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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복지의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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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18년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가 공식적으로 추진된 이후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이 전국 16개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올해부터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사업’이 전국 12개 지역에서 시행을 앞두고 있다. 현장의 필요와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보건복지부 소관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 외에도 다른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인 통합돌봄 사업을 기획하여 실시하기도 한다. 지역사회보장계획에도 ‘읍면동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와 같이 통합 서비스를 강조하는 정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통합’이라는 키워드가 무색하게 이러한 사업들은 서로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다수는 시범사업 단계에서 종료되고, 실질적으로 기대한 만큼의 통합적 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못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제공자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통합적 서비스 제공의 본질적인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평가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한국의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WHO의 ‘건강한 노화 10년을 위한 가이드 원칙’을 기준으로 분석한 연구가 <보건사회연구>에 출판되었다(☞논문 바로가기: WHO 가이드 원칙을 통해 살펴본 한국의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과 일본, 스웨덴의 정책 비교). 분석 결과, 9개의 세부 원칙 중 단 1개 부분(보편성)만 만족하고, 나머지는 미흡(상호연결성과 불가분성, 포괄성, 다중이해관계자 파트너십, 비배제성, 형평성, 지속성, 무해성)하거나 부재(세대 간 연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향후 안정적인 재원확보, 업무 범위의 명확화 등을 포함하는 근거 법률과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또한 지역사회의 비공식적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다양한 주체들이 적극 참여하고 융합할 수 있어야 하며, 지자체의 권한과 재정적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필요하고 익숙한 해법이지만 쉽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제가 정치에 있으며 그 동력을 만드는 구조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오늘은 벨기에의 통합적 보건의료 정책 사례(이하 ‘통합적 케어’)를 정치적 렌즈를 통해 분석한 연구를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보건의료의 통합인가 분절인가? 벨기에 사례연구로 정책과 정치 검토하기). 연구진은 “통합적 케어 정책의 실행은 종종 통합적 케어와 관련된 부서 간, 다양한 이해관계자 활동, 그리고 정부의 서로 다른 레벨과 부처 사이의 관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로 시작한다.

 

벨기에는 지방자치 수준이 높은 세 개의 지역(플랑드르, 왈롱, 브뤼셀-수도)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로 복잡한 거버넌스 관계를 지닌다. 한국과 유사하게 사회건강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게이트키핑 없이 환자와 제공자의 선택에 자유도가 높다. 보상은 행위별 수가에 기초하기 때문에 급성기 케어는 잘 작동하는 반면, 공중보건, 예방, 만성질환에 대한 포괄적 케어 조정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세 가지 통합적 케어 사례를 분석하였다. 복잡한 정치적 분석에 적합하도록 서로 다른 수준의 거버넌스와 정책단계에 놓여있는 사례들을 선정하였다. 문헌검토와 약 50여 명의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정책 과정과 이해관계자 간 관계를 분석했다.

 

<사례 1> 제2형 당뇨 케어 궤적(2009~)

벨기에 전역의 병원과 일차의료를 연결하여 환자, 일차의료 의사, 전문의, 다른 보건의료 전문가 사이의 협력을 통해 정기적 상담, 건강교육, 자기관리에 인센티브를 제공. 지역 내에 전담 지원조직(LMNs)을 설치함.

 

<사례 2> 통합적 케어에 대한 시범사업 합동 계획(2015~)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공동 계획으로, 지역 내 만성질환자에 대한 새로운 돌봄과 재정 체계를 시도하는 12개의 지역 시범사업. 연구 컨소시움을 구성해 시범사업을 지원하고 평가함.

 

<사례 3> 플랑드르 일차의료 개혁(2017~)

플랑드르 지역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일차의료체계 개혁으로, 60개의 일차의료구역(PCZ)을 만들어 일차의료 의사, 전문의, 사회복지사, 환자와 돌봄제공자, 자원봉사자 조직 사이를 조정하고 분절된 건강과 사회복지를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함. 지원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구역 내 돌봄 플랫폼과 돌봄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역당국, 보건의료, 사회복지, 돌봄 수요자 대표를 동등하게 구성한 점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음.

 

분석 결과, 인터뷰 참여자들 대다수는 현재와 같은 강력한 공급자 중심 패러다임에서 환자 중심의 통합적 케어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아울러 당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직 많은 부분이 조율되지 않았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인식했다.

 

특히 2014년도에 실시된 6차 국가 개혁 결과로 일차의료와 사회서비스, 재가 케어가 지방정부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연방과 지방정부 사이에 책임이 분화되면서 치료적 연속성과 통합이 저해되며 정책 일관성과 의사결정이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사례인 ‘당뇨 케어 궤적’ 사업을 지원하던 별도 조직(LMNs)이 개혁 이후 플랑드르 지역 내에서 새로 실시된 세 번째 사업의 ‘일차의료구역(PCZ)’으로 흡수되면서 정치적, 재정적 지원이 감소하고 연방과 지역 모두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자들의 반대 입장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두 번째 사례 역시 이 과정에서 연방과 지방의 공동 프로젝트가 아닌 연방정부로 관리 의무가 전환되면서 협력이 약화되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선거로 인해 주요 정당과 이해관계자에 변화가 생기면서 리더십과 방향성이 사라졌고 법적, 정치적 기반이 감소하면서 시범사업의 파트너들이 신뢰를 잃고 열의를 상실했다고 평가되었다.

 

반면, 세 번째 ‘플랑드르 일차의료 개혁’ 사례에서는 협력 거버넌스의 성공적 구축과 더불어 플랑드르 정부가 10년에 걸쳐 같은 정당이 보건부를 장악하면서 정치적 지속성을 가지고 개혁이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보았다.

 

연구진은 환자중심적 체계로의 변화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벨기에의 분절적이고 불균형적인 정치적 구조가 변화를 어렵게 만들며 현재의 강력한 제공자 주도의 체계를 극복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정치적 분절은 실행을 느리게 하고, 여러 시범사업이 일관성 없이 시작된 후 충분히 추적, 평가되지 못하게 하며, 정책으로 이행되지 못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통합 케어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하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기술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문제가 크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다. 즉, 통합된 정치가 없이는 통합 케어도 불가능하다.

 

한국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듯하다. 서로 연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제각기 발달한 보건, 의료, 복지제도가 연결되기 위해서는 일관되고 통합된 정치적 동력을 유지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행정부처 간 균형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발달시켜야 한다. 플랑드르 개혁에서 주요 영역별 제공자뿐 아니라 통합돌봄의 수요자와 비공식 돌봄제공자를 의사결정 구조에 포함한 것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성공 요인일 것이다. 협업해야 할 전문 직종 간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통합의 시작점이다. 부유하는 수많은 통합돌봄 시범사업들이 기술적, 정치적으로 제대로 평가되고 벽을 극복해 안정적인 정책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 서지 정보

 

Martens, M., Danhieux, K., Van Belle S., et al. (2021). Integration or fragmentation of health care? Examining policies and politics in a Belgian case study. Int J Health Policy Manag. 11(9):1668~1681.

 

정윤화, 이동현. (2023). WHO 가이드 원칙을 통해 살펴본 한국의 커뮤니티 케어 시범사업과 일본, 스웨덴의 정책 비교. 보건사회연구. 43(1):17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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