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10월 23일자 (바로가기)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명료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고 회원국 평균의 2.5배나 된다. 또 자살은 이미 한국인 전체 사망원인 가운데 4위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자리잡았다. 자살은 질환 가운데에서도 명백한 사회적 질환이다. 경제·사회·심리적 상태나 지지가 악화될 때 자살률은 어김없이 올라간다. 삶의 존엄의 무게를 생각할 때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하루 평균 42명이 자살로 사망하는가?
자살 문제에 대한 국내의 정책적 대응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180여군데에서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설립해 자살예방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이 정책과 사업의 운영 현황은 현재 존재하는 문제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180여 센터 가운데 자살예방 전담인력이 배치된 곳은 20군데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자살예방사업의 효율과 성과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왜 많이 발생하는지 알아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개인의 극단적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경제적 곤궁인지, 사회적 배제인지, 지긋지긋한 질환의 연속인지를 밝히는 것은 예방사업의 효과를 높이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런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최근 경상남도에서 이뤄진 한 사업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건강플러스 행복플러스 사업’으로 이름이 붙은 이 사업은, 도내에서 표준화 사망률이 가장 높은 40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주민들의 건강 수준 및 삶의 질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했다. 2010~2012년 총 8800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면접조사가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사회경제적 변수는 물론이고 자살, 사회적 자본, 주관적 건강 수준 등의 변수가 다양하게 조사됐다.
김장락 경상대 교수팀은 이 자료를 이용해 개인의 사회적 참여와 신뢰 수준이 자살 생각 또는 자살 시도와 갖는 연관성을 분석해 지난 6월 <농촌의학·지역보건학회지>에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자살 생각은 ‘최근 1년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자살 시도는 ‘최근 1년 동안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고, 사회적 참여로는 정당, 학교운영위원회, 시민단체, 친목모임, 학습 및 강좌모임 등에 참여하는지를 조사했다. 또 신뢰 수준으로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신뢰 수준을 묻는 3 항목에 대해 조사했다. 자살 생각 및 자살 시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들인 성별·나이·교육수준·직업·건강행동 등과 같은 변수들이 주는 영향을 배제하고 분석한 결과, 노인·친목·운동 모임 등 비공식집단에 참여해 활동하는 경우 자살 시도를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 정도도 낮은 경우에 견줘 높은 경우에서 자살 생각을 덜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회 참여와 신뢰 다시 말해 ‘사회적 자본’과 자살행동의 연관성에 대한 국내 첫 연구에서는, 사회적 자본은 자살행동을 완화 또는 예방할 수 있는 변수임이 드러났다.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분명 이런 고민과 논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
고한수 시민건강증진연구소(health.re.k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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