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폭염으로 인해 더 많이 다치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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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해 예방이 산재 방지 대책이다

 

최강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유난히 덥고 습하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해가 갈수록 평균 기온이 높아질 뿐 아니라, 기후의 기복이 심해지고 있어서 아닐까? 비는 언론에서 ‘물폭탄’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날이 늘어 간다. 이렇게 극단적인 기후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 무더운 한낮 햇빛을 받으며 걷다 보면 이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그만큼 피부로 와 닿진 않을지 모르나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기후 위기가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악영향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폭우에도 비가 새거나 넘쳐 들어오지 않는 안전한 집에서 잠을 청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고, 어떤 사람은 냉방이 되는 일터에서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또 누군가는 바깥에서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일한다.

 

오늘은 높은 기온이 산업재해(이하 ‘산재’) 발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어떤 특성을 지닌 노동자에게 특히 두드러지는지 살펴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기온, 작업장 안전, 그리고 노동시장 불평등). 이 연구는 2001년부터 2018년 사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산재보험 청구 데이터와 같은 우편번호를 사용하는 지역들의 일일 기온 데이터를 결합해 분석에 활용했다.

 

연구 결과, 높은 기온은 실제로 산재 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캘리포니아 어떤 지역의 각 달을 관찰한다고 할 때, 최고 기온이 29.4℃~32.2℃인 날엔 15.6℃~18.3℃인 날에 비해 산재 발생률이 평균 4.8% 정도 더 높았다. 최고 기온이 더 높은 날일수록 산재 위험이 더 커져, 37.8℃~40.6℃인 날엔 평균 6.6% 정도 산재 발생률이 높았다.

 

슬프지만, 당연하다 여길 수도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떤 종류의 산재가 발생하는지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사실들이 드러난다. 우선, 더운 날씨의 악영향은 실외 뿐 아니라 실내 작업 환경에서도 나타났다. 예컨대 작업 대부분이 실내에서 이뤄지는 제조업과 도매업 부문에서도 최고 기온이 높은 날일수록 산재 위험이 높아지는 양상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높은 기온은 실신과 열사병 같은 온열 질환 뿐 아니라 더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다른 종류의 산재 발생률도 높였다(32.2℃~35℃→4.5% 상승). 언뜻 보면 놀랍지만, 더워서 몸에 힘이 없었거나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떠올려볼 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온열 질환은 전체 산재 중 극히 일부만을 차지하기에, 이렇게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산재에 더위가 미치는 영향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시사점을 준다.

 

그렇다면 누가 폭염으로 인한 산재를 경험할까? 우선 폭염과 무관하게, 평균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산재를 경험한 사람이 적어지는, 아주 뚜렷한 음의 상관관계가 관찰되었다. 평균 소득이 하위 20%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상위 20%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이미 2.36배 더 자주 산재를 당한다.

 

뿐만 아니라 소득이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자주 폭염을 겪고, 똑같이 더운 날에도 산재 위험이 더 크게 증가한다. 평균 소득 하위 20% 지역 주민은 거주 지역과 일하는 지역에서 각각 연 평균 70일, 53.8일씩 최고 기온 32.2℃ 이상의 더위를 경험하는 반면 상위 20% 지역 주민은 26.2일, 33.8일만 그렇다. 동시에 소득이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산재 위험은 최고 기온이 32.2℃ 이상인 날 약 7.4% 증가하는데, 소득이 높은 지역에 살면 5.4% 정도만 증가한다.

 

노동자와 기업은 모두 폭염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하는 투자로써 산재 예방책은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에 정책이 개입한다. 2005년 캘리포니아는 기온이 35℃ 이상으로 치솟는 날엔 야외 노동자에게 물과 그늘막을 제공하고, 1시간당 5분의 휴식 시간을 의무화하는 등 온열 질환 예방 조치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산재 발생을 줄일 수 있었다. 연구진은 제도 시행 이전인 2001~2005년 폭염으로 인해 연간 6,100건의 추가적인 산재가 발생했지만, 이후 2006~2018년엔 연간 4,250건이 발생해 30% 가량 감소했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의무적 안전 조치들은 비록 기후 부정의와 위험한 노동의 깊은 뿌리를 건드리지 못할지라도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가이드라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현행 제도들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이유다. 또한, 연구는 실외 뿐만 아니라 실내 노동자, 온열 질환 뿐만 아니라 더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산재 전반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은 지난 2022년 8월에야 야외만이 아닌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 전체에서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매년 여름 한국에선 어느 노동자가 더운 날씨에 쉬지 않고 일하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7월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 카트를 정리하는 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탈수로 인한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다양한 산업과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여전히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법과 제도가 살피는 범위 밖에서 자신의 건강과 기대되는 수입을 저울질해야 할 만큼 취약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소득이 더 낮은 지역에 생활하는 노동자가 더 잦은 산재를 경험하고, 폭염으로 인해 더 큰 위험에 처한다는 연구 결과는 이런 장면들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점점 더워지더라도 노동자가 평등하게 건강한 사회를 상상해본다.

 

 

*서지정보

Park, J., Pankratz, N., & Behrer, A. (2021). Temperature, workplace safety, and labor market inequality. IZA Discussion Paper, 14560.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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