비 교실, 모유수유 교실, 육아 교실, 임산부 교실, 영유아 건강 교실 등이 있다.
연구진은 시간에 따른 변수의 변화량을 파악하여 종단적 변화의 흐름을 검증하기 위해 잠재성장모형 분석을 수행하였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출산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변화를 나타내는지 살펴보았다. 자료에 가장 적합한 모형인 이차함수 변화 모형의 분석 결과, 초기값(2014년 출산율)의 평균은 1.316이였고, 변화율은 –0.020이었다. 이것은 한국의 출산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초기값과 변화율의 분산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는데, 이는 지자체별로 출산율의 초기 수준과 변화율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단계는 종단 자료의 변화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식별하기 위한 것으로, 출산장려정책이 출산율의 초기값과 변화율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여러 가지 출산장려정책 중 현물 정책만이 초기값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제공되는 현물 정책의 수가 많을수록 초기 출산율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변화율의 경우, 모든 출산장려정책이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엄청난 예산을 수반하는 지자체의 출산장려정책이 출산율 증가에 효과적이지 않으며, 출산율 감소 속도 역시 늦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2년 한 해 동안 전체 지자체의 출산장려정책 예산은 1조 809억원으로, 2021년보다 26.7% 증가하였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이중 약 70%가 현금 지원에 해당되며, 연구에서 출산율에 일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던 현물 지원은 3.3%에 불과하다. 또한 대부분의 출산장려정책이 주로 임신·출산 시에만 일시적으로 제공되는 문제가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출산’에만 집중된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돌봄, 일·가정 양립, 성평등과 같이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하는 대신 가정 내 실질적인 가사분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밤 10시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대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다시 원점에서 출산장려정책을 고민할 때이다.
* 서지 정보
Jeong, K., Yoon, J., Cho, H. J., Kim, S., & Jang, J. (2022). The relationship between changes in the korean fertility rate and policies to encourage fertility. BMC Public Health, 22(1), 1-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