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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환자를 ‘의심’하는 응급실 내 젠더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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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로 인해 응급 환자 진료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응급실 의사의 공백은 많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응급실에서의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치료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급실 의료진의 의학적 판단이 성차별적 편견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어떨까?

 

오늘 소개하는 연구는 의료진이 “환자의 성별”에 따라 가지는 편견이 응급실에서의 진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또한 그 편견은 “의료진의 성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논문 바로가기: 환자와 의사의 성별이 응급실 HEART 점수에 미치는 영향).

 

흉통 환자의 평가에 사용되는 HEART 점수는 응급실에서 환자의 입원 및 퇴원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주요한 보조 도구이다. HEART 점수는 심전도 검사 결과, 나이, 심혈관질환의 주요 위험요인의 개수, 혈액검사 상 심근효소 수치, 병력 등을 종합하여 계산하는데, 특히 병력 같은 경우,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점수를 매기는 의사에 따라 다른 값이 나올 수 있다.

 

연구진은 환자와 의사의 성별이 HEART 점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우선 전자 의무기록을 통해 HEART 점수가 기록된 흉통 환자의 성별과, HEART 점수를 계산한 임상 의사의 성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연구진 의사 (남성 응급의학과 의사) 2명이 환자의 성별과 이미 기록된 HEART 점수를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HEART 점수를 계산하였다. 그리하여 임상 의사가 계산한 점수와 연구진이 성별을 모르는 상태로 계산한 점수를 비교하였다.

 

비교 결과, 여성 환자에서는 임상 의사의 점수와 연구진 의사의 점수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으나, 남성 환자에서는 임상 의사의 점수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여성 환자에서는 30%의 환자에서 임상 의사가 매긴 점수가 연구진이 매긴 점수에 비해 낮게 나타났으나, 남성 환자에서는 이러한 비율이 24%였다. 반대로 남성 환자에서는 43%에서 임상 의사가 매긴 점수가 연구진이 매긴 점수에 비해 높게 나타났으나, 여성에서는 32%였다.

 

연구진은 HEART 점수가 임상 의사의 성별에 따라서도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해보았다. 여성 임상 의사는 연구진에 비해 남성과 여성 환자에게 모두 더 높은 HEART 점수를 매겼고, 그 정도는 두 성별에서 0.22점으로 모두 같았다. 남성 임상 의사는 여성 환자의 점수를 연구진보다 0.18점 더 낮게 기록했지만, 남성 환자의 점수는 연구진보다 0.33점 더 높게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응급실 의료진의 편견이 자살기도로 내원한 환자를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논문 바로가기: 응급실 자살 시도 행동 평가의 성별 및 연령 편향). 연구진은 응급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사후관리 사업 담당자들의 기록 중 “자살 시도의 진정성 평가” 항목을 확인하였다. 즉, 사업 담당자가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에 대해 “자살 시도자가 정말 죽으려고 하였으며, 그럴만한 방법을 선택하였다”라고 판단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한 것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평가자의 성별을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환자의 연령 및 성별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살 치명도를 평가하는 ‘위험-구조 평가 척도(Risk-Rescue Rating)’를 보정한 후에도 18~39세인 젊은 여성의 자살 시도의 진정성은 65세 이상 남성 환자에 비해 유의하게 낮게 평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이 환자를 평가한 내용은 이후 환자를 진료하는 내용에도 영향을 끼친다. 오늘 소개한 연구결과가 함의하듯이, 여성 환자의 증상을 흔히 ‘꾀병’으로 치부하거나 과소평가해 온 오래된 성차별적 편견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진료시 환자의 성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의료진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의료진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 구성원이 편견없이 사고하는 사회라면 더 좋지 않을까? 편견 없는 세상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 서지정보

Barron, R., et al. (2024). Influence of Patient and Clinician Gender on Emergency Department HEART Scores: A Secondary Analysis of a Prospective Observational Trial. Annals of Emergency Medicine, 83(2), 123-131.

Han, N., et al. (2023). Gender and age bias in the evaluation of suicide attempt behavior in an emergency department. Community mental health journal, 1-11.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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