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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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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지역적·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의사 인력의 필요성 –

 

느린 발걸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4년 2월 6일 의과대학 정원을 2025년부터 연간 2천 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 정책은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과 함께 ‘4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일환으로 추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연간 2천 명이 추가로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2031년부터 배출되기 시작하면 2035년까지 최대 1만 명의 의사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다. 정부는 현재 의료 취약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의 의사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5천 명 정도가 필요하고,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를 대비하기 위해서 1만 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 2천 명 규모로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하되, 의사 인력 수급 상황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하여 추후 정원을 조정하겠다고 한다.

 

정리하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목표는 의료 취약지 문제 해결과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 대비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에 대해서는 필자의 지난 글에서 다루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는 수요 측면의 문제이다.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들은 향후 한국의 인구 감소로 인하여 의사 수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상회할 것이므로 의사 인력을 늘리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의사 인력 공급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많은 의료 수요가 60대 이상 고령자에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향후 소아청소년질환, 주산기 질환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의료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의 총 의료 수요는 고령자 인구 증가 때문에 총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물론 현재의 의료 수요가 ‘실재(實在)’ 필요에 비해 과잉인지 적정인지는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다).

 

한편 의료 취약지 문제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 문제와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인구 고령화는 분명 의료수요 증가라는 주로 수요 측면의 문제이지만, 의료 취약지 문제는 지역 단위에서 경제적 타당성을 달성할 만한 충분한 의료수요가 부족하고 의료 인력의 유치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수요와 공급 모두의 문제이다. 따라서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은 타당하지만, 의료 취약지의 과소 공급 문제는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 제공자가 충분한 경제적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지역의 의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료기관 개설이 어렵거나 인프라에 투자하기 힘들다. 경제적 논리로 의료 공급자의 진입이 힘든 지역에 대하여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공공이 직접 시설을 구비하고 서비스를 공급하는 정책패키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생활 편의 시설 부족, ‘비교 열위’에 있는 자녀의 교육 여건 등의 이유로 의사 인력이 근무할 유인이 떨어진다는 점도 특정 지역을 의료 취약지로 남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급여 수준을 높인다고 해도 합리적으로 의료 취약지에 의사 인력을 유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생활 편의 시설과 교육 여건 등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의료 인력을 의료 취약지에 배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책적 상상력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의사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 이후 더욱 촉발된 논쟁은 주로 의대 정원 확대의 정당성과 그 규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어떤 배경의 사람들을 의대로 유인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일본 의과대학 학생들의 지역적·사회경제적 배경과 관련된 내용이다(☞논문 바로가기: 일본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의과대학 지원, 입학 및 이주에 미치는 영향).

 

일본 의대생의 약 55%는 가구 중위소득 3배 이상의 고소득층 출신으로, 약대생(30%), 간호대생(25%), 그리고 비의료보건계열 대학생(25%)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의과대학 내에서도 일반 학부 등록금 수준의 국공립 의과대학에 비해 5~10배 정도 비싼 사립 의과대학 학생의 고소득층 비율은 75%로 국공립 의과대학 학생(50%), 지역정원제(대부분 국공립 의과대학이 운영) 의대생(35%)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큰 차이가 있다.

 

사립 의과대학 학생의 부모가 의사인 비율은 약 50%로, 25% 남짓인 국공립 의대 및 지역정원제 의대생과 비교해 두 배에 이른다. 오사카 및 도쿄 주변의 대도시권 출신 의대생일수록 고소득층 가족 출신인 경우가 많고 사립 중고등학교를 나온 경우가 많다. 반면 대도시권 출신이 아닌 의대생들은 국공립 의대에 지원하는 비율이 높다. 그리고 대부분 지역의 국공립 의과대학에서 해당 지역 출신 의대생의 비율이 50%가 넘는다. 일본에서 사립 의과대학에 비해 국공립 의과대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다양함을 나타내는 결과들이다.

 

의료 취약지에 의사 인력을 유인한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급여 수준이나 근무 환경과 같은 요인만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대도시 지역 부유층 출신 의사들이 대도시권 근무를 선호하고, 비대도시권 출신 의사들이 본인의 출신 지역에 좀 더 근무를 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근거로 지역의사제를 운영해오고 있다. 지역의 균형 발전과 다양성 증진, 그리고 지역 친화성 등을 근거로 많은 분야에서 지역 인재 할당제를 추진하듯이, 다양한 지역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인재들이 의과대학에 입학해야 의사 인력의 대도시권 편중 현상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의과대학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료 취약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역의사제와 같은 정책만으로 문제 해결이 충분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의료 취약지 문제는 의료 수요와 공급 양측 모두를 아우르는 다양한 정책패키지가 필요하다. 의료 취약지에 의사들이 더 많이 근무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이외에도 다양한 규제 정책을 혼합하여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오늘 살펴본 연구 결과의 함의처럼, 다양한 지역적·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의과대학에 많이 입학해야 의사 인력의 대도시권 편중 현상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서지정보

Suzuki, Y., Tsunekawa, K., Takeda, Y., Cleland, J., & Saiki, T. (2023). Impact of medical students’ socioeconomic backgrounds on medical school application, admission and migration in Japan: a web-based survey. BMJ open,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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