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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신건강정책의 문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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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들어 정신건강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달 발표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2년마다 정신건강 검진을 실시하고, 2027년까지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 100만명에게 심리 상담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또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거와 고용 지원을 확대하고 자살예방교육과 대국민 캠페인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제라도 정신건강에 대한 정책 지원이 강화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로서, 실효성이 부족하거나 잠재적 위해성이 있지는 않을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이와 유사한 목적을 지니고 시행된 한 연구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국제학술지 <북유럽 사회사업 연구>에 실린 이 연구는 스웨덴에서 개발된 정신건강정책이 구조적 과제와 책임을 개인에게 어떻게 이전하고 있는지 분석하였다(☞논문 바로가기: 스웨덴의 정신건강정책 개발: 복잡한 사회적 과제가 어떻게 개별 시민에게 맡겨져 해결되는지 탐구하는 정책 분석).

 

스웨덴에서는 지난 2015년에 중증 정신질환자와 아동, 청소년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정신건강정책의 대상자 범위를 광범위한 사회 집단으로 확장하였다. 연구자는 이것이 과연 정신건강 문제라는 복잡한 현상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연구자는 정치학자 캐롤 바치(Carol Bacchi)의 ‘문제화’ 개념에 입각하여 정책을 바라본다. 이는 정책 내부에서 문제로 재현되거나, 혹은 문제로 재현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함으로써 현재의 통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일반적인 정책 연구에서는 정책의 목표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효과성, 효율성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과 달리, 이 관점에서는 통치 차원에서 정책 효과를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둔다.

 

바치는 정책이란 정책 입안가의 관점에서 무엇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가 전제된 산물이라고 설명하며, 정책은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고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통치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의 6가지 질문을 통해 문제화를 탐색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1) 무엇이 ‘문제’로 재현되는가? (2) ‘문제’ 재현의 기저에는 어떠한 전제나 가정이 존재하는가? (3) 이러한 방식의 ‘문제’ 재현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4) 문제화되지 않거나, 침묵된 것은 무엇인가? ‘문제’는 다르게 재현될 수 있는가? (5) ‘문제’ 재현으로 인해 어떠한 효과가 발생하는가? (6)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문제’ 재현이 생산, 유포, 방어되는가?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화 개념에 근거하여 정신건강정책의 효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스웨덴에서는 국가와 지역 단위에서 각각 별도로 정책 대응이 개발되었기에 2015~2018년 기간 동안 발표된 국가 정책과 지역 정책을 합친 127개의 정책 문서를 대상으로 분석이 이뤄졌다.

 

분석 결과, 국가 수준의 정신건강정책에서는 지역의 보건의료와 사회지원 단체에 정신건강문제에 대응할 임무를 부여했으나, 정작 지역 수준의 정신건강정책에서는 명확성이 부족하여서 새로운 과제를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국가 수준의 정책에서는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집단 간의 불평등한 생활 조건 개선과 같은 적극적 예방 조치를 제안하고 있었으나, 지역 수준의 정책에서는 생활조건의 개선 없이 단지 중증정신질환 집단, 취약 집단, 일반 시민 별로 서로 다른 전문정신치료와 예방조치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국가 수준의 정책에서 구조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일부 언급되기도 했지만,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고, 따라서 개입 역시 개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정책의 주된 논지였다. 즉, 개인이 변화하면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정신건강정책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연구자는 새로운 정신건강정책이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 구조적 차원의 문제들에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노동 시장에서 여성이 정신건강의 위험과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지만 별다른 개입이 없는 점,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거 문제에 대한 조치가 누락된 점, 그리고 게임 중독자에 대한 정책에 정작 마케팅과 같이 이들을 중독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은 점 등을 사례로 들면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가 문제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화는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잠재적 위험을 가진다.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해결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구조적 요인을 문제로 드러낼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문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연구의 주요 함의다.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차이가 있더라도 이 연구결과는 앞으로 시행될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상담과 정신건강 검진을 제공하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그 이면에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의 원인, 즉 구조적 차원의 문제들을 제대로 문제화하고 있는지, 혹시 정신건강을 개인 문제로 축소시키면서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다.

 

* 서지 정보

Fjellfeldt, M. (2023). Developing mental health policy in Sweden: A policy analysis exploring how a complex societal challenge was consigned to individual citizens to solve. Nordic Social Work Research, 13(1),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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