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발걸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의 44.9%(2020년 기준)가 건강기능식품·건강보조식품 등을 포함하는 식이보충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10-20대의 복용 비율은 10~20% 정도였으나 30대 이상에서는 40~50%가 복용 중이었으며, 5세 미만의 소아 또한 50% 가까운 높은 복용률을 보였다.
<2023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연 4조원 수준이다. 건강기능식품 시장규모는 2018년 2.28조원에서 불과 4년 사이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건강기능식품 중 단일 품목으로는 홍삼이 연 1조 원 규모로 가장 많고, 프로바이오틱스, 비타민 및 무기질, EPA 및 DHA, 단백질 순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식이보충제 영역은 제조사 입장에서도 높은 마진을 보장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관절염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추기 위하여 연골의 주요 구성성분인 콜라겐이 들어있는 식이보충제를 섭취한다. 어린 아이의 두뇌 발달을 위하여 오메가3가 함유된 영양제를 구매하며, 노인의 치매 예방을 위하여 은행잎 추출물이 함유된 제품을 섭취한다. 장 건강과 피부 건강을 위한 영양제가 각각 따로 존재하며, 심지어 전립선 건강을 위한 제품도 시판되어 있다.
식이보충제에 대한 열풍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 하다. 오늘은 미국 고령자패널조사를 이용하여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식이보충제 복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중년과 노년층의 식이보충제 복용). 연구결과, 미국 50대 이상 중장년층 가운데 84.6%가 평균 3.2개의 식이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식이보충제는 멀티비타민 제제였고, 다음으로 비타민 D, EPA 및 DHA, 칼슘 등의 순으로 소비되었다.
75세 이상 고령자, 고혈압·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관절염이 있는 사람일수록 식이보충제를 복용하는 경향이 높았다. 또한 고학력자, 백인일수록 식이보충제를 더 많이 복용하였으며, 반면에 흡연자, 신체활동이 적은 사람, 우울 지수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식이보충제를 복용하는 빈도가 적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결과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사람들(고학력자, 신체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흡연자, 우울 지수가 높은 사람)에 비해 적극적으로 건강함을 성취하기 위해 식이보충제를 복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식이보충제의 본래 역할은 일상에서 부족하게 섭취하는 영양소를 보충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 소개한 연구에서처럼 고령층과 만성질환 보유자들이 식이보충제를 찾는 것은 일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학력·인종과 같은 사회인구학적 요소나 흡연여부·신체활동·우울감과 같은 개인적 요소에 따라 식이보충제 소비 행태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단지 영양 결핍이나 질병 관리만을 위한 목적으로 식이보충제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실제 의학적, 영양학적 필요뿐만 아니라 건강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일환으로도 식이보충제가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식사 섭취가 어려운 상황이거나 임산부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식이보충제를 통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건강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식이보충제를 소비한다. 심지어는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경고하는 여러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었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신장과 간 기능이 저하되는 고령층일수록 영양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의 위험이 더 크다.
‘영양제’를 홍보하는 각종 광고에는 흰 가운을 입은 사람, 유명한 의사면허 소지자 등이 나와 각종 건강보조식품의 효능을 소개한다. 최근에는 SNS에서 유명한 사람들(인플루언서)이 가세하여 영양제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출연자가 입고 있는 흰 옷이나 소지하고 있는 면허, 수많은 팔로어 수 그 자체가 건강보조식품의 효능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광고 효과를 높이는 상징일 뿐이다. ‘영양제’를 광고하는 ‘전문가’는 흔하지만 ‘영양제’의 필요성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제대로 알려주는 전문가는 드문 현실이다.
식이보충제 시장이 한국에서도 점점 더 팽창하는 상황에서 좁게는 식이보충제 효과를 과대 포장하는 것을 막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안전성과 효능과 관련된 허가 절차를 강화하는 한편, 시판 이후에도 부작용 발생을 모니터링하여 안전성을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사람들이 ‘영양제’에 의존하지 않고도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들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와 같이 규칙적인 고강도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영양제에 대한 의존보다 더욱 바람직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건강관리가 가능하려면 그만큼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양제에 의존하지 않고도 모두가 함께 건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우선 ‘영양제’를 먹는 것은 쉽지만 ‘영양제’ 섭취만으로 건강해지기 쉽지 않다는, 이 자명한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지정보
Tan, E. C., et al. (2022). Dietary supplement use in middle-aged and older adults. The Journal of nutrition, health and aging, 26(2), 133-13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