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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교제폭력 예방을 위해 어른들은 무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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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 말할 수 없는 비밀, 드러낼 수 없는 피해

 

고등학교 2학년인 A는 남자친구의 욕설과 폭행을 참을 수 없어 이별을 통보했다. 그날 저녁 남자친구는 A에게 계속 안 만나주면 부모님께 사귀었던 사실을 일러바치겠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16살인 B는 19살 남자친구에게 얼굴 부위를 맞고 폭행당했다. 판사는 상해, 감금, 협박, 폭행 혐의로 남자친구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언론기사 재구성). “엄마는 남자친구 있는 줄도 모르는데, 남자친구한테 맞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의 양상은 성인과 아주 유사하지만, 대개 청소년에게 연애란 가족에게는 숨겨야 하고 감춰야 할 일이다. 성인 간 교제폭력이 그 심각성과 흉악성 때문에 이제라도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면, 청소년 교제폭력은 제대로 피해를 드러내기조차 어렵다.

 

경찰청 자료 <치안 전망 2023>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2021년 41,335건) 27.7% 증가해 52,767건에 달했다. 빠른 증가세가 놀랍지만, 더 주목할 점은 피의자 연령대다. 연령대별 교제폭력 피의자 현황을 보면, 10대가 피의자인 경우는 전년 대비 60.1%가 증가했다(2021년 208건 → 2022년 333건). 전체 교제폭력 가운데 10대 피의자 비율은 2021년 2.74%에서 2022년 3.37%로 늘었다.

 

· 교제폭력 양상은 괴롭힘, 사회적 소외 경험과 연관되는가

 

캐나다 캘거리 대학의 엑스너-코튼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2023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다양한 청소년 그룹에서 교제폭력이 나타나는 양상과 왕따, 사회적 소외 위험 등 권력불균형(social power imbalance)과 관련된 요인이 교제폭력 피해나 가해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캐나다 청소년의 교제폭력 경험: 사회권력 불균형과의 연관성). 연구팀은 캐나다 전국 청소년이 참여한 2017/2018년 학령기 아동건강행태(HBSC) 자료를 이용했고, 지난 1년간 교제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과정의) 9학년(만 14세), 10학년(만 15세) 청소년 3,779명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연구팀은 교제폭력 양상에 따라 4개 그룹(가해 그룹, 피해 그룹, 가해/피해 모두 경험한 그룹, 교제폭력 경험이 없는 그룹)으로 구분될 것이란 가설을 세웠다. 또한 학교 내 괴롭힘이나 사회적 소외 경험 등이 교제폭력과 연관되는지도 알아보았다. 괴롭힘 경험 여부, 사회적 소외 위험을 평가하는 6가지 변수(성별, 인종/민족, 이민 여부, 가족구조, 먹거리 불안, 가족의 재력 수준)도 함께 물었는데, 이러한 변수는 성차별이나 트랜스혐오,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계급 차별로 인한 사회적 소외를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괴롭힘 가해 경험이나 차별 경험, 혐오피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에서 교제폭력 가해 그룹이나 피해 그룹에 포함될 연관성이 있는지 분석한 것이다.

 

· 교제폭력 경험이 없는 그룹, 가해/피해 모두를 경험하는 그룹

 

연구결과, 교제폭력 중 심리적 공격을 가했던 이들은 9.2%(334명), 사이버 공격은 7.7%(280명), 신체적 공격을 했던 청소년은 7.1%(257명)에 달했다. 교제폭력 피해 중 심리적 공격을 당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27.3%(994명), 사이버 피해는 17.1%(622명), 신체적 피해를 겪은 청소년은 11.5%(420명)였다. 교제폭력 양상에 따른 그룹은 예상과 달리, 교제폭력 경험이 없는 그룹(65.7%, 2,483명)과 (심리적·사이버) 피해만 경험한 그룹(28.9%, 1,092명), 가해/피해 경험 모두 경험한 그룹(5.4%, 204명), 이렇게 3개 그룹으로만 나뉘었다.

 

· 괴롭힘이나 소외 경험은 교제폭력에 영향 줄 수도

 

괴롭힘 경험은 교제폭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교제폭력 경험이 없는 그룹과 비교하면, 학교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교제폭력 (심리적·사이버) 피해 그룹에 포함될 위험이 3.43배 컸다. 사이버 괴롭힘을 겪은 청소년은 교제폭력에서도 피해자가 될 위험이 4.02배까지 높았다. 괴롭힘 가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 역시, 늘 가해자만 되지는 않았다. 괴롭힘 가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교제폭력 경험이 없는 그룹에 비해, 교제폭력에서 가해/피해 모두를 경험할 위험이 5.67배 높았다.

 

사회적 소외 경험 역시 교제폭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었다. 인종 차별을 경험한 청소년은 교제폭력에서 가해/피해 모두 경험할 위험이 2.70배 높았고 이주민인 경우, 그 위험은 3.19배, 먹거리 불안을 경험한 청소년은 4.42배까지 높아졌다.

 

· 통합적으로 바라보기

 

괴롭힘이나 사회적 소외 위험과의 연관성은 모두 권력의 위계나 불균형과 연관된다. 연구팀은 또래 관계에서의 폭력성(괴롭힘 가해)이 다른 관계에서 폭력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는 그룹이 교제폭력 피해만 경험한 그룹일 수 있으며, 또래 관계에서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경우나 사회적 소외 경험에 따라서도, 연인 관계에서도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나 피해 입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이러한 학교폭력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한국 역시, 학교폭력 실태조사의 한 켠을 교제폭력 경험을 위한 문항으로 할애하면 어떨까? 매년 교육청에서는 학기 초마다 온라인으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실태조사의 필요성과 자료수집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청소년 교제폭력의 규모와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 청소년의 연애를 인정해야 교제폭력도 수면 위로

 

대한민국에서 한창 공부와 성적에 집중해야 할 중고등학생 시기에, 아이의 연애를 관대하게 허용하며 장려하고 인정해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대개 청소년들은 친구에게 자신의 연애를  자랑해도, 가족에게는 비밀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귀는 친구가 욕설이나 협박, 갈취, 스토킹, 폭행, 감금을 한다고 해서 신고할 수 있는 10대가 몇이나 될까?

 

해외에서는 10대 교제폭력의 다양한 양상과 피해/가해 경험과 연관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10대 교제폭력 문제로 주(state) 차원에서 시행된 관련 교육법의 효과성에 대한 연구도 발표된 바 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10대 교제폭력 실태를 전국적으로, 정기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인프라나 플랫폼이 거의 없다. 교제폭력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실태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예방과 재발 방지,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자료로서 실태조사가 매우 중요한데도 말이다.

 

서울시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제한된 조사이긴 하지만, 서울시립청소년문화센터가 발표한 ‘2021년 청소년 성문화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는 청소년의 연애 경험과 통제 및 스토킹 경험(가해 및 피해)을 조사한 결과가 실려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응답자들은 연애 기간과 데이트 비용, 불편한 스킨십 거부 방법, 통제 및 스토킹 경험에 대해 답변했다. 비록 연애와 관련해 응답한 청소년이 330여명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실태조사 결과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최소한 이러한 조사를 전국 단위에서 정기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청소년 교제폭력의 피해규모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 방안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청소년 교제폭력에 대한 조사나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청소년의 연애를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교제폭력이나 원치 않는 임신 등과 같이 청소년의 안전하고 행복한 연애를 가로막는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그 해결책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연애를 허하라. 아니 세상 모든 연애를 허하라!

 

* 서지 정보

Exner-Cortens, D., Baker, E., & Craig, W. (2023). Canadian Adolescents’ Experiences of Dating Violence: Associations with Social Power Imbalances.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 38(1-2), 1762-1786. https://doi.org/10.1177/08862605221092072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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