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하는 대법원 판결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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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연속 21.5시간 노동도 위법이 아닌…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하는 대법원판결 규탄한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해서 일한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한 주에 일한 시간이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주일간 법정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이 한도일 뿐 일일 연장근로시간까지 별도로 규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당 연장근로 상한선인 12시간만 명시하고, 하루 연장근로시간 상한선을 명시하지 않은 입법 공백을 틈타 밤샘 근무, 야간 근무 등 장시간 노동의 길을 터줬다. 이틀 ‘연속 21.5시간 근무’ 같은 극단적 장시간 노동이라 하더라도 주52시간 미만이면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루 연장근로 상한이 없는 입법공백을 대법원과 같이 해석하여 적용하면 장시간 노동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연장노동시간을 1주일 단위로 하게 되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고정되지 않고 불규칙해질 수 있다. 장시간 노동만이 아니라 불규칙한 노동시간은 노동자들의 과로사 위험을 더 높이고 시간의 주권을 빼앗도록 만든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 판결’이라 즉각 화답하며 관련 행정해석을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 10월,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업무외 질병이나 부상에 대해 휴직을 보장하고 상병수당을 확대하라는 인권위의 권고를 사실상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행보는 사뭇 달랐다. 노동자 건강과 직결되는 노동시간 유연화 문제를 여과없이 수용하고 장시간 노동이 우려되는 판결을 합리적이라 포장하며 판결의 행정 적용을 검토하겠다는 수용 입장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유급병가 법제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 많은 노동자들은 아파도 참고, 감염 위험이 있어도 출근을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아플 때조차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노동 현실인데, 노동시간을 더 유연화하는 대법 판례까지 나왔으니 노동자들에게는 쉬지도 말고 더 많이, 더 오래 일을 해야 하는 ‘일지옥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노동시간은 노동자들의 수명, 질병, 부상 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노동자 건강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어갈 때 자살 위험이 42% 증가하고 야간·교대 근무, 수면장애가 함께 나타나면 자살 위험이 더 커진다. 여기에 높은 노동 강도가 동반하는 경우 심혈관계 질환과 과로사로 이어지게 된다. 2016년 기준, 한국에서 노동자 10만 명당 5.9명, 약 2,610명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사망했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후 장시간노동으로 항상 선두를 달렸다. 지난해 한국의 근로시간은 연간 1,915시간을 기록했으며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로,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1,716시간)보다 연간 약 200시간을 더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국’이며 독일과 비교하면 연간 500시간이나 더 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호 협약으로 공업부문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을 1일 8시간, 1주 48시간으로 제한하는 협약을 1919년 체결했다. 이후 100여년간 각 나라들은 다양한 법제정 등의 방법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해 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장시간 노동현실을 고착화시키는, 노동자의 건강이나 생존을 고려하지 않는 야만적이고 시대착오적 판결이다.

노동 시민사회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반노동자적 행정 적용을 강행할 경우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저임금 장시간 노동구조 개혁에 집중하여 노동자들의 일·생활 균형을 보장하는데 앞장설 것을 촉구한다. 또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조성,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2023.12.28

일하는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 시민포럼

(건강세상네트워크,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국민건강보험공단노동조합. (사)김용균재단 (사)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사)시민건강연구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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