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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호우에 무엇이 선제적 사전 대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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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라. 죽는다..”

 

지난주 충청, 전북, 경북 지역의 집중호우 때, 폭우로 둑이 터지면서 대전 정뱅이마을 전체가 침수되었다. 처마끝 기둥만 겨우 붙잡고 있던 노모는 물길 건너편 아들에게 이 말을 건넸다고 한다. 어쩌면 이 절규는 기후재난까지 덮친, 쇠락해가는 작은 농촌마을이 보내는 오래된 긴급구조 신호일지 모른다.

 

‘극강의 집중호우’, ‘200년 빈도의 폭우’ 그 무엇이라고 하건 최근 몇 년 사이 이 파괴적 장맛비의 위력을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 폭염, 폭우, 산불 등 이상기후들은 해마다 강도가 세지고 있다. 기후위기의 원인인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하여 탄소 배출 억제 및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협력과 각국의 탈탄소 에너지정책의 자구노력들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탄소중심주의, 지구공학이나 탄소제거의 기술적 접근의 한계, 무엇보다 환경과 인간에 대한 착취를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성장에서 벗어나는 데까지 아직 나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최근 일 년간 평균기온은 임계점 1.5℃를 넘어 1.64℃가 상승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호우피해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위험 요인이 있을 때는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선제적으로 사전 대피를 유도하라”고 당부했다(관련기사). 우리는 이 ‘선제적 사전 대피’가 위험지역을 빨리 벗어나라고 알리는 수준의 호우긴급재난문자를 의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으로부터 대피하지 않는 한, 이 같은 피해는 또 다른 어느 곳에서든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기후위기대응의 핵심인 에너지문제에서 윤석열 정부의 화석연료와 원전 확대 정책을 멈춰 세우고, 그들이 환경과 인간의 삶을 비정상적으로 파괴하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지역개발담론을 백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선제적 사전 대피라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현재 대표적 지역개발사업으로 부산, 군산, 제주 지역에서 신공항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낙후된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장밋빛 선거공약으로 등장했지만, 지역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주장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선전과 달리 인구 감소와 공항 이용률 저하 등 항공수요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공항 부지와 그 주변 환경에 미칠 치명적인 피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관련기사).

 

새만금신공항 역시 애초의 건설목적이던 새만금잼버리는 작년 여름 ‘폭망’으로 끝났다. 게다가 기존의 군산공항도 이용객이 적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실정에 그보다 더 짧은 활주로를 가진 국제공항을 추가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대신 군산공항이 위치한 수라갯벌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대체불가능한 탁월성을 지니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동아시아 철새이동의 중요한 기착지이자, 해양생태 탄소흡수원(블루 카본)으로 주목받고 있다(관련기사1, 관련기사2). 가덕도신공항은 해수면 상승에 따른 침수 위험성과 신공항부지의 43%를 바다를 메워서 조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환경 재앙’의 우려가 크다(관련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강행하려 하고, 새만금SOC사업의 적정성 검토용역 최종보고가 완료되지도 않은 시점에 신공항건설사업을 재개하고도 시민사회에는 ‘용역이 완료되지 않아 보고서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2029년이 완공연도로 정해진 가덕도신공항과 새만금신공항사업은 각각 특별법에 따라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됨에도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되었고,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에서도 예외적으로 유예되었다. 또한 전략환경영향평가 같은 보완적 조치들이 부실하게 수행되거나 생략되고, 달라지는 인구사회적 조건과 환경생태적 위기에 대한 재평가도 없으며,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의 공론화 결정도 무시된 채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다.

 

한국에서 2019년 처음 대중적인 기후시민운동이 시작된 이후,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기후생태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인적 삶과 체제적 변화를 견인하는 자발적인 주체로 변모하고 있다. 인간종만이 아닌 더 넓은 비인간생명체의 생존에 대해서까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인류 생존의 토대가 작은 풀 한포기, 작은 새 한 마리의 그것을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방정부의 독단적 개발사업에 제동을 걸고, 합리적인 비판을 제시하는 시민들의 공동행동이 곳곳에서 결성되고 있으며, 이들은 ‘자본이 아니라 생명을 염원한다’고 외치며 정치권에 ‘기만과 호도의 포퓰리즘 정치를 멈추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과 자본은 스스로 기후정치의 주체로 거듭나려는 노력보다, 환경파괴적 개발의 위험을 경고하고 삶에 미치는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행정권력은 합의된 의견수렴 절차를 이행하라는 시민들에게 고발과 벌금 처분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파기하며 자가당착으로 졸속 추진하는 모양새는 너무도 한심한 수준이다. 이 초대형 토건개발의 삽질이 시민의 고통과 피해로 돌아오는 동안, 누가 수익과 혜택을 얻는 것인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지금 전국 곳곳에서는 공항뿐만 아니라, 케이블카/댐/보 건설, 원전/석탄 발전소 건설 및 재가동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가 매해 여름에 만나는 폭우와 폭염이 점점 파괴적이고 더욱 두렵다고 느낄수록, 우리 시민들은 이런 기후·환경·개발 정책에 대한 더욱 강력한 사회적 통제에 나서야 한다.

 

자본과 권력의 기득권과 그린워싱에 맞서 과거의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대결에 상응하는 기후시민계급과 반기후계급 간의 투쟁을 전면화하자. 건강과 생명을 파괴하고, 구태의연한 지역경제발전이란 외피로 반생태환경적 토건사업을 강행하려는 정치와 자본의 부조리와 부끄러운 실체를 폭로하고, 그 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더욱 강고하게 키워가자. 올해 9월 7일에도 기후정의를 기치로 모두가 함께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것을 외치는 기후정의행진이 열릴 예정이다. 반기후, 반생태적 폭주를 멈추게 할 거대한 기후시민들의 혁명만이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내 삶과 세상을 바꾸게 할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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