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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본인부담률 차등제는 어떤 ‘개혁’의 신호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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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부터 외래진료 본인부담률 차등제가 시행됐다. 이는 외래진료 이용이 연 365회 초과하게 되면 당해 연말까지 본인부담률을 90%로 상향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외래 본인부담금은 이전부터 의료기관 종별로 차등화되어 있었다(의원급 이하: 30%, 병원급: 35%, 40%, 종합병원급:45%, 50% 상급종합병원:60%). 기존 본인부담률 차등제는 상급 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이번 차등제는 “의학적 필요도가 낮은 불필요한 의료남용”을 억제하는 데 주안을 두고 있다.

 

우리는 ‘90%’라는 수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인부담률이 90%가 되면 사실상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지난 2006년에 폐지됐던 ‘요양급여일수 상한제도’(2002년 도입)의 부활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입원일수 등을 포함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요양급여일수 상한제 역시 의료남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연간 요양일수 365일 이상인 환자의 보험 급여를 제한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상자 대부분이 고령의 만성질환자였고 사전 승인을 통해 급여일수 연장이 대부분 허용됨에 따라 막상 재정절감의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이번 본인부담 차등제 역시 뚜렷한 재정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대상자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5천만명이 넘는 건강보험 가입자 중에 1년에 외래진료를 365회 초과한 이들은 고작 2,5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중증질환자나 희귀난치성질환자 등이 포함된 수치라면 적용 대상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22년에 365회 초과 외래진료 이용자가 사용한 건강보험 급여비는 약 268억원으로 전체 지출액의 0.003% 수준에 불과했다.

 

따라서 우리는 본인부담 차등제를 꺼내든 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의료비 절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대상자를 극소수로 제한한 형태로 제도를 설계한 것은 사회적 저항을 최소화해 정책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 아무래도 사회 통념상 1년에 365번 넘게 외래를 이용한다는 건 개인의 부적절한 의료이용 행태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도덕’한 행태를 통제하기 위해 다소 징벌적 성격을 띤 본인부담 차등제를 도입하더라도 지금처럼 큰 논란 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것으로 내다봤을 것이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앞으로 정부는 재정절감을 위해 이렇게 비용부담을 차등화하는 방식으로 과다의료이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더욱 강화할 공산이 크다. 본인부담률 차등제는 ‘올 오어 낫싱(all-or-nothing)’의 진료일수 상한제보다 더 큰 확장성을 갖는데, 예컨대 과다이용의 기준이 되는 연간 150회 이상 외래진료 수진자들(2021년 기준 약 19만명)에게도 지금보다 높은 본인부담률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건강 취약집단을 예외로 한다든지 ‘과다의료이용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할 테지만, 어쨌든 핵심은 환자의 비용부담을 늘리는 데 있으며, 이는 곧 의료이용의 경제적 접근성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소중한 건강보험 재원의 비효율적 지출을 방지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 누구나 비용 걱정 없이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제도 본연의 목표를 저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다시 말해 ‘보편적 의료보장’이라고 하는 상위의 가치 추구보다 재정 절감을 우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과다의료이용을 문제삼으며 ‘합리적’ 의료이용 제고를 시급한 개혁 과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을 과다의료이용으로 봐야 하는지부터 논쟁적 사안이다.

 

공적 의료보장체계의 기본 원칙은 ‘동일한 필요에 동일한 의료이용’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마다 느끼는 ‘필요’가 다양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의료이용을 정당화하는 ‘필요’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과다의료이용 여부 역시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게다가 과다이용을 판단하는 기준도 진료일수 뿐 아니라 방문 의료기관 개수나 지불 비용 등으로 규정될 수 있다. 현재 편의상 진료횟수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지, 누구나 동의할 만한 보편타당한 기준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정책적 의도에 따라 자의적 변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근거로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미 실태조사와 분석을 통해 누가 어떤 건강 문제로 어떤 치료를 많이 받고 있는지 확인된 바 있다.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과다의료이용자는 중고령층에 집중돼 있으며, 근골격계 질환에 따른 통증 치료를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관련기사: 바로가기). 통증 완화를 위해 물리(도수)치료, 주사치료 등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자주 방문할 만큼 의학적 필요도가 높다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노인 외래진료비 정액제나 실손보험 등에 따른 낮은 본인부담률을 고려할 때 비용의식 저하에 따른 의료남용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과다의료이용의 모든 원인과 책임을 환자에게 돌린다거나 그 자체를 도덕적 해이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통증 치료가 가장 많다는 것이지 과다의료이용자로 분류된 모든 이들이 ‘마사지 받듯 물리치료 받으러 다니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통증 치료 목적이 아닌, 여러 복합적 건강 문제로 인해 의료기관을 자주 찾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이들 중 누군가는 산정특례 등에 해당되지 않아 차등화된 높은 본인부담율을 적용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통증 치료에 대한 필요 역시 필요다. 비용보다 편익이 커야 의료이용을 선택하는 법. 당사자는 진료비 외에도 교통비와 시간 비용 등 여러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다. ‘합리적 의료이용 지원사업’의 대상인 중복·과잉진료자들은 “아프기 때문에 지속되는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이용을 할 수밖에 없으며, 병원마다 제시하는 치료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에게 맞는 병원이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의료이용”을 한다고 답했다(최정규 등, 2023). 의료의 질적 수준 개선 등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의료이용만 통제하는 건 이들의 고통과 필요를 간과하는 처사다.

 

셋째,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의료이용은 의사와 환자 간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오히려 치료 개시 여부를 결정하고 치료 수단을 선택할 권한을 가진 의료 공급자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나아가 ‘공급자 유인수요’를 유발하고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행태를 부추기는 제도적, 체계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정부도 이 점을 고려한 듯 지난 2월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같이 할 수 없도록 하는 혼합진료 금지 계획을 밝혔다. 실행된다면 왜곡된 진료행태를 다소간 교정하고 비용지출도 줄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만큼 건보 급여의 보장성을 확대하지 않으면 꼭 필요한 의료이용의 접근성마저 제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또 의료기관에서 수익보전을 위해 비급여 진료비를 인상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급여진료량을 늘이는 등의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바로 시장의 생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실손보험의 높은 손해율로 적자에 시달리는 민간보험사들을 구제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데 현 정부는 급여 보장성 확대에는 관심이 없다. ‘문재인케어’를 실패로 규정하는 건 자유지만 이와 별개로 여전히 현실에서는 많은 이들이 치료비와 간병비 부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현실적 고통을 외면한 채 정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담보와 이를 위한 과다의료이용 방지를 건보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정말 이것이 이 시대의 시급한 개혁 과제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건보 재정은 최근 몇 년간 당기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적립금이 역대 최고치인 약 28조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향후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재정 여건이 악화되고 수년 내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하며 재정지출의 통제를 강조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현재의 고통을 억누르는 셈이다.

 

어차피 건강보험은 매해 필요한 돈만큼 거둬 사용하는 ‘완전부과방식’으로 운영되는 구조라 적립금 고갈 여부는 건보 재정지출 결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적립금이 많이 쌓여 있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실질적 건강권 보장을 위해 급여 보장성 강화에 힘써야 할 국가의 기본 책무를 소홀히 한 결과로 해석해야 맞는 게 아닐까. 건보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국고 지원하도록 한 법부터 제대로 이행하면서 건보 재정을 걱정하면 좋겠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되면서 의료공백 문제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가 쌓여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을 대가로 치르면서 추진되는 의료개혁이라면 그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보건의료 위기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 전혀 엉뚱한 진단과 해법을 내놓고 있다. 핵심만 짚자면, 의사 증원을 꺼내든 배경이 된 필수·지역의료공백 문제의 근본 원인도, 또 의사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환자를 볼모로 실력행사에 나서며 전체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 까닭도, 모두 보건의료체계가 지나치게 시장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현직 제약바이오협회장을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혀놓고 보건의료를 더욱 시장화, 영리화, 산업화하는 방향으로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에 대한 국가 책임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의한, 시장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그 정당성을 뒷받침하고자 건보재정위기설과 과다의료이용 담론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헬스테크 기업 등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 해서 질병을 예방하든, 아니면 각종 사보험에 의존해 비용부담을 해결하든 각자 알아서 책임지라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에 담긴 핵심 정치적 메시지일 것이다.

 

각자도생의 원리를 구현하려는 친시장적 의료개혁으로는 오히려 위기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이번 건강보험 본인부담률 차등제는 이러한 퇴행의 불길한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자본과 경제를 살리는 데 더 골몰하는 개혁이 어떻게 사람중심 개혁일 수 있겠는가. 정부를 향해 보편적 의료보장 체계 구축을 촉구하면서도 건강불평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키우고 보건의료 탈시장화 담론을 확산하고자 노력하는 시민 주체들에 의한, 그러한 아래로부터의 의료개혁 운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참고 문헌

최정규, 김소영, 이선미. 2023. 과다의료이용 관리를 위한 합리적 의료이용 지원사업의 효과 및 개선방안. 국민건강보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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