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과 서현동에서 일어난 강력범죄로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온라인에는 살인 예고 글이 올라와 사람들의 불안을 더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고, 경찰특공대원과 장갑차가 강남역에 배치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묻지마 범죄(이상동기범죄)’ 예방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대응 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았다(보도자료 바로가기).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추진,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가시적 위력순찰 강화, 정당한 물리력 사용, 범죄 예고자 구속수사, 정신건강검진 체계 강화, 외래치료 명령제도 개선, 치료 인프라 확충 등이 그 대책이다.
이러한 대책은 실제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거운 형벌이 강력 범죄를 예방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고 지적한다. 자포자기한 사람이 형량을 신경 쓰겠는가. 자신이 받을 처벌을 비롯해 뒷일을 계산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양형기준에서도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건강과 관련된 대책들은 어떤가. 일단 범인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설령 망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하더라도 최근의 이상동기범죄들은 정신질환을 앓지 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공격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부는 마치 정신질환 때문에 이러한 범죄를 일으키는 것처럼 낙인 찍으면서 너무 쉽게 사법입원제를 언급한다. 최소한 정신질환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강제적인 이송과정이나 폐쇄병동에서 치료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잔혹한 행위 등 인권침해를 어떻게 개선할지 언급하는 것이 먼저다.
범죄와 별개로 정신응급 상황에 이르기까지 제때 도움받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대책이었다 하더라도, 의료 모델만 강조하는 건 부적절하다. 물론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충분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립을 돕는 지역사회 서비스와 지지뿐 아니라 위기쉼터를 비롯해 정신응급 상황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시설과 서비스를 약속해야 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 계획과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급한 일이다.
인구집단의 건강 관점에서도 이번 대책은 좋게 평가하기 힘들다. 인구집단의 건강 향상을 위한 전략들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책, <예방의학의 전략>(제프리 로즈 외 지음. 한울 펴냄)에서는 특정 고위험군에만 개입하여 일탈을 억압하기보다는 인구집단 전체 수준의 변화를 강조한다. 예컨대, 음주와 관련한 유병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과도한 음주자의 음주량을 낮추는 조치만 취하는 게 아니라 전체 인구의 음주 수준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과도한 음주자들의 문제는 전체 인구집단에 작동하는 어떤 영향의 한 측면을 반영한다는 점, 그리고 과도하지 않은 음주 역시 건강 위험을 높인다는 점 때문이다.
이상동기범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고립이든, 경제적 궁핍이든, 사회에 대한 분노든 일부 고위험군만 관리하고 중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범죄자들의 특성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빈곤한 자, 정신질환자, 사회부적응자 등으로 범주화하고 낙인찍으며 관리하는 방식은 안 된다(소위 ‘정상’으로 여겨지는 특성, 예컨대 걸을 수 있고 시력이 있는 자 등 기타 범죄를 가능케 하는 무수한 요인들은 범주화되어 호출되지 않는다). 범죄자들 역시 인구집단 내 분포의 한 극단일 뿐이라면, 진정한 개선 효과를 위해 전체 수준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동기범죄와 관련된 요인들을 인구집단 전체 수준에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 요인에 개입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적 고립, 경제적 궁핍 등 이상동기범죄자의 특성으로 지목되는 것 중 여럿은 한국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인 자살, 저출생 등과도 맞닿아 있으니 그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극단적인 사건을 발생시키지 않는 사람들 역시 그로 인한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 즉 고위험군 격리와 치료(의료화) 모델은 고위험군으로 여겨지는 특정 인구집단에만 주목하게 만들고, 좀 더 구조적인 사회 문제들은 가린다는 것이 문제다. 어찌 보면 미국에서 총기규제를 피하려고 총기난사 사건 때마다 정신건강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비슷하다.
정확히 문제를 인식하고 제대로 된 접근을 취해도 해결이 어려운데, 현재까지의 대책은 빙산의 일각만 노리고 있다. 극단적인 범죄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좋든 싫든 우리 사회에서 영향을 주고받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서, 정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앞에 언급한 책을 인용하며 다시 강조한다.
“극단적 공격성(폭력과 살인, 반달리즘, 난폭운전, 치열한 비즈니스 관행)의 발생 빈도는 그 사회와 정치인들이 폭력적인 극단주의자들을 아무리 부인하며 별개의 문제로 간주한다 해도 전체 사회의 공격성 평균 수준이나 관용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인구집단의 평균적인 공격성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더욱 유용할 것이다.” (앞의 책. 112-113쪽).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공격성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부 대책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