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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잘 준비한 후보를 확인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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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팝콘각’이라 할 수 있는 22대 국회의원 공식선거전이 시작되었다. 어느 때보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국면에서 치러지는데다가, 평소 본 적 없던 인물들이 후보로 등장하고, 선거가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그들의 말과 생각이 전해져 흥미롭다. 주어진 선거운동기간은 13일. 그 많은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도 짧게는 한 달 이상 경연자의 노래 실력과 평소 사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면서 시청자가 판단하도록 하는데, 아무리 압축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더라도 과연 이 13일이라는 기간이 유권자가 지역구와 비례 후보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시간일지 의문이다. 선거 참여가 ‘민주주의를 향한 큰 발걸음’이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당부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거운동기간에 후보자들과 지역 주민들이 모두 생업을 멈추고 모여서 함께 토론하는 날을 포함시켜야 되지 않나 싶을 정도다.

 

단지 선거운동기간만의 문제도 아니다. 3월 14일부터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중앙당)의 주요 10대 공약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했으나, 31일 현재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린 38개 정당 중에 25개 정당만이 공개하고 있다. 정당별 홈페이지에서 비례대표들과 그들이 추진하게 될 <22대 국회의원선거 공약>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정당은 다시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역대 최장이라는 투표용지 길이보다도 유권자가 확인할 수 있는 공개된 정책도 없는 정당이 투표용지에는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정책공약마당). 지역구 후보들의 공약은 오늘(4월 1일) 이후 게시된다하니, 어쩌면 지금의 선거 방식은 주민들이나 후보 모두 현안을 충분히 진단하고 필요한 대책을 숙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아님이 확실하다.

 

심지어 개혁신당은 정당 홈페이지에 선대위원의 발언이나 공지사항 등 모든 게시물 하단에 ‘추천’ ‘비추천’ 버튼을 배치하여, 마치 온라인 커뮤니티를 옮겨 놓은 듯하다(개혁신당). 비교적 앞번호인 자유통일당은 공당의 선거전략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자극적이고 극우적 홍보로(자유통일당), 조국혁신당은 팬덤정치를 브랜드화하는 전략으로(조국혁신당) 후보와 공약을 게시하고 있다. 이들은 필시 보상과 재미를 더하는 게임화(gamification) 방식을 통하여 디지털 서비스에 익숙한 시민들이 일정한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은 선거에서 마케팅 전략이 시민들의 정치적 삶을 점차 미디어와 광고의 성공으로 환원시켜 자유선거의 원리를 왜곡한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도 각자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검색해 보시라. 이렇게 단편적인 정책 나열, 인물의 개인기와 이미지에 의존한 정당이 지금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살필 것이 많은 현대사회의 정치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급히 걱정이 될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불통과 비상식의 정치는 이런 허술한 토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현재의 위성정당체제는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나. 앞순위 기호를 받기 위한 당적 변경, 비슷한 당명에 사실상 공천과 선거운동을 같이하는 각종 꼼수가 선거를 우습게 만들고 있다. 거대 여야는 위성정당 금지법안을 결국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구 기득권을 서로 보장해주기 위해 비례의석 1석을 줄이는 선거법 개정에는 쉽게 합의했다. 국회의 다원성을 강화하겠다는 정치개혁 약속을 저버리고 국회 스스로 정치를 야합과 특권의 도구로 삼은 기만적인 정치쇼는 이들이 맡겠다는 정치가 어떤 신뢰와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각기 사는 형편과 요구가 다른 254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가 차별화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나마 중앙당 차원의 정책공약과 별도로 17개 광역시도별 공약을 발표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조차도, 모든 지역에서 더 많은 산업·물류·교통·관광·도시 인프라 확충과 개발을 주요 공약으로 삼고 있다.

 

건강과 보건의료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의사 인력 증원이나 공공병원의 신설 또는 분원 유치 등이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 서울과 일부 광역지자체를 제외한 12개 광역시도 공약에 소아응급·감염·장애인 전문의료 등의 의료공백 해결, 공공·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비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에 병원이나 의대같은 물리적 시설을 구축하고, 운영은 ICT·AI·스마트 시스템·비대면 진료를 통해 의료의 지역격차를 메꾸겠다는 점에서 여야의 진단과 목표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화된 보건의료체제가 만들어낸 인력 공급·의료비·서비스의 질 등 총체적 의료불평등 현실에 대하여 말만 요란한 기술주의적 해법으로 접근할 뿐, 그 핵심인 지역간 형편과 요구에 맞는 공공보건의료체계 강화로 직결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 치러진 21대 총선을 떠올려보자. 당시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들은 감염병 전문인력과 전문병원·시설 확대, 공공과 민간·중앙과 지방의 관련기관들을 조직화하는 보건의료체계 강화공약을 내세웠었다. 결과는 어떤가? 의료자원, 서비스 제공, 관리 및 규제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은 지역구 단위에서 개입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이 다시 확인되었다. 집권정당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선거 때 지역주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들겠다고 했던 후보들의 약속이 실행가능성은 따져보지도 않았던 빈말이었거나, 주민 당사자들이 필요한 보건의료에 대한 수요를 제대로 정치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보건의료정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사회적 차원에서 개입하고 변화를 주도한 핵심주체는 행정부와 전문가권력이었다.

 

이런 지형을 생각할 때 주민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더 구체화하면서 지역의 정치적 대표가 되기를 원하는 후보들을 계몽하고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마이크를 잡고 유세를 하며 언제 지켜질지 모를 약속을 남발할 때, 주민들의 삶과 고통에 대하여 어디까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봤는지 질문해야 한다.

 

“후보님, 그럼 의료원 지을 때까지는 계속 병원을 다닐 수 없는 건가요? 후보님은 의료원이 적자라도 문 닫지 않게 하실 건가요?”

 

후보들이 여기에 사는 주민들의 문제를 얼마나 알고, 스스로 고민하고 답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투표하자. 다시 한 번 열린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라는 기회의 창을 더 크게 열어 젖히자. 간절하고 급박한 시대적 과제를 품위있게 해결하는 책임은 후보가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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