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길거리, 공원, 지하철 등 우리의 일상 공간이 연이은 폭력 범죄로 위험에 처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향한 폭행, 칼부림, 성폭력, 그리고 심지어 살인이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지내다가 갑자기 전혀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범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회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벌써 조금씩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항 등 테러나 살인이 예고된 곳들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경찰 인력이 배치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가족, 친구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은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보안 검색 절차가 강화되었다. 쓰레기 수거와 반려동물 목줄 착용을 당부하는 공원 안내방송은, 흉기 소지 금지와 이어폰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범죄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범죄의 공포는 또 우리 삶의 어떠한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미국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사회학자 연구팀은 범죄의 공포가 지역사회 참여에 미치는 성별화된 영향을 분석하였다(☞논문 바로보기: 범죄의 공포가 지역사회 참여에 미치는 영향: 젠더에 따른 비가산적·비선형적 영향). 연구에 활용된 자료는 ‘미국인의 두려움에 관한 채프먼 조사’의 2차 조사 자료이다. 이 설문은 미국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최초 패널은 주소지 무작위 추첨을 통해 연락을 받은 사람 중 동의한 2,660명이다. 2차 조사는 최초 패널을 대상으로 2015년 3월 15일부터 26일 사이에 온라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58%인 1,541명이 모든 질문에 응답하였다.
참여자들은 생애 사건, 정부 정책, 범죄,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 기타 여러 공간과 현상 등에 대해 어느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또한, 이 연구는 참여자들이 얼마나 자주 지역사회에 참여하는지를 조사했는데, 조사 항목에는 공공 이벤트 참여, 공적 논의 참여, 동호회 혹은 지역 조직 참여, 집으로 친구 초대, 회사 동료와의 어울림,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의 집에 머물기, 지역 지도자와의 만남, 헌혈, 자원봉사 참여 등 다양한 층위의 참여가 포함되었다.
분석 결과, 범죄의 공포는 성별에 따라 지역사회 참여 빈도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났다(<그림> 참고). 남성의 경우, 낮은 수준의 범죄에 대한 공포는 지역사회 참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범죄의 공포가 커질수록 지역사회 참여 빈도도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반면, 여성은 범죄의 공포가 일정 수준까지 비교적 낮게 유지될 경우 남성보다 더 활발히 지역사회에 참여했지만, 공포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 참여 빈도가 낮아지는 곡선 모양의 경향성이 나타났다.
범죄의 공포가 일정 수준까지 높아질 때는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집합적인 노력을 추동하지만, 공포가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때는 참여율에서 성별 반전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성별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연구를 통해 정확한 인과관계를 추론하기는 어렵다. 연구자들은 남성들이 범죄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가령 더 무기를 구매하고 소지하는 식으로 대응하는지에 관한 것을 검증하지 못한 것이 이 연구의 한계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사회학의 선행연구를 활용해, 남성들이 범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강한 모습을 보이도록 사회화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혹은, 지역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남성이 범죄의 공포를 덜 느낀다는 역인과 관계의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성별의 차이가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범죄 자체에 젠더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강력범죄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인 상황은, 범죄의 공포에 대해 젠더에 따라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폭력적 사건을 직접 당하거나 목격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안겨준다. 또, 지역사회에 대한 인식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위험한 공간으로 전환된다. 높은 수준의 범죄에 대한 공포는 특히 여성들이 범죄 피해자가 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사회에 대한 신뢰와 참여 의지를 하락시키게 된다.
이처럼 범죄의 공포는 여성의 일상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에 참여하는 것마저 위협한다. 사회적 교류 그리고 정치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극단적 폭력의 시대를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이나 위력순찰을 강화하는 방식은 여전히 시민들의 사회적 참여에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관련 자료: ‘묻지마 범죄에 범정부 총력대응’ 이대로 괜찮을까?). 장기적인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 서지사항
Mencken, F. C., Bader, C. D., & Day, L. E. (2022). Fear of crime on community engagement: Nonadditive and nonlinear effects by gender. The Sociological Quarterly, 63(2), 379~39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