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최저임금이 10,030원으로 결정됐다. 이번에도 최저임금위원회의 법정 심의 기한을 한참 지나 결론이 나왔는데, 그중에 임금 수준을 논의한 것은 나흘에 불과했다. 대신 최저임금 적용을 확대하는 것과 업종별 최저임금을 차등적용 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올해는 최저임금 적용 확대를 못 했지만, 내년에는 도급노동자 최저임금 확대적용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최저임금의 본질을 훼손하는 차등적용은 다시 무산시켰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가 최저임금 수준이 ‘적정하다’고 봤고, 22%는 ‘높다’, 27%는 ‘낮다’고 응답했다(관련통계 바로가기). 지난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높다’는 의견이 ‘낮다’는 의견보다 많았는데, 2022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3년간 ‘낮다’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물가는 무섭게 올라 생활은 팍팍해지는데, 최저임금 인상률은 오히려 역대 두 번째로 낮게 결정되면서 실질적으로 임금이 하락한 탓이다.
반면, 언론에서는 자영업자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다. 빅카인즈를 통해 최저임금이 결정된 다음 날로부터 일주일간 ‘최저임금’ 키워드를 포함한 뉴스를 살펴보니, 가장 연관성이 큰 키워드로 ‘자영업자들’이 압도적이었고, ‘시간당 1만’, ‘인건비 부담’이 뒤를 이었다. 노동자의 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본이 소상공인 뒤에 숨어서 최저임금 상승을 저지하려 한다는 느낌도 있지만, 실제 자영업자의 상황이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액과 연체율이 급증하고, 폐업 또한 상당하다는 기사를 보면 그 어려움이 짐작된다. 그렇지 않아도 운영이 어려운데, 소폭이나마 인건비가 오르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자영업자를 어렵게 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나 제품이나 서비스 수요의 감소 역시 경영 사정 악화의 커다란 이유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그렇다면 노동자가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 말고도 어려운 상황에 맞설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미 사람들이 지적했듯, 여러 차원에서 을과 을의 대립 구조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숨어 이익을 취하는 이들에 대항하는 길도 있다. 이를테면, 불합리한 프렌차이즈 관계가 있다면, 이에 힘을 모아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독과점 플랫폼 기업들의 횡포에 대항할 수도 있다. 실제 자영업자 의존도가 높아진 것을 이용해 중개수수료를 올린 배달의민족에 대항하는 음식점주들과 배달노동자들의 연대 사례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구도와 관련해 지식의 편향성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갤럽의 조사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높다’고 응답한 사람 중 74%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 ‘경제’는 무엇을 말하는가. 물가 상승, 고용 감소 등 아마도 비슷한 답변들이 우리 머릿속을 스칠 것이다.
반면, 우리는 최저임금 상승이 단지 숫자 이상으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 덕분에 노동자 자녀들의 교육 기회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아플 때 병원에는 잘 갈 수 있게 되었는지,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자살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빈곤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소득 불평등은 얼마나 완화되는지, 범죄율은 감소하는지 우리는 관심이 없다. 갤럽은 오로지 경제적 영향만 물어볼 뿐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경제뿐만은 아닐진대 이처럼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고, 중요시하며 공유하는 지식은 경제에 편향돼 있으며, 다른 지식과 실천을 압도한다.
지식 생산 자체가 경제 부문에 집중되기도 하지만, 그밖에 다른 분야의 근거는 있어도 잘 논의되지 않는다. 최저임금과 자살에 관한 연구를 예로 들자면,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살률을 감소시켰고, 특히 실업률이 높은 시기에 효과가 두드러진 것으로 보고되었다(관련연구 바로가기). 홍콩에서는 최저임금이 25-64세의 남성의 자살률을 낮췄고(관련연구 바로가기), 한국에서는 비교적 큰 폭으로 인상한 2018년 최저임금이 자살 생각을 낮췄는데, 특히 여성과 45세 이상의 연령층에서 효과가 컸다(관련연구 바로가기).
최저임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권리와 이에 대한 지식은 경제에 대한 지식에 가려져 전반적으로 잘 논의되지 않는다. 그나마 최저임금은 매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면서 관심이라도 받는 편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아프면 쉴 권리 등에 대해서는 논의 조차 잘되지 않는다. OECD에서 법정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 모두 없는 국가는 미국과 한국뿐이며, 미국은 그나마 무급휴가가 있고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 도입되어 있는 주(州)도 있다는 지식. 코로나19 유행을 통해 노동이 불가할 때 소득을 보전하는 상병수당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빠른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면서도 본사업 시행이 연기되었다는 지식. 그나마 시범사업에서도 대상자 범위를 크게 제한하고, 보장 금액과 기간도 미흡하다는 지식은 도통 잘 퍼지지 않는다.
지식 운동을 기치로 삼은 우리 연구소부터 활동의 의미를 다시 새기며, 모두에게 사람 중심의 지식 생산과 학습, 유통에 함께 더욱 힘쓰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식이라 해서 꼭 두꺼운 책에 쓰인 어렵고 거창한 개념 같은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이 무엇인지, 이를 야기하는 구조는 무엇인지,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나 조치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모두 포함한다. 지식이 편향되어 있다는 것도 지금의 고통을 야기하는 구조에 대한 하나의 지식이다. 우리의 생각, 감정, 판단, 의지, 행동에 기초가 되는 지식의 편향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 모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해 나가는 과정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