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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 고용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독일 베이비붐 세대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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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발걸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직업은 인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직업으로 소득을 얻고 적절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도구적 목적 외에도 개인적 차원에서 직업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직업에 종사하는 과정에서 삶의 목표와 동기부여를 얻고 성취감을 느끼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는 측면도 직업이 인간 삶에 중요한 이유이다.

 

이번에 소개할 논문은 독일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1959년~1965년 출생자의 불안정 고용과 정신건강 간 연관성을 밝힌 연구이다(☞논문 바로가기: 독일 고령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 경로와 정신건강 간의 연관성: 수직적·수평적 불평등). 2011년부터 2022년까지 11년 간 네 차례 패널 조사에 참여한 총 1,636명을 대상으로 불안정 고용과 저소득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불안정 고용을 일자리를 위협받거나, 임시직이거나, 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겸업하는 사람들로 정의하였다.

 

‘불안정 고용(precarious employment)’이란 불안정한 고용 조건 외에도 낮은 급여와 노동자 권리의 보호 부족 등을 포함하는 좋지 못한 고용 상태를 뜻한다. 불안정 고용은 고용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숙련도가 낮아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고용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 낮은 고용 지속성 등 이른바 ‘나쁜 일자리’에 내몰린다(수직적 불평등). 또 같은 교육 수준이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여성과 이민자들의 경우 고용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대우를 받는다(수평적 불평등).

 

불안정 고용에 노출되는 집단은 사회경제적으로 불균등하게 분포된다. 오늘 소개하는 연구에서 다룬 독일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에서도 여성, 저학력, 저숙련 노동자일수록 불안정 고용에 더 많이 빠져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독일의 고용 시장이 고령 노동자 집단 중에서 여성, 저학력, 저숙련 노동자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안정 고용의 차별적 분포는 고용 관계를 반영한다. 고용 관계는 고용주와 임금을 받는 노동자 사이의 권력 관계와 피고용인을 보호하는 사회적 장치의 보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고령 노동자와 관련된 독일의 제도는 성별, 교육수준, 숙련도에 따른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불안정 고용이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불안정 고용은 노동자들에게 높은 업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 지지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불안정 고용에 노출된 노동자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축적되면서 정신건강이 악화될 위험이 크다.

 

특히 이 연구는 남성 노동자와는 달리, 불안정 고용에 놓인 여성 노동자 집단에서 정신적 불건강이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고용 불안정성과 소득 부족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이, 일과 가족 돌봄 의무와 같은 성별에 따른 불평등 문제와 결부되어 여성에게 차별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현재의 소득과 고용 상태를 현재 또는 미래의 복지 수급권과 강하게 연계하고 있기 때문에, 은퇴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여성의 재정적 불안정을 심화시켜 정신건강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였다.

 

불안정 고용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용 조건이 노동 환경과 경제적 보상의 정도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제도가 불안정 고용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하면 이들의 고용 조건은 개선되기 어렵다. 이 연구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현재의 불안정 고용은 이와 연동된 노후 소득보장제도를 통해 미래의 삶과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느끼는 여성에게 불안정 고용으로 인한 정신적 불건강의 효과가 집중되는 문제는 어찌 독일만의 문제이겠는가. 독일과 마찬가지로 사회보험 원리를 근간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그러면서도 더 보장성 수준이 낮은 한국의 경우 그 사정이 더욱 나쁠 수밖에 없다. 은퇴를 앞둔 고용 불안정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 서지 문헌

Rohrbacher, M., Hasselhorn, H. M., & Matilla-Santander, N. (2024). Associations between precarious employment trajectories and mental health among older workers in Germany: Vertical and horizontal inequalities.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50(4), 290~29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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