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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시민사회를 두려워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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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헌법 제1조에 ‘민주공화국’이라 선언하고 있다고 해서, 혹은 우리를 대표할 사람을 직접 투표로 뽑는다고 해서 선뜻 답할 수는 없다. 투표는 민주주의 실현을 가로막기 위해 등장했으며,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당시만 해도 오히려 민주주의의 반대말에 가까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단지 투표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거가 되기는 더욱 어렵다(『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 김민철 지음, 창비 펴냄).

 

사실 처음부터 민주국가다, 아니다 범주적으로 답할만한 질문이 아니다. 다만, 민주적 요소에 대해 따져보는 일은 해볼 수 있으며, 이는 지금 우리가 어디쯤 위치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책을 좀 더 따라가자면, 프랑스혁명 시기 민주주의를 주창한 세력들은 투표로 선출된 대표들을 인민(국가의 존재를 전제한 국민이라는 개념 대신 인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이 통제할 수 있어야 비로소 대의제에도 불구하고(!) 인민이 통치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민주적 통제의 방법으로 4가지를 구상했는데, 첫째는 국회가 통과시킨 법을 인민이 통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인민이 조건부로 위임한 대표의 직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셋째와 넷째는 애초에 대표들이 인민의 뜻을 잘 따르도록 하는 간접적 통제 방안인데, 언론과 출판의 자유와 일반 민중이 회합하고 토론할 자유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원칙을 구체적인 정치 메커니즘과 연결하려는 프랑스 혁명기의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 맥락과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아도 참고할 만하다.

 

시작부터 민주주의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아마 다들 짐작할 것이다.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국회의 과반을 차지한 상황에서, 정부는 법률 대신 시행령을 개정함으로써 본인들이 원하는 일들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전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도록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정작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권한을 위축시켰다. 대개 전 정부의 흔적 지우기, 검찰 권력 보존, 언론 길들이기, 기업의 편의성 봐주기를 위한 시행령 개정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인 노동자, 농민을 위한 법이나 대통령을 조사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편향성도 우려스럽지만, 입법, 행정, 사법을 분리한 민주주의 규칙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우리가 뽑은 대표의 직위를 통제하는 측면은 어떤가. 한국은 제도적으로 탄핵과 주민소환제도를 갖추고 있음은 물론, 대통령을 탄핵한 경험도 있다. 요즘 야당은 탄핵 조사 청문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공직자를 해임할 권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곳곳의 주요 공직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이해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도록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의 동의도 얻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의 뜻대로 요직에 지명되거나 임명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노동권을 파괴하려는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언론을 장악하려는 방송통신위원장, 제국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독립기념관장 등등 요즘 하필이면 직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만 등용하는 것이 두드러진다.

 

여론의 형성과 표현에 관한 간접적 통제 수단 역시 크게 위태로워 보인다. 대선후보에 대한 검증 성격의 보도를 명예훼손으로 규정하고 압수수색 하는 행태,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 정부 입맛에 맞는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교체, 대통령이 지명한 두 명이 일방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요 정책 심의를 의결하는 행태 등 하나하나가 심각한 언론 탄압과 언론 장악의 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정책결정자들과 동료 시민들이 현장의 의견과 다급함을 알 수 있도록 돕는 집회는 때때로 심각한 방해를 받는다. 예컨대 지난 7월 4일 경찰들은 전국농민대회에서 농기계들의 서울 진입을 과도하게 진압하고, 소형 농기계를 가져온 청년을 강제 연행하고 구속하는 일이 있었다.

 

 

시행령 통치나 대통령 입맛에 맞는 인사를 강행하는 것, 정부 비판 언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까지 모두 윤석열 정부 고유의 행태는 아니다. 이전 정부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물론 그로 인한 비판과 처벌도 따랐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만큼 뻔뻔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은 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 했던 예상을 벗어나고, 혹은 상상도 못 한 비상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는 동안, 기울어져 있는 사회는 더욱 기울어져 벼랑 끝에 있던 사람들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그 사이에서 권력과 불화하고 조금이라도 반대편으로 균형을 끌어오려던 사람들은 갈려 나가고 만다.

 

현재의 상태도 힘들지만, 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이런 경향들이 바뀌지 않을까 봐 더 걱정이다. 현재 집권 세력이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오더라도, 이후 사회 전반의 토대는 그대로고, 현 정권을 경험한 우리의 각자도생식 생존방식이 더욱 공고해지며, 민주성·공공성 등의 가치와 기준 같은 것들이 더 쪼그라들어버린다면 다른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아도 형식만 바뀔 뿐 경향은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다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 가깝게는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방송4법과 같은 법들이 남아 있고, 입법부의 결정을 대통령이 마음만 막으면 백지화시킬 수 있는 이런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는 일이 있다. 법률을 따르지 않는 시행령을 통제할 방안도 필요하다.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시민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비상식을 여러 번 마주하다 보면, ‘역시 그러면 그렇지’가 되며 그 비상식을 어느 순간 상식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 비상식에 적응하지 않고, 냉소하지 않으며 계속 더 많은 목소리를 높이고 합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장기적 과제와 단기적 과제로 나눌 수 있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정권을 사유화하고 사회의 민주성과 공공성을 뻔뻔하게 뭉개고 지나가는 국가권력이 시민사회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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